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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e Mar 26. 2020

흔들리는 시국 속에서 내 전역날이 다가온거야



2020.04.09를 기점으로 드디어 자유인이 된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집해제일. 정든 강화도에서의 길고 긴 공중보건의 생활을 마무리하며, 지난 3년을 돌아보자.




1년 차. 석모도(a.k.a. 유배지)에서 쓴 편지


3년을 결정하는 배치 추첨. 운 좋게 서해 5도는 모면했지만 섬 생활을 아예 피할 순 없었다. 석모도로 말할 것 같으면, 80년대 연인들이 당일치기로 왔다가 어~ 배가 끊겼다지 뭐야~ 하고 어설프게 1박 2일을 하던 곳이다. 마지막 뱃고동을 확인한 뒤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 남자와 당황한 척하면서도 앙큼하게 침대의 디테일을 상상하는 여자가 있던 작은 섬. 시간이 멈춘 듯 낡은 배는 여전히 운행 중이었고, 나는 그 배에 의지해 얼마간 월요일 출근―금요일 퇴근의 유배생활을 계속했다. 다행히 금방 석모대교가 개통되어 좀 나아졌지만, 주중을 종일 갇혀 있었던 그 기간이 내 생애 가장 심심한 시간이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을 본받아 스스로를 행복으로 마취시키던 시절. 그래서 SNS에서 #살기좋은석모도 를 강조하며 석모도 홍보대사를 자처하던 시절. 그렇게 섬에 고립되어 같은 처지의 동료들과 밥도 해 먹고 술도 마시고 술도 마시고 술도 마시던 시절. 지금 생각해보면 첫 해의 사람들과 사건들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다. 지금도 후배 공보의들을 만나면 가끔 으스대곤 한다. 어이, 배는 타봤어?

논+바다의 이색적인 조합
허브 텃밭 그리고 저녁 풍경


2년 차. 한 걸음 더 가까이


드디어 강화 본도로 나와 저수지 앞 지소로 이사. 다리 하나만 건넜을 뿐인데도 삶의 질이 확 상승했다. 특히 좋았던 점은, 읍내의 축구장과 헬스장을 이용할 수 있는 거리라는 점. (비록 30분 운전을 해야 했지만) 저녁 식사를 굳이 해 먹지 않아도 사 먹을 수 있는 식당이 도보에 위치한다는 점. (두 개뿐이었지만) 게다가 월급도 비약적으로 오르고 연차도 갑자기 늘어나는 호재가 나를 도왔다. 맘만 먹으면 통일 빼고 다 할 수 있다는, 공보의의 꽃이라는 2년 차. 하지만 실상은 집돌이 생활반복이었다. 하루 일과가 근무-헬스장-도서관을 벗어나지 않던 날들의 연속. 소집해제까지 읽은 책 백 권을 채우자는 호기로운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독서에 매진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글쓰기의 원동력이 되었던 시간들이 아닐까 싶기도. (브런치도 이때 시작했다) 운동도 꽤나 열심히 했었는데 지금은 다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주륵.

저수지 뷰의 두 번째 관사
노을 맛집
결국 100권 채움


3년 차.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보일 듯 보이지 않는


3년 차에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있다면 '아직도'라는 단어다. '아직도 안 끝났어?', '아직도 강화도(또는 석모도)야?' 그놈의 아직도, 아직도, 아직도. 속에선 열불천불지만 꾹 참고 설명해준다. 석모도는 1년 차 근무지이고, 이제는 강화 본도와 김포를 잇는 대교 옆에서 근무한다고. 서울과는 1시간 정도의 지근거리라 이제 가끔 본가에서 출퇴근도 한다고. 아무리 떠들어봤자 외지인 석모대교와 초지대교의 차이를 알 리 없고, 대부분 '그게 뭔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고생하네' 하는 표정으로 응답한다. (더 열받는다) '남의 군생활은 보통 짧게 느껴지는데 네 군생활은 진짜 긴 거 같다'하는 친구들 앞에선 37개월인 대체복무의 불합리성에 대해 열변을 토하기도 했다. 그렇게 만나는 사람들마다 자세히 알려주고 별안간 분개하기를 반복하다가, 막판에는 그냥 포기했다. 그래.. 아직 강화도야.. 아니.. 평생 여기 살려고..

동료들과 호화 캠핑
10분 거리의 절과 카페

공보의 생활 마지막 보금자리는 관광지 근처라 식당도 많고 교통도 편리했다. 무엇보다 예쁜 카페가 많아서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는 재미가 쏠쏠했다. (참고로 강화 유명 카페들의 대표 격인 '조양방직'은 핫해지기 전 내가 슬리퍼 끌고 커피 마시러 다니던 곳이었다. 거기보다 더 힙한 카페들이 궁금하시면 언제든 연락하시라)


3년 차에 처음 접어들 때는 시간이 더더욱 느리게 가다가, 마지막이 가까워오니까 그제야 끝난다는 게 실감 나기 시작했다. 찬바람이 불어올 때쯤 불안감이 엄습한다고 어떤 선배가 그랬었던가.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놓았던 공부를 다시 시작한 게 그때쯤이었을 거다. 동료들을 모아 스터디를 하기도 하고, 외부 강의를 찾아 듣기도 했다. 그렇다고 노는 것도 소홀히  없었다. 이제 인생의 방학은 마지막일 테니까. 노느랴 공부하랴 막바지에는 몸도 마음도 꽤 바빴다.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원래 계획했던 미국 여행과 거창한 전역 파티 같은 건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렸지만, 지금 이 순간도 아주 격렬하게 여유를 즐기고 있다.




결론적으로 무엇이 남았냐고 하면? 잘 모르겠다. 자격증을 딴 것도 아니고 공부만 죽어라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연애를 질릴 만큼 하지도 못했다. 지난 3년을 생생히 증언해줄 물건이나 기념품 따위 없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삶을 살아내다 언젠가 유독 괴롭고 힘에 부치는 날에, 고민하지 않고 차를 몰아 달려올 만한 곳이 생겼다는 것. 왠지 그 곳엔 제육볶음이 끝내주는 푸근한 밥집과, 별이 빼곡한 별자리 스팟과,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선셋이 언제고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내 젊은 날의 희망과 고독과 애환과 잉여가 모두 깃들어있는 섬 강화도, 다시 만날 날까지 안녕!


(2020.03.26)



안녕 잘 있어 강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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