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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e Dec 15. 2020

[수플레] 아홉수를 떠나보내며

ep.41 자그마치(ZAGMACHI) - 나이나이에



야심차게 시작한 2020년. 대체복무도 끝나고 직장도 구하고 새로운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나를 둘러싼 다양한 부분에 유독 변화가 많았던 해다. 코로나라는 암초를 만나서 계획대로만 흘러간 것은 아니지만, 원래 인생이라는 것이 다 그렇지 않나. 올해를 마무리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노래를 꼽아보기로 했다. 내 마음을 정확히 대변해주는 노래가 있어서 가져왔다.  


ZAGMACHI - 나이나이에
눈 뜬 새벽 취기는 가시질 않네
허나 왜인지 더 또렷하기만 해
TV를 켜보니 환하게 웃는 사람들
어쩐지 낯익더니 몇 년 전에 본 재방송  

저 TV 속에 나오는 연예인보다
내 나이가 벌써 훨씬 더 많다니
나 이 나이 먹을 동안 대체 뭘 하고 있었나
어느새 스물하고도 아홉이 되어버린  
이 밤이 지나고 나면

다시 또 새벽 반쯤 감긴 눈으로  
들어오는 건 체홉의 희곡집
공감을 못했던 이 극 속의 등장인물들  
이제야 조금은 이해가 되려 하네

이 책의 막장 속에 쓰인 작가의 이력
내 나이에 설마 이걸 다 썼다니  
나 이 나이 먹을 동안 대체 뭘 하고 살았나  
어느새 스물하고도 아홉이 되어버린 이 밤을
나 이 나이 먹을 동안 대체 뭘 했나  
어느새 서른하고도 하나가 되어버린  
이 밤이 지나고 나면    

이 밤이 지나가고 나면  
더해질 삶의 무게야  
버틸 수 없을 만큼  
힘이 들면 어쩌나  
그래도 웃을는지  
여전히 사랑할는지  
해가 오른다 어제와 다름없이




스물아홉은 아주 애매한 나이다. 이십 대의 끝자락. 남들이 보기엔 번듯해 보이지만 실상은 속 빈 강정인 나이. 뭐라도 가진 게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아직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한 나이. 새로운 도전을 하자니 세월의 무게가 무겁고, 그냥저냥 살아가자니 '인마 네 나이 때면 뭐든 할 수 있지' 하는 타박 아닌 타박을 듣는 나이. 아래에선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데, 위에선 저렇게 잘 나가는데, 나는 이 나이 먹도록 뭐 했나 싶은 나이. 아스팔트 사이에 돋아난 풀꽃이 눈물겹게 대견해 보이고 불멍이든 물멍이든 아무튼 멍하게 보낼 시간이 절실한 나이.


나 이 나이에, 아무것도 이룬 게 없다. 정말 아무것도. 누구는 내 나이에 주식으로 대박을 치고 누구는 알만한 유튜브 스타가 되고 누구는 빛나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데. 끊임없이 시간을 밀어 올리며 성과를 착착 쌓아나가는데. 그래서 그들의 계좌 잔고가, 그들의 유튜브 계정이, 그들의 행적이며 기록 같은 것들이 그들의 삶을 증거하는데. 나는 과연 무엇으로 내 존재를 증명할 수 있나. 조금 오버하자면 내일 당장 내가 실종된다 해도 세상은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뭐 특징적인 게 있어야 기억을 하든 추모를 하든 하지. (그렇다고 사라지고 싶다는 뜻은 아니다..)


고백하자면 가끔 우울에 빠지곤 했다. 남들의 가장 빛나는 모습에 나의 가장 초라한 모습을 견주어 보고 절망하던 날들. 거기에 나의 개인적이고 내밀한 불행까지 더해 스스로를 못살게 굴던 밤들. 사실 가끔이 아니고 꽤 많았다. 내가 이런 얘기를 하 이해하지 못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네가 왜? 잘 살고 있잖아? 누군가는 나를 보고 부러워할 수도, 혹은 내 삶을 동경할 수도 있으리라. 안다. 모든 것이 욕심 때문이라는 걸. '이 정도면 괜찮네'하고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걸. 하지만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그건 물 반 컵을 보고 '물이 반이나 있네'하고 긍정하는 일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물 반 컵뿐인데 사람들은 아예 물을 욕조에 받아 물장구를 치고 있거나, 남들의 물컵은 식탁 위에 가지런한데 내 물컵이 놓인 자리는 사막 한가운데인 것만 달까.




천근만근인 것은 네 마음

잘난 사람들 투성이에서 자신이 하찮게 보일 때, 그러니까 힘든 건 내 삶 자체가 아니라 내 마음이구나 싶을 때,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본다. 거기엔 어딘가 꼭 있을 것 같은 동네 어딘가 꼭 있었으면 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자신의 인생은 망했다고 말하는 착해 빠진 남자와, 나이 오십 먹도록 아무것도 이룬 게 없다면서 해맑게 웃는 남자와, 이미 가진 모든 걸 버리고 일찌감치 절로 들어간 남자가 나와 겹쳐지고 또 멀어진다. 그걸 보고 있자면 뭔가 위로를 받는 기분이다. 그들이 나보다 잘나고 못나고 와는 관계없이. 내가 그들처럼 되고 싶고 말고 와는 관계없이. 그냥 그런 사람들이 어딘가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넉넉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같은 고민을 하고 사는구나.

   

나도 아저씨가 되어가는 중
불경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상훈> 역의 박호산 배우 인터뷰




나는 여전히 침대맡에 널브러져 맞는 휴일이 죄스럽다. 누구는 매일 여섯 시에 일어난다는데, 누구는 투잡 쓰리잡을 하고도 멀쩡하다던데. 이렇게 몸이 편해도 되는 것인가. 이렇게 잠이 달아도 되는 것인가. 억지로 운동이며 달리기며 몸을 움직이고 흘린 땀만큼 삶에 대한 부채의식을 덜어낸다. 이룬 것이 없는데 열심히라도 살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다. 그렇게 나 자신에게 필요 이상으로 엄격해질 때마다 떠올리는 구절이 있다.

우리의 삶은 남들만큼 비범하고, 남들의 삶은 우리만큼 초라하다.


허지웅 작가가 실의에 빠진 청춘을 위로하며 쓴 의 마지막 문장이다. 나는 마음이 소란스러울 때 이 말을 자주 되뇐다. 어떤 날은 가만히 소리 내어 읽어보기도 한다. 나의 비범함을 되새기거나 남의 초라함을 들추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들이 모두 같은 고민을 하고 산다는 것을 환기시키기 위함이다. 지금의 내 고민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 모두의 것이라면 오히려 누구의 것도 아닌 게 된다. 결국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 일도 아니다.


쓸데없이 남들과 비교하면서 자신을 갉아먹는 못된 습관을 언제쯤 완전히 떨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렇게 좋은 노래와 책과 드라마와 또 사람들 덕에 부족한 마음을 잘 다독여가며 여기까지 왔다. 앞으로도 그렇살기로 하자. 많은 아름다운 것들에 기대어. 내년부터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바뀐 앞자리에 부끄럽지 않게 스스로를 긍정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아 근데 나 내년에 서른이야? 아니 잠깐만. 그건 좀 큰일인데. 


(2020.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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