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 지음, 홍한별 옮김, 2016
이 책은 1999년 미국 컬럼바인 고등학교의 두 가해 학생 중 한 명의 어머니가 쓴, 아니 참담한 고통 속에서 끌어올려낸, 책이다. 사랑스럽기만 했었던 자기 아들이 어떤 내적인 고뇌를 가지고 있었는지, 그의 마음의 병은 어떻게 감춰지고 있었는지 미처 깨닫지 못했다는 어머니의 회한과 성찰을 담고 있다.
이 책의 묘미는 감정적인 부분을 최대한 절제하면서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자신의 아들과 그 사건을 이해해보려는 과정을 담아나간다는 데에 있다. 물론 그 과정은 순탄치 않다. 어떤 사건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로부터 철저히 분리되고 객관화되어야 할진데, 바로 그 조건이, 이 비극적인 사건을 되짚어보려는 어머니의 절규에 가까운 노력을 또 다른 비극으로 만든다. 어머니는 아들을 도저히 타자화할 수 없다. 아들의 죽음 앞에서 결코 객관적일 수 없다.
하지만 이 용감한 어머니는 이 참혹한 현실-아들의 살인과 자살-을 떠올리는 고통을 기어코 받아들이고 그 이면에서 끝끝내 무언가를 건져낸다. 단순히 복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그 사건 속으로 끊임없이 데려가 체험시키고, 질문하고, 후회하고, 좌절하고, 또 그 속에서 의의를 찾으려 한다. 제 살을 갉아먹는 것 같은 질문 속에서, 아무리 자책해도 돌아오지 않는 현실 속에서, 그녀는 얼마나 많이 까무러쳤을까.
그 사건은 그녀를 구성하고 있는 것들을 송두리째 무너트린다. 삶의 의미, 행복의 조건, 여태껏 믿어왔던 가치들, 옳다고 생각했던 기준들, 그 모든 것들이 아득하게 멀어져가고 종래에는 존재 이외에는 어떤 것도 남지 않는다. 의미를 잃어버린 생은 얼마나 속수무책으로 흔들리는가. 말 그대로 모든 것이 붕괴되어 버린 삶을 그녀는, 다행스럽게도, 놓아버리지 않고 천천히 일으켜낸다. 하지만 이 복원 작업은 일상적인 의미의 복원과는 다르다. 그것은 결코 그 이전으로 돌아가거나 원래대로 회복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 잔해들을 껴안고 살아갈 작은 공간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스스로만이 스스로를 구조할 수 있는 조난 속에서 그 처절하고도 숭고한 구조 활동은 16년 동안이나 계속되어 이 책에 이르게 된다.
저자는 자식의 정서적인 부분에 더욱 긴밀한 관심을 가질 것을 촉구하면서 결론을 맺고 있지만, 나는 그 속에서 오히려 부모님의 끊임없는 고뇌와 희생을 너무 절절하게 읽은 나머지 순간 멍해질 따름이었다. 그 생각은 나의 부모님에까지 닿아, 그들도 저렇게 어려웠겠구나, 그들도 처음이라 떨릴 수밖에 없었겠구나, 그들도 내 생각에 뒤척이는 밤이 있었겠구나 하는, 그들에 대한 어렴풋한 이해를 가능케 했다.
그리하여,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은 이제 다소 잔인하게 들리기도 한다. 그 승패가 이미 정해져 있는 승부에서 항상 이기게 되는 자식은, 져 줄 수밖에 없는 부모의 염려와 근심과 위태로움 따위를 당장은 이해할 수 없기에 그 승리를 만끽할 지도 모른다. 그 승리의 환호는 예외 없이, 그들이 아이를 갖게 되어서야 피눈물로 변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알고도 자식과의 줄다리기에서 줄을 힘껏 당기지 못하는 부모의 마음은 무엇일까. 그것은 너무 거대하고 나는 아직 너무 작다. 아, 나는 아직 부모가 될 자신이 없다.
(2018.11.28.)
함께 읽을 시 : 이상국 - 달은 아직 그 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