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모임 <버킷리스트 프로젝트> 운영기
나는 누구보다 열정이 빠르게 식는 사람이다. 신년 뽕에 취해 무리한 계획을 세우곤 3개월도 지나지 않아 철저하게 나가떨어지는, 흔하디 흔한 인간 유형 말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 홀로 속고 속이기를 반복하다 불현듯 깨달았다. 세부 계획 없는 목표는 열정이 아니라 그냥 객기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배신당하는 건 이제 그만 하고 싶었다. 나에게는 어떠한 장치가 필요했다.
그렇게 결성해서 2년째 진행하고 있는 소셜 모임 <버킷리스트 프로젝트>. 코로나 시기에 딱 겹쳤지만 어찌어찌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콘셉트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자면 이렇다.
- 연초에 만나 각자 1년 동안(혹은 인생에서) 달성하고 싶은 목표를 적는다.
- 한 달에 한 번, 직접 만나서 진행 상황을 공유하고 서로 교류한다.
핵심 가치는 다음과 같다.
1. 목표 달성 + 실행력 향상
2. 좋은 사람들과의 네트워크
3. 진지한 교류를 통한 세계의 확장
연초에 리스트를 직접 작성하고, 한 달에 한 번 검토하고 체크하는 것이 모임의 요체다. 그러다 보니 신기한 점은, 매달 신경 쓰지 못했더라도 연말에 돌아보면 자기도 모르게 이뤄진 항목들이 꽤 많다는 것이다. 아마도 목표를 직접 써 내려가거나 매달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각인되기 때문이 아닐까. 연초에 빡세게 길들여놓은 무의식이 방향타를 잘 잡아주는 느낌이다. 하루하루를 쪼개 보면 별반 다르지는 않은데 자연스레 목표를 따라가는 한 해를 보내게 하는 것이 모임의 큰 그림이다.
이미 세상엔 소셜 모임이 차고 넘치게 많고, 트레바리나 문토, 한달어스 등 사업적으로 도약한 곳도 많다. 이미 검증된 모임들에 비해서 우리만의 특장점은 뭘까? 내 생각엔 '좋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멤버를 공개적으로 모집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연락을 해서 모셔오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좋은 사람 곁에는 좋은 사람이 있고, 열정적인 사람들 곁에는 열정적인 사람이 있다는 신념 하에서. 확장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이럴 땐 아날로그만큼 믿음직한 것도 없다.
모임의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에 있다. 늘 만나던 인력 풀에서 벗어나 다양한 업계에 걸친 네트워킹이 가능하다는 것. 우리는 단순한 모임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서로의 경험을 직접 공유하는 '호스트 시스템'을 도입했다. 팀원들이 돌아가면서 한 번씩 모임을 이끄는 제도로, 각자 현업을 살려 재능 기부를 하거나 취미 활동 혹은 사이드 프로젝트 등으로 세션을 꾸미는 것이다. 홀로 담금질하던 부캐를 남들 앞에서 선보일 수도 있고, <현직자가 알려주는 OO 이야기>로 소규모 강연을 해봐도 좋다.
사실 지난 2년 동안 모임을 진행해오면서 힘든 점도 많았다. 1기는 잘 진행해오다가 코로나가 심해져서 연말 모임 없이 흐지부지 마무리했고, 2기 역시 다 같이 만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라 멤버 간 유대가 느슨해지기도 했다. 사람들 마음이 다 내 마음 같지 않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이것도 저것도 다 핑계고 사실은 리더로서 내가 제대로 끌고 가지 못한 부분이 크다.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참여를 독려했어야 했는데(오히려 놓아버린 적이 많은 것 같다), 원활하게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했어야 했는데(코로나는 나만 겪은 것이 아니다) 여러모로 반성 중이다.
그래서 2022년도에는 각 잡고 새로 시작해보기로 했다. 모임의 비전에 공감하는 핵심 멤버들을 운영진으로 모시고, 본격적으로 모임을 확대 진행해보기로. 프로토타입은 끝났다. 지금부터가 진짜다. 적금을 모으듯 꿈을 향해 함께 힘을 모아간다는 의미에서 <버킷 뱅크 Bucket Bank>로 이름도 정했다.
내년에도 코로나는 여전할 것이지만(안 그랬으면 좋겠다), 우리는 정면 돌파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애초에 우리는 오프라인 미팅을 바탕으로 설계된 '경험 중심의 모임'이다. 아무리 온라인으로 모든 것이 가능한 세상이라지만, 직접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고 무언가를 나누는 경험만큼은 대체할 수 없다. (온라인 미팅을 해보니까 더욱 확신이 든다) 그래서 앞으로도 오프라인 모임이라는 정체성을 타협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방역 수칙을 위반하겠다는 것은 아니고.. 네 명이든 두 명이든, 목표를 위해 함께 도전할 수 있는 영역은 반드시 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 모두가 코로나를 겪으며 얻은 교훈. '다음은 없다'. 지금 당장 부족하더라도 어떻게든 실행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뭐든지 완벽한 시작은 없고, 미루면 결국 안 하게 된다. 일단 시도해야 한다. 다음은 없다. 핑계도 없다.
맨 처음 이 모임의 씨앗이 된 건 브런치 이웃 호진님께서 진행하신 <버킷리스트 워크샵>이었다. 1년 동안 하고 싶은 일 100가지 쓰기'라는 주제로, 버킷리스트를 작성해보면서 스스로를 탐구하고 재발견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 거기서 제일 기억에 남았던 건 다른 분들의 리스트를 엿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거기엔 나와 비슷한 항목도, 완전 새로운 항목도 있었다. 몇 가지는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라 빌려오기도 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리스트를 나누니 모임이 풍성해졌다. 그때 나는 느꼈다. ‘아, 세계는 이렇게도 확장될 수 있구나.’
그 경험을 일회성으로 끝내고 싶지 않아서 모임을 결성한 것이 여기까지 왔다. 지금은 시행착오를 거쳐 목표지향이라는 특징을 추가했고, 앞으로도 더욱 발전할 여지가 있다. 우리의 구호는 심플하다. "(서로의 리스트 중) 겹치는 건 함께 도전하고, 각자 다른 건 적극적으로 배워오기."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교류를 통한 목표 달성'. 내 경우에는 열정을 지속하기 위한 시스템으로 이만한 것이 없었다. 무엇보다 좋은 사람들이 남기도 했고 말이다. 누군가가 내게 '이 모임을 하는 이유가 뭐야?' 라는 질문을 했었는데, 이 글을 쓰면서 어렴풋이 정리된 느낌이다. 다가올 2022년도 잘 부탁드립니다.
(2021.12.27)
(이 자리를 빌려 영감을 주신 호진님께 감사드립니다. 최근 버킷리스트를 주제로 내신 책 <결국엔, 자기 발견>은 저희 모임의 필독서로 하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