이 시대의 사랑
불러도 삼월에는 주인이 없다
동대문 발치에서 풀잎이 비밀에 젖는다.
늘 그대로의 길목에서 집으로
우리는 익숙하게 빠져들어
세상 밖의 잠 속으로 내려가고
꿈의 깊은 늪 안에서 너희는 부르지만
애인아 사천 년 하늘 빛이 무거워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물에>
우리는 발이 묶인 구름이다.
밤마다 복면한 바람이
우리를 불러내는
이 무렵의 뜨거운 암호를
죽음이 죽음을 따르는
이 시대의 무서운 사랑을
우리는 풀지 못한다
시인은 1979년 계간 『문학과 지성』에 이 시를 포함한 4편의 시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시집의 제목을 담고 있는 이 시는 시집의 ‘自序’에 따르면 대학을 그만두기 전(73년~76년)에 쓰인 것이다. ‘민청학련’의 시대이다.
이 시대는 어떠했나.
<주인이 없>는
<우리는 발이 묶인 구름>인
<밤마다 복면한 바람이 / 우리를 불러내는>
<죽음이 죽음을 따르는>
시대이다.
시인은 끊임없이 불러내고 있고, 나는 시대의 담론은 내 몫이 아닌 양 시만 바라보고 있다. <이 시대의 무서운 사랑을> 나 역시 풀지 못한다.
편지
이제는 부끄럽지도 슬프지도 않습니다.
모든 사물의 뒤, 詩集과 커피잔 뒤에도
막막히 누워 있는 그것만 바라봅니다.
정처 없던 것이 자리잡고
머리골 속에서 쓸쓸함이 중력을 갖고
쓸쓸함이 눈을 갖게 되고
그래서 볼 수 있읍니다
꽃의 웃음이 한없이 무너지는 것을
밤의 달빛이 무섭게 식은땀 흘리는 것을
굴뚝과 벽, 사람의 그림자 속에도
몰래몰래 내리는 누우런 황폐의 비
그것이 살아 있는 모든 것의 발바닥까지
어떻게 내 목구멍까지 적시는지를
눈 꼭감아 뒤로 눈이 트일 때까지,
죽음을 향해 시야가 파고들 때까지
아주 똑똑히 볼 수 있읍니다.
내 속에서 커가는 이 치명적인 꿈을.
그러면서 나의 늑골도 하염없이 깊어지구요.
(*맞춤법이 바뀌었지만, 원문 그대로 둡니다.)
<내가 깨닫는 이 쓸쓸함의 고질적인 힘으로, 허무의 가장 독한 힘으로 일어나 앉는다... 독(毒)보다 빠르게 독보다 빛나게 싸울 것을, 내가 꿀 수 있는 마지막 하나의 꿈이라도 남을 때까지.>
최승자,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쓸쓸함이 중력을 갖게> 된다는 이 표현은 나이 들수록 잘 알아먹어진다.
살아갈수록 왜 이리 쓸쓸함은 깊어지는지.
그래도 누구나 <치명적인 꿈>을 갖고 살아간다.
<막막히 누워 있는 그것만 바라> 볼 때도,
<쓸쓸함이 중력을 갖게> 될 때도,
아무리 <황폐의 비>가 내려도,
우리는 <내 속에서 커가는 이 치명적인 꿈>을 똑바로 바라보며, 또 바라야 살 수 있다. 삶은 철저한 부정 속에서도 살아남은 그 꿈 덕에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그렇고, 네가 그렇다.
간밤의 꿈에, 의사가 내게 말했다.
“유언을 준비하십시오.”
나는 일어나자마자 남편에게 웃으며 이 말을 전했다.
웃고 나니 그것은 심각하지 않은 농담이 되어버렸다.
나의 요즘 꿈은 이렇다.
즐겁게 살자.
그렇게 즐겁게 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