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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e May 14. 2021

제주에서 느끼는 것들



숙소 1분 거리 산책길

오늘로 제주 일주일 차. 블로그에 하루 일과를 정리해서 올리고 있으니 제주 생활이 궁금하신 분들은 참고하세요. 맛집/카페 추천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곽지해변
@디앤디파트먼트 제주

똑같은 장소여도 여유를 얼마나 갖느냐에 따라 여행의 퀄리티가 달라지는 것 같다. 일정이 밀리거나 날씨가 후져도 조급하지가 않다. 여유롭게 다른 일정으로 갈아타거나 아예 숙소 근방에서 느긋하게 쉬기도 한다. 각종 연차와 휴가를 끌어모아 4박 5일을 왔을 때를 생각해보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여유로운 마음가짐이라는 게 이렇게나 중요한 것! 투자를 할 때 빚을 내거나 자금을 몽땅 땡겨서 하면 쉽게 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유의 차이가 다르니까. 반대로 생각해보면, 4박 5일을 여행해도 한 달을 온 것처럼 다니면 더 편안하고 행복한 여행이 될 것이다. 전 재산을 때려 넣고도 100만 원 정도 투자한 것처럼 대범하게 생각하면 돈 벌기가 훨씬 쉬울 테고. 그래, 불교의 가르침 중에 이런 말이 있었지.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라고. 근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숙소에서 <본 투 비 블루> 다시 보기

혼자여서 심심하지 않냐고 많이들 물어보시는데, 반반이다. 일단 제주도에서 지내는 선/후배가 꽤 많기도 하고, 정 심심할 땐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거나 sns를 하거나 하면 금방 또 세상과 연결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여기는 단절을 위해 온 거니까 최대한 그러지 않으려 한다. 주로 바다를 보면서 멍 때리거나, 산책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하면서 생각 밸브를 천천히 열어놓는다. 그냥 이런저런 생각을 흘러가게 두는 것이다. 그렇지만 금기가 있다. 앞으로의 미래를 걱정하는 일은 하지 않기. 어차피 여행 끝날 때쯤 되면 내 성격 상 그런 고민들로 잠 못 이룰 걸 알거든. 사실 벌써 좀 시동 걸리기 시작했다. 으으. 취직할 생각 따위 지금은 하지 말아야지.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시오.. 코끼리..

@평대해변

@삼리공동목장

요즘 생각의 화두는 '습관'에 관한 것이다. 내가 어떤 습관을 가지고 있는지. 습관은 여태껏 어떻게 나를 빚어냈는지. 앞으로는 어떤 습관을 고치거나 새로 들이고 싶은지. 우리는 정말 지긋지긋하게도 습관에 지배당하는 삶을 산다. 사람들은 종종 특정 시점을 기준 삼아―내년이 되면, 학교를 졸업하면, 서른 살이 되면, 등등―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 거라고 선언하지만 막상 진짜로 바뀌는 일은 드물다. 나 역시 제주에 오면 매일 2km를 뛰고, 40분은 글쓰기를 위해 책상에 앉아 있고, 하루 한 시간은 휴대폰을 멀리 두자고 다짐했건만 그중 하나도 잘 지키지 못하고 있다. 어느새 침대에 누워 유튜브 인기 급상승 동영상을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식이다. 관성이라는 것이 이렇게 무섭다. 

@한림항 에서 본 비양도

그래도 이번 여행을 통해 고치고자 하는 습관이 있다면 '미루지 않기'다. 


나는 많은 것을 미루고 살았다. 맛있는 반찬은 마지막 순간까지 아껴두기. 정말 맘에 드는 책이 있으면 일부러 천천히 나눠가면서 읽기. 좋은 장소가 있으면 나중에 꼭 다시 오기로 다짐하며 아쉬울 때쯤 자리를 뜨기. 행복한 순간일수록 미완성인 채로 놔두는 데엔 이유가 있다. 미래에 느끼게 될 행복을 예측 가능한 범위로 묶어두기 위함이다. 일종의 헷징 효과랄까. 책의 뒷부분을 나중에 읽으면 지금만큼 또 충만하겠지. 여기를 나중에 다시 온다면 오늘처럼은 행복하겠지. 


@금능해변

그러나 막상 좋았던 그곳은 다시 방문하기 어렵고(코로나를 보라), 미뤄둔 책은 예전과 똑같은 감동을 주지 않는다. 게다가 맛있는 반찬은 마지막 순간엔 식어 빠지기 일쑤다.


그래서 제주도에서만큼은 그러지 않으려 노력한다. 뛰어들고 싶은 해변을 발견하면 일단 들어가 보기. 이거다 싶은 풍경을 보면 아예 자리를 깔고 몇 시간이고 앉아있기. 차를 타고 가다가도 여기다 싶으면 유턴해서라도 꼭 가보기. 유행처럼 YOLO를 외치는 거냐고? 그게 아니라 행복 앞에서는 잔머리를 굴리지 말자는 뜻이다. 지금 남김없이 행복해야 또 내일의 행복이 온다. 이 단순한 사실을 깨닫는 데에 30년이나 걸렸다. 한 달 만에 고쳐질지는 모르겠으나, 일단은 그래도 도전. 



@곽지해변

일주일 살아보니 좀 질리고 그러냐고? 집에 가고 싶지 않냐고? 아니오, 전혀. 제주는 짜릿해! 늘 새로워! 한 달 살기 최고야! 오길 잘했어!

@한담해안산책로

(2021.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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