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ore Aug 19. 2019

칭찬 포비아 극복법




칭찬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지나가듯 하는 가벼운 칭찬. 머리 예쁘네, 옷이 잘 어울리네, 등의 말들이다. 이런 종류의 칭찬은 서로 잘 모르는 관계에서 활발히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다. 둘째, 마음을 담아서 하는 신중한 칭찬. 보통 감탄이나 존경의 형태를 띠며, 파급효과는 각별하다. 누군가는 이 한 마디에 며칠을 기대어 살기도 한다. 셋째, 사실은 지적을 하기 위해 서두에 꺼내는 칭찬. 주로 화자가 말하는 상황의 거북함을 가리거나 문장의 부정적인 뉘앙스를 중화시키려는 목적으로 사용한다.


나는 주로 두 번째 유형, 즉 무거운 칭찬만이 의미 있다고 생각해왔다. 실없어 보이는 첫째 유형과 가식적인 셋째 유형은 진심의 함량 미달이므로. 그래서 순도 100%로 칭찬할 일이 있기 전까지는 굳이 입을 떼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묵직한 찬사를 건넬 상황은 평소에 잘 오지 않기에, 결국 표현에 인색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자상한 남자가 인기가 많다던데 정말 큰일이다.




내친김에 더 고백하자면 나는 칭찬을 받는 것도 잘 못한다. 특히 예상치 못한 순간 면전에서 칭찬을 들을 땐 갑자기 멍해진다. 배시시 웃으며 긍정해야 할지 손사래를 치며 부정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해 항상 내 반응은 그 중간 어디쯤에 머무른다. 그 순간의 내 표정은 모르긴 몰라도 아마 경직되고 뒤틀려 있으리라. 양심상 스스로도 납득할 수 없는 과한 칭찬을 받을 때면 식은땀까지 흐른다. 몸 둘 바를 모르다 못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어진다.

대략 이런 표정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사실 나는 칭찬을 매우매우 좋아한다. 멋진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 가이 한껏 부푼다. 그동안 숨어 있던 자아들은 마음속에서 요동하며 다 같이 내적 댄스를 춘다. 하지만 겉으로는 티내지 않는 것이 철칙이다. 쉽게 기뻐하는 얼굴을 내비치는 건 푼수 같아 보인다는 사회적 자아의 검열 때문. 이러한 자아의 충돌과 인지 부조화가 내 얼굴을 딱딱하게 만드는 원인임에 틀림없다.

대략 이런 댄스

그러니까 무표정인 채로 멋쩍은 반응을 보일 때에도 실은 손에 칭찬을 꼭 쥐고 있는 것이다. 내 맘 속 어딘가에는 칭찬 상자 같은 것이 있어서 특별히 나를 들뜨게 만들었던 말들을 모아 놓기도 한다. 모래톱에 조개를 숨겨놓는 해달의 마음을, 땅 속에 알밤을 묻어두는 다람쥐의 기분을 알 것만 같다.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다. 칭찬을 참 예쁘고 다채롭게 하는 사람. 타인의 변화를 잘 감지하고 어김없이 언급해주는 사람. 없는 마음을 억지로 짜내거나 일부러 구겨 넣지 않은 것이 자연스레 드러나는 사람. 그래서 어떤 종류의 칭찬을 하건 그 말이 진심인 것이 충분히 느껴지는 사람. 그런 사람은 자신이 칭찬의 대상이 되었을 때도 아주 매끄럽게 반응한다. 재수없게 인정해버리지도, 껄끄럽다고 회피하지도 않는다. 짐짓 유쾌하게 받아들이며 감사를 표하거나 재치 있게 다른 사람에게도 칭찬의 물길을 돌리며 분위기를 띄운다. 그래서 마침내는 칭찬을 한 사람도, 받은 사람도, 주변 사람도 모두 흐뭇해지곤 한다. 그건 정말이지 하나의 재능이다. 그런 훈훈한 풍경을 지켜보면서 생각한다. 저런 사람이 많아진다면 이 세상에 우울증 환자는 조금 줄어들지도 모르겠다고. 해묵은 칭찬 포비아를 극복하기 위해선 먼저 칭찬을 스스럼없이 건네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2019.08.19)











매거진의 이전글 두 의사의 죽음 앞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