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함
사공이 사라진 하늘의 뱃전
구름은 북쪽으로 흘러가고
청춘도 病도 떠나간다
사랑도 詩도 데리고
모두 떠나가다오
끝끝내 해가 지지도 않는 이 땅의
꽃 피고 꽃 져도
남아도는 피의 외로움뿐
죽어서도 철천지 꿈만 남아
이 마음의 毒은 안 풀리리니
모두 데려가다오
세월이여 길고긴 함정이여
여기에서 청춘과 사랑이 동류항(同類項)으로 쓰이고 있는 반면에 이의 대칭으로서 病과 詩가 동류항으로 쓰이고 있다. (김치수)
시인을 생각하면 가끔 의아할 때가 있다. 왜 스무 살 남짓에 쉰 살은 넘은 여자같이 득도(?)해버린 걸까.
나이 먹어 좋은 것은 억울하지 않다는 것이다. 스무 살, 서른 살, 마흔 살까지도 억울함의 <독>이 쌓여 풀리지 않았다. 이제는 세월이 모든 걸 데려간다 해도 억울할 게 없다.
하지만 <피의 외로움>은 젊으나 늙으나 그대로이다.
세월이 아무리 <길고 긴 함정>이더라도 <철전지 꿈>도 데려갈 수 없다.
<마음의 독>을 풀지 못한 시인은 앞으로 어떤 시를 써나갈까, 나는 보고 있다.
비 ․ 꽃 ․ 상처
하늘에서 푸른 물의 상처가 내린다.
떠도는 스물 넷의 이마 위에,
하나씩 버리며 벗어 버리며
내가 마지막으로 눕는 꿈 위에
쏟아지는 비의 푸른 채찍질.
꽃잎에서 슬픔의 수액이 돋는다.
부끄럽게 비어 버린 알몸에
죽은 꿈의 문신이 돋아난다.
시간이 황량하게 고인다.
누가 열렬한 슬픔의 눈을 뜨고
꽃의 중심에서 울고 있나
하나씩 꿈을 떠나보내며
누가 빈 몸으로 울고 있나
허리에 감기는 비의 푸른 채찍
꽃. 상처. 스물 넷.
이 글을 읽으니 문득 떠오르는 시가 있다. 비와 상처를 함께 떠올리는 두 시인의 상상력이 흥미롭다.
<비에도 상처가 있다 / 돌아갈 수 없는 먼 길을 오는 동안 / 누군들 만나지 않았을까 / 바위에 부딪혀 생살이 패고 / 바람에 홀려 길을 잃고 / 그 많은 날들을 꿰매며 사는 비는 / 만남이 상처가 된다는 것을 / 처음부터 알았을까 / 비에도 상처가 있다> (이자영)
<빈 몸> 빈(없다) 몸(실체 있다)
시인의 시에서 몸은 정신이다. 정신의 상처는 <비어버린 알몸> <빈 몸>에 <죽은 꿈의 문신>을 만든다. 비, 꽃과 같은 외부에 첨예하게 반응하는 정신과 몸이 안쓰럽다. 시를 몇 수 읽지 않아도 그녀는 정신이 아플 수밖에 없었으리라 싶다.
비록 우리는 똥으로 가득 찬 몸땡이를 갖고 살지만, 정신이 남아 있는 한 꿈틀대며 흔적을 남긴다.
꽃보다 사람이 아름답다고? 천만에, 그렇지 않다. 다만 비록 <죽은 꿈의 문신>일망정, 그녀와 내가 토해냈을 때 비로소 살아있는 거다.
쓰레기가 되지만 말자.
Pixabay로부터 입수된 chulmin park님의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