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by 전예진

부숴져가는 것들을 철썩같이 믿으러 가자

무너져내리는 것에 죽을 각오로 부딪히자

온통 망한 자리에 아무 것도 모른 채 방문하는 첫 손님이 되도록 하자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 누군가를 맞으러 가자

가자

가자

오래된 건물에 등을 대고 온 힘을 다해 부닥치자

저게 다 무너져내릴 때까지

아무것도 모르자

철골과 콘크리트 조각, 각종 구조물들이

와 르 르 르 내려앉으면

이제 저녁을 먹으러가자

다음 날이 올 때까지 조금 쉬었다가

내일도 모레도, 매일

내가 방문하는 줄도 모르는 소식도 모르고서

침착하게 균열을 내기로하자

내일도 모레도 매일 그렇게

매거진의 이전글빛무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