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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올 Jun 17. 2020

미니 가죽 스커트

ep.18 아이유(IU)_밤편지

'이 밤 그날의 반딧불을 당신의 창 가까이 보낼게요

음~ 사랑한다는 말이에요'


이제는 아티스트라고 이야기해도 손색없는 가수 아이유의 밤편지를 들고 왔어요. 이 곡은 제게는 음 '만약 내가 가수가 된다면 나의 곡으로 만들고 싶은 노래 한 곡은?' 이라는 질문에 답으로 꼽을 수 있는 곡입니다. 2017년에 발표된 이 곡은 아이유가 직접 작사한 서정적인 멜로디가 인상적인 노래입니다.

https://youtu.be/BzYnNdJhZQw

[MV] IU(아이유) _ Through the Night(밤편지)


이어서 밤편지를 좀 더 색다르게 감상해 볼 수 있는 동영상 하나 더 추가해요. 양희은 선생님이 그녀의 음색을 담아 밤편지를 부른 장면인데요. 좀 더 감정이 차오르고 싶을 때는 이 영상을 찾아보곤 합니다.


https://youtu.be/9pN19w9aaSI

유희열의 스케치북 Yu Huiyeol's Sketchbook - 양희은 - 밤편지.20180825


밤편지는 뭐랄까. 저에게는 늦은 밤 또는 새벽에 아니면 그렇지 않은 시간에도 마치 선선한 밤공기에 둘러싸인듯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노래예요. 그리고는 살며시 눈을 감게 하고 저를 둘러싸고 있는 많은 요소들을 저에게서 거리 두게 해주는 곡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요. 마치 SF영화에서 모든 장면이 멈추고 주인공의 육체에서 팡~하고 영혼이 튀어나와 주위를 객관적으로 둘러보게 되는 그런 장면 있잖아요. 그렇게 찬찬히 제 옆에 있는 것들을 들여다보는 거예요. 그럴 때 저에게 자주 선택받는 노래, 아이유의 밤편지 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제가 몇 해 전 어느 날 밤에 제가 제 스스로에게 띄운 편지를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편지 형식은 아니지만 제가 아 나도 에세이라는 걸 한 번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처음으로 저를 들여다보며 써 내렸던 습작인데요. 제 주변 지인들은 한 번씩 읽어본 적이 있는 글이에요. 서툴고 부끄러운 부분이 많지만 아마 그 당시에 진심을 담아 썼던 글이라 지금까지도 굳이 수정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그런 아이러니한 글이거든요. 수플레에도 한 번은 기록해 두고 싶어 들고 왔어요.


미니 가죽 스커트


2012년, 그 해의 이름은 ‘SO WHAT?’이었다. 한국어로 ‘어쩌라고’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이렇게 다소 저돌적인 이름은 2012년 새해와  함께, 한 교수님의 조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너는 너만의 틀을 깰 필요가 있어. 너무 안일해.”  


 나만의 틀. 실은 나도 오래전부터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나름 방송일을 하고 싶다는 나는 스스로가 보기에도 '경험' 부족.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면 제대로 된 '일탈'이라는 게 없었다. 반항을 해도 반항처럼 보이지 않고, 나름 일탈을 꿈꾸었다 해도 남들이 '에게게~' 하는 수준 정도?. 마치 일탈을 위한 일탈 같은... 모범적인 느낌이 꽤나 풍겨 나는 일들만 가득해서, 괜시리 '청춘'이란 타이틀을 달고 있는 내가 부끄러울 정도였다. 아니, 이 세상 많은 이들 앞에 서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내가 이런 경험 한 번 못해봐서 어떡하나. 하는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던 참이었다. 내 경험의 폭이, 표현의 폭이 참 좁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그 해에는 ‘어쩌라고’의 정신을 가슴에 팍 박기로 마음먹었더랬다. ‘어? 쟤가 저런 면도?’ ‘원래 저런 애였나?’ 하는 반응을 얻으면 성공적인 한 해로 평가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하나. 방법을 몰라 헤매다가 실패하면 어쩌지 하는 강박관념까지 생겨버렸다. 우선 나는 의외다 싶은 것부터 시작해보기로 했다. 어떤 상황에 처하면, 내가 할 법한 행동이 아닌 하지 않을 법한. 일명 청개구리 작전을 써보기로 한 거다. 마냥 대범하지 못한 성격 탓에 싫은 소리 하기 어려웠던 내가, 털털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 직설적이게 말을 해보기 시작했다. 시끄러운 곳에 있는 것이 별로 흥미롭지 않던 내가 일부러 자청해서 시끌시끌 놀아보기도 했다. 물론 으레 중간에 나오긴 했지만.  

