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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e Jun 10. 2020

[수플레] 세상은 온통 열린 문

ep.17 Love is an open door





수많은 명곡을 낳은 디즈니 영화 <겨울왕국>. 그중 내 최애 곡은 감미로운 듀엣이 돋보이는 이 노래, 'Love is an open door'다. 서로 첫눈에 반해 운명적 사랑을 시작하게 되는 남녀의 설렘과 환희가 담겨있는 내용이지만, 이후 극의 진행을 고려해보면 썩 로맨틱하지만은 않다. 흡사 완벽한 남주처럼 보였던 왕자는 사실 흑심을 품고 접근한 빌런이었기 때문. (디즈니는 전 세계의 금사빠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싶었던 걸까?) 종합해보자면 사랑은 열린 문과 같지만, 열린 문이라고 아무 데나 불쑥불쑥 들어갔다간 낭패를 보게 된다는 얘기다.


그 교훈은 비단 사랑뿐 아니라 사람을 대할 때 해당다. 아무나 덥석덥석 믿었다간 이 험난한 세상 제정신으로 살아내기 어렵다. '멘토'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 점점 살기 팍팍해지는 우리 세대는, 삶의 방향을 자신 있게 제시해 줄 멘토에 유독 목마르다. 난세일수록 백성들은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를 원하고 사회가 혼란스러울수록 시민들 슈퍼 히어로를 찾는 법이니까. 그래서 누군가는 인생 멘토를 만나는 걸 최대 목표로 설정하기도 하고, 아니면 성공의 요인으로 훌륭한 멘토를 만나는 것을 꼽기도 한다. 허나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꽤 오래전부터. 그건 아마 한 선생님―내가 멘토라고 부를 수 있을 뻔했던―에 대한 기대가  다음부터였던 것 같다. 특별히 그가 나에게 잘못을 했다거나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러서가 아니었다. 그도 사람이라는 것을, 선택의 기로에서 나와 똑같이 고민하고 방황한다는 것을, 그래서 그가 나를 영원히 이끌어줄 순 없다는 것을 언젠가 어렴풋이 느꼈을 뿐이다. 어쨌든 그런 깨달음 이후 나는 멘토라는 개념에 대해 아주 회의적으로 변했다. 각자가 제 인생만으로도 버거운데 누가 주제넘게 남의 삶에 가이드를 자처할 수 있나. (게다가 요즘은 멘토를 빙자해 혹세무민 하는 인간들도 있다) 인생에 꼭 한 명의 멘토를 만나라, 는 말은 내게 완벽한 이상형과 결혼을 해라, 따위의 뜬구름 잡는 소리로 들렸다. 


하지만 독고다이를 외치기엔 나는 너무 연약한 존재였다. 이태원 클라쓰는 드라마일 뿐이었고, 나이를 먹을수록 모르겠는 것 투성이었다. 어떤 시인은 '이렇게 살 수도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온다'라고 했던가. 내게 심리적 서른은 남들보다 조금 일찍 왔다. 이대로 살 수도 죽을 수도 없었고 무엇보다 한 치 앞도 안 보였기 때문에, 나는 아무에게나 무턱대고 도움을 청하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은 학교의 한 선배님이었다. 내가 관심 있던 분야에 먼저 발을 담가 성공적으로 사업을 꾸려나가시던 분이었는데, 모교에 강연을 온 틈을 놓치지 않고 명함을 받아냈다. 이튿날 다짜고짜 문자를 드렸다. 이러저러해서 내가 당신과 식사를 하고 싶으니 시간을 내주십사 하고. 그분은 망설이지 않고 그렇게 해주셨다. (발칙하게도) 거기서 나의 부탁은 그치지 않았다. 이러이러해서 동기/후배들과 스터디를 꾸릴까 하는데 거기서 자문과 교육을 맡아 주시라. 그분은 또 그렇게 해주셨다. 그렇게 야금야금 시간을 늘려가면서 장장 일 년인가를 선배님 뒤꽁무니에 붙어 다녔다.


또 언제는 국제 학술지에 등재될 논문을 쓸 일이 있었는데, 막막했던 나는 고심 끝에 고등학교 동문 선배님께 연락을 드렸다. 연구원이신 선배님께선 도와주고 싶지만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니라 미안하다며 대신 당신의 동료를 선뜻 소개해주셨다. 그렇게 만나 뵙게 된 교수님 역시 자기 일인 양 팔을 걷어붙이고 열정적으로 도와주셨다. 논문 작성의 A to Z를 강의해주셨으며 (아주 소꿉장난 같은) 학부생 나부랭이 논문의 교신저자로 참여해주시기도 했다. 해외 학회까지 소개해주신 덕분에 헝가리로 포스터 발표 겸 여행을 다녀올 영광도 얻었다. 비록 논문은 결국 까였지만. 주륵.


