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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e Apr 05. 2020

사랑도 접목이 될까요



소개팅 주선에 관해 나의 지론이 있다면 이렇다. 당사자에게 '원하는 조건'보다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조건'을 물어볼 것. 원하는 조건을 물어보면 다들 눈부터 반짝이며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는데 그게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다. 안. 너네들이 지금 상상하고 있는 그런 사람은 내 주변에 없다.


한편, 타협할 수 없는 조건에 대해 얘기하라고 하면 구나 지체없이 기 시작한다. 담배, 이성문제, 맞춤법 틀리는 사람, 옷 못 입는 사람, 예의 없는 사람 등등. 그간의 경험과 학습 결과가 빼곡히 반영된 자기만의 리스트를 일목요연하게 브리핑해는 것이다. 그리고 경험상 그게 주선에 훨씬 도움이 된다. 참고로 내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담배 피우는 사람, 욕을 즐겨하는 사람,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 사실 이 밖에도 큼지막한 것들이 많으나 지면 관계상 생략하도록 하고, 내적인 측면에 집중해서 왠지 꺼려지는 성격들을 다시 한번 정리해봤다. 아무도 물어본 사람은 없지만.




1. 판단을 쉽게 내리는 사람


이런 사람이 있다. 깊게 들여다보지 않고 단정 짓기 좋아하는 사람. 딱 보면 그건 이거지. 그건 쉽지, 저거잖아. 그들은 뭐든지 파악이 빠르고 이것저것 말을 얹기를 즐긴다. 일견 논리적이고 호쾌하게 보일지 몰라도, 그건 아주 허술한 이기심이 아닐 수 없다. 언제나 자신은 판단을 쿨하게 내리는 멋진 인간의 위치에 서고 그 증명의 몫은 영원히 남들에게 미뤄두는 이기심.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모습만 가지고도 판단할 수 있다고(판단해도 된다고) 믿는 오만. 그 대상에게 한 뼘도 가까워지지 않으면서 대상을 효율적으로 라벨링하고 싶은 천박한 자기중심주의. 나는 특히 그런 이기심이 사람을 목적어로 할 때 도드라지는 경우를 많이 본다. 걔? 내가 잘 아는데 어쩌구 저쩌구.


2.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


판단을 쉽게 내리는 태도의 연장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주로 부정적인 감정을 대면할 때 도드라진다.) 예컨대 속상하고 우울하고 화날 때 우리는 그 책임 소재를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야 감정을 마음 놓고 폭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출처가 불분명한 어떤 누적적인 정서에 대해 뭉뚱그려 이름표를 붙이는 순간, 그러니까 지금 나의 불쾌는 너의 이것 때문이라고 대충 얼버무려 지목하는 순간, 그 감정은 돌이킬 수 없이 막강해진다. 주변의 비슷한 감정들까지 집어삼켜 몸집을 불리게 되면 그걸 막을 방도는 없다.


결과적으로 자기감정에 대한 판단이 가벼운 사람은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이 된다. 아 몰랑~ 하는 식으로 복잡한 진짜 원인들을 외면하면서 제 감정에 속수무책으로 끌려다니는 사람. 오르락내리락 기분을 조절하는 엑셀만 있고 브레이크는 없는 사람. 그들의 진짜 잘못은 애먼 주변 사람도 고통받게 한다는 데에 있다. 나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본질을 직시할 수 있는 사람에게서, 내면에서 폭풍이 마구 휘몰아칠 때도 차분하려고 애쓰는 사람에게서, 이성적 매력을 넘어 인간 본연의 숭고함을 느낀다.



3. 허세 부리는 사람


언젠가 그런 경우를 본 적이 있다. 유명 평론가의 말을 자기의 고유한 생각인 듯 말하던 사람. 허세는 그가 부리는데도 내 얼굴이 화끈거려 혼났다. 가끔 우리 스스로를 부풀리고 싶은 욕망을 이기지 못한다. 대화 속에서 나의 지위를 공고히 하고 싶거나, 또는 내가 아는 바를 뽐내고 싶거나 하는 어리석은 이유로. 그렇게 쌓아 올린 허영의 탑 타인의 말 한마디로도 폭삭 무너져내릴 수 있다. 그러면서 여태 아슬하게 지탱 일말의 믿음까지도 한꺼번에 주저앉힌다. (그 발언 이후로 나는 그의 많은 말들을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이 순간적인 충동이라면 모르겠지만 일종의 행동 패턴으로 굳어지면 굉장히 꼴 보기 싫어진다. 어딘가 빵빵해져 뒤뚱거리는 모습이랄까. 꼭 검증이 필요한 분야가 아니더라도, 꼭 그 분야에 대한 선행 지식이 없어도, 보기에 이미 충분히 기괴해 보인다.




연인의 상징 연리지

헤르만 헤세는 이렇게 말했다. 만일 우리가 누군가를 미워한다면, 그 사람 안에서 자신의 일부를 발견하고 미워하는 것이라고. 내 안에서 비롯하지 않은 것은 결코 나를 흔들 수 없는 것이라고. 맞다. 무언가를 쉽게 단정짓기도 하고, 어떨 때는 감정에 휩쓸리기도 하고, 있어 보이려 애쓰기도 하는 미숙한 모습들이 분명 내게도 있다. 그렇다면 큰일이다. 싫어하는 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건 결국 내 단점들이 그렇게나 많다는 얘기다. 마음속에 아주 뒤틀리고 모순적인 자아를 여럿 키우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식목일이다.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하는 일이 나무를 옮겨 심는 것처럼 간단하면 좋으련만. 어떤 나무는 저렇게 애틋하게 가지로 서로를 붙들어 자라기도 한다는데. 이토록 호불호 심하고 까다로운 나는 과연 어떤 나무와 접할 수 있을까. 내가 만약 나무라면 아마 줄기가 막 얽히고설킨 등나무 같으려나. 곧게 자라지 못하고 막 휘어지고 비껴가며 제멋대로 자라는 나무. 저 같은 나무도 접목이 될까요. 엉엉.


(2020.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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