 공식적으로의 첫 시작은 친구들과 ‘월드 디제이 페스티벌(World DJ Festival)’에 가기! DJ라... DJ 하면 떠오르는 내 머릿속 풍경은 새벽녘 즈음 "여러분 이 시간까지 잠 못 들게 만드는 고민, 있으신가요? 그런 분들을 위한 명상의 노래 한 곡 들려드려요. 조용필이 부릅니다. 이제 그랬으면 좋겠네"라고 속삭여 주는 아나운서가 있는 방송국의 고요한 부스 밖에 생각이 나지 않던 내게, 삐쉬삐쉬~ 하며 턴테이블을 돌리는 DJ를 먼저 떠올리는 또래들이 참 신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와 고백하건대, 그날의 기억은 내게 ‘추위’와 DJ들이 마구 돌려대던 턴테이블만큼이나 빤짝이던 ‘은색 돗자리’로 자리매김했다. 한창 흥겨운 새벽 1시, 수많은 청춘들이 모여 신나게 춤을 추던 그때, 나는 구석 자리에서 은색 돗자리를 깔고 추위에 떨며 잠을 자보려 노력했던 기억만 가득했기 때문이다.  한  번 더 가라면 손사래를 칠 힘들었던 기억뿐이지만, 그래도 별점을 매기라면 별 5개 만점에 4개 정도를 내줄 수 있었다. ‘나도 새벽까지 시끄러운 곳에서 놀아 본 적이 있다.’는 그 자체가 뿌듯함이라고 이야기하기에 충분했던 시절이었다.   

이런 변화무쌍한 마음이 옷 입는 스타일에도 드러났나 보다. 내게 조언을 해주신 그 교수님은 내 주위 사람들에게 " 쟤 무슨 일 있니? 왜 입지도 않던 스타일로 입고 학교에 왔대니?" 하셨더랬다.  


하루는, 친한 대학 동기 동생과 늘상 걷던 길거리에 위치한 한 옷가게에서 마네킹에 디피 되어 있는 원피스를 단 번에 산 적이 있었다. 한눈에 봐도 그동안의 내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가죽 소재에 끈 두 개가 턱 하니 어깨에 걸릴, 광택 나는 은색 단추는 무려 여덟 개나 달려있는 원피스였다. 옷은 나무랄 데 없이 예뻤지만, 실은 내게 잘 어울리는 옷은 아니었다. 평소 내 스타일을 나보다 더 잘 아는 동생은 “입어 보고사지?” 했건만 "에이 괜찮아~예쁘잖아 나도 이런 거 입을 줄 안다고!" 뻥뻥 큰소리치면서 망설임 없이 사버렸다.  


"이야 언니가 정말 취향이 바뀌었구나"   


반신반의의 표정을 띄고 꽤나 신기한 일이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주었다. 변화의 한 해를 보내고 싶어 하는 내게, 나름대로 충분한 응원을 해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러던 9월의 어느 날, 꼭 하고 싶었던 활동의 최종 면접이 있던 날이었다.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인기 있는 그 대외활동은, 스펙 많은 대학생들이 아닌, 정말 대학생다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학생들을 선호한다기에 끌렸다. 나름 청춘답게 살겠다며 노력하는 나의 모습을 자기소개서에도, 주어진 미션에서도 꼼꼼하게 표현해 냈던 터라 면접은 수월하겠다며 자신감 있는 태도로 면접관들의 질문에 대답했다. '오 나 나름 열심히 대답했는데?' 하며 뿌듯해하던 그 순간 마지막으로 한 면접관님이 내게 질문 하나를 던지셨다.  