나의 요청은 해를 거듭할수록 대담해졌다. 한창 진로 고민으로 골몰하던 때, 우연히 참석한 강연의 연사였던 한 교수님에게 대뜸 메일을 드렸다.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고 이러이러한 미래를 그리고 있는데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 타진해 달라, 나는 물었고 교수님은 나를 지인들과의 식사 자리에 초대해주셨다. 거기 모인 많은 분들께 각기 다른 유익한 조언을 많이도 얻었다. 이후에도 교수님께선 본인의 연구 소모임에 게스트로 참가할 기회를 주시기도 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해 지금까지 두고두고 아쉽다)


잡지를 보고 연락드린 분도 있다. 이미 한 분야의 정점이자 전문가 중의 전문가셨던 그 선생님께선, 바쁜 와중에도 도움을 청하는 내 메일에 상냥하게 칼답을 주셨다. 언제 또는 언제 시간이 있으니 자신의 공간을 방문해도 좋다. 한껏 들뜬 나는 키지도 않은 자기소개서를 작성해 지방에 위치한 그곳까지 찾아갔다. 선생님께선 단순 진로 상담을 넘어서 인생 선배로서 솔직하고 냉철한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처음 만난 청년에게 따뜻한 음식까지 대접해주시면서. 그 후로 사소하게 몇 번을 더 뵐 기회가 있고 그때마다 난 굳게 다짐했다. 저분만큼 성공할 순 없을지라도 저런 어른이 되어야겠다.

 



멘토, 그리고 인간에 대한 나의 근원적인 불신과 의심이 무색하게, 내가 만나 뵌 인생 선배들은 한결같이 호의적이고 따뜻한 분들이다. 당신의 일만으로도 바쁠 텐데 기꺼이 시간을 할애해주고, 생면부지의 남에게 '기회'라는 것을 쥐어주려 노력하셨다. 최근에도 그랬다. 실은 지난주쯤 브런치의 한 작가님께 문의를 드렸다. 글에 등장한 어떤 분을 직접 만나 뵙고 싶은데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연락처를 좀 알려주실 수 있겠느냐고. 몇 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답변이 왔다. 내 사연과 메일을 그 분께 전달해주셨다는 얘기였다.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감동과 기대로 뒤섞여 있을 즈음당사자 분의 세상 따스한 메일까지 도착했다. '서로 할 얘기가 많을 것 같으니 한번 얼굴 뵙고 얘기 나누면 좋겠네요. 가능한 시간 알려주시면 제가 시간 맞춰보겠습니다.' 온라인으로 좋은 사람 두 명을 만난 것 뿐인데 주말 저녁이 온통 벅차올랐다. 역시, 사람이 미래다. 그냥 사람 말고 좋은 사람.

그 미래에 두산은 없을 것 같지만


사실 나는 꽤 오래도록, 사람을 믿으면서도 동시에 믿지 않았다. 누구보다 열려있는 듯 보이면서도 언제든 닫을 준비를 하고 있었달까. 분명 비겁한 태도였지만, 굳이 변명하자면, 연약한 내 속살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위악의 껍질로 무장하고는 마음속으론 혼자 꽃잎점을 치곤 다. 사람을 믿는다, 믿지 않는다, 다시 믿는다. 꽃잎을 하나씩 떼어내면서 감정이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다. 하지만, 정말 신기하게도 늘 같은 결론이다. 역시 믿지 않는 게 좋겠어, 하다가도 어느새 스멀스멀 타인에게 마음 깊이 의지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식이다. 꽃잎이 짝수건 홀수건 마지막 잎을 뜯으면서는 어김없이 '믿는다'를 외치게 되는 것이다. 보이는 문마다 벌컥벌컥 열어제끼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한결같이 진심과 환대를 되돌려주는, 이렇게 따뜻한 사람들 덕분에.


다시 노래로 돌아오자. 아름답게 화음을 쌓는 두 사람의 말마따나 사랑은 열린 문이다. 비록 두 사람이 운명이 아니었을지라도. 이젠 사랑뿐 아니라 세상이 온통 열린 문이라는 사실도 비로소 믿을 수 있겠다. 단지 두드리는 것만으로도 언제든 열릴 준비를 하고 있는, 누구든 간절한 사람이라면 들여보낼 채비가 되어 있는 문들. 그렇게 흔쾌히 열리는 문들 앞에선 세상이 좀 더 살아볼 만한 것이 된다. 나에게 수많은 기회가 도처에 널려 있다는 사실만으로 위로가 되는 것이다. 혹여 그 문 안쪽에서 무언가를 건져오지 못한다 해도.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다양한 문과 문고리 앞에서 망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 남의 문 앞을 기웃냐고 윽박지르거나 핀잔 주는 경우는 결단코 없을 테니까. (그런 경우가 드물게 있다면 문만 화려하고 내부가 초라한 사람이겠다) 더 나아가 남들에게 자기 문을 활짝 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더 좋고. 아 물론, 평소에 당기세요와 미세요를 잘 구별하고 실천하는 사람에게만 한정된 얘기.


(2020.06.10)


*제목은 랄프 왈도 에머슨의 격언을 인용했습니다 

세상은 온통 문이고, 온통 기회이고, 울려주길 기다리는 팽팽한 줄이다.
The world is all gates, all opportunities, strings of tension waiting to be struck.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줄여서 수플레)'는 네 명의 브런치 작가가 매주 수요일마다 본인의 에세이가 담긴 음악을 소개하는 읽고 쓰는 라디오입니다. 잠들기 전 이름 모를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노래를 듣고 싶으셨던 분들, 즐겨 듣는 노래에 다른 누군가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궁금해본 적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매주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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