“학생은 술 먹고 막차 끊겨 본 적 있어요?”   

“...... 네? 아니요.”    

당황하고 있는데, 이어지는 질문.    

“학생은 학생의 개성이 뭐라고 생각해요?”  


멍... 그 순간 내 머릿속이 정말 백지가 된 기분이었다. '어디서나 잘 어울리는 게 오히려 제 개성이라고 생각합니다.'라는 얼토당토 한 말로 이래저래 둘러대고 면접장을 나왔지만, 하루 종일 기분이 멍했다. 역시나 예상대로 그날의 면접은 실패였다. 면접관님들은 아셨던 거다. 내가 그분들 앞에서 진짜 ‘나’를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는 학생이라는 것을, 연륜으로 정확히 아셨던 거였다.  

그 해 가을, 나는 참 많이 울었다. ‘틀 깨기’ 에만 집중하느라 나다움을 잃어버린 내가 참 어리석게 보여서.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게 정말 어울리는 것이 무엇이고,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게 어울리는 사람인지. 진짜 ‘나’를 잃어만 갔던 시간들이 참 많이 속상해 울었다.


겨우 눈물을 그치고 많은 것을 0점 출발선에 다시 올려놓았던, 11월의 가을바람이 점차 매섭게 바뀌던 그즈음, 오랜만에 만난 또 다른 동생이 생긋 웃으며 안부인사처럼 건넨 한마디.   

“언니~ 나는 언니가 심플하게 입는 게 제일 예쁘더라 그 왜 아무것도 없는 무지 티에 청바지에! 제일 예뻐~"  

그러니까 말이다. 어쩌면 틀을 깨는 일은 나다움을 잃지 않을 때 가능한 건지도 모르겠다. 나다움이라는 건. 어쩌면 정말 오랫동안 나와 함께 할 수 있었던 그것, 나다울 때 제일 빛이 날 수 있는 것. 애써 억지로 꾸미려, 바꾸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는 일. 무엇이 그리 매력적이여 보이지 않아, 위 태위태 나를 잃어가면서까지 변화하려 했던 걸까.   


그 가을 이후, 나는 다른 사람들이 반짝인다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내게 소중한 것을 알아보는 눈을 찾아서. 다른 사람들이 부럽다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차근차근 찾아가기 시작했다. 더 화려하고, 더 높고, 더 많은 것이 아닌,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을. 아직도 참 서툴러서 넘어지기도, 무너지는 것도 여전하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니 진짜 ‘나’를 찾아보려는 순간, 비로소 나는 진짜 ‘변화’ 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샀던 가죽 원피스를 꺼내 입지 않은지 몇 달이 지났을까. 그 원피스 왜 안 입고 오냐는 동생의 질문에 "그러게 이제 못 입겠더라고. 안 예뻐 보여. 어떻게 하지" 했더니. 언니한테 어울리게 리폼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 그 원피스 리폼이나 하러 가야겠다.


P.S

2020.06.17/그 후로 몇 년이 지난 지금 한  번 더 가라면 손사래를 칠 힘들었던 기억뿐이지만 -> 은 무슨 최고의 유산소 운동은 페스티벌 참여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되어있다는 반전.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줄여서 수플레)'는 네 명의 브런치 작가가 매주 수요일마다 본인의 에세이가 담긴 음악을 소개하는 읽고 쓰는 라디오입니다. 잠들기 전 이름 모를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노래를 듣고 싶으셨던 분들, 즐겨 듣는 노래에 다른 누군가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궁금해본 적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매주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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