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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e Nov 09. 2021

단톡방과 진심의 종말



이제 생일을 챙겨주는 일은 카톡의 도움으로 매우 간편해졌다.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오늘 생일인 친구'가 매일 업데이트되고 선물은 기프티콘으로 손쉽게 전송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생일 축하 문화의 가장 큰 변화는 단체 카톡방에 있다. 누군가가 생일 축하 포문을 열면 구성원들이 꼬리를 물듯 주욱 릴레이를 하는 단톡방 생일 축하 풍경이 이젠 낯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썩 바람직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우선, 축하받는 입장으로도 굉장히 곤란하다. 하나하나 감사 인사를 하기는 어려우니 적당히 메시지가 쌓인 틈을 노려 감사하다는 답장을 보낸다. 잠깐 한눈을 팔고 돌아오면 어느새 또 새로운 축하의 말과 이모티콘이 수북하다. 나는 다시 새로운 형식으로, 그렇다고 너무 성의 없어 보이지는 않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한다. 미처 때를 놓친 사람들이 그 이후에도 새로운 축하를 쌓고, 나는 또 새로운 형식으로... 하루 종일 그 과정이 복수의 카톡방에서 반복되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축하를 건네는 입장에서도 편하지만은 않다. 많은 인원이 모인 대화방일수록 생일이 돌아오는 빈도가 잦아지는데, 결국 본연의 기능을 잃고 생일 축하를 위한 방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영혼 없는 축하 이모티콘을 단체로 뻐끔거리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간혹 이미 오래전 죽은 방들이 살아 돌아오기도 한다. 누군가의 생일에나 저 밑에서 끌어올려졌다가 또 다음 누구의 생일까지는 바닥으로 가라앉는 슬픈 카톡방의 운명. 무슨 전설의 해적선도 아니고.

HAPPY BIRTHDAY


어떤 날은 주는 입장으로, 어떤 날은 받는 입장으로 이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늘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그렇지 않아도 단톡방과 오픈채팅방의 범람으로 각종 소음이 넘쳐나는데, 누군가는 나의 형식적인 축하 메시지로 눈살을 찌푸릴지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다 같이 저렇게 축하를 건네는데 나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군다나 받은 축하가 있다면 감사를 표현하지 않을 수도 없다. 아~ 어쩌란 말이냐. 슬픈 디지털 세대의 공동체 생활이란.


이런 일도 종종 발생 (출처 : 클리앙 <단톡방 생일축하 대참사>)


한편, 얼마 전 읽은 책에서는 이런 꼭지가 등장한다. 바로 '사무실의 종말'. 요컨대 코로나 팬데믹이 우리를 공간적 제약에서 해방시켜 주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긍정적인 면으로 '생산성 향상'을 꼽는다. 출퇴근에 낭비되는 시간을 업무 처리에 사용하면 더 효율적인 업무가 가능하며, 교통 혼잡 등 출퇴근이라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서 생산성이 훨씬 더 높아진다는 점이다. 이미 디지털 노마드들은 전 세계에 걸쳐서 포진해 있다. (평생 진료실을 벗어날 수 없는 나로서는 너무 부러운 삶이다) 그러나 뒤이어 지적하는 단점이 흥미롭다.

단점은 '모든 곳이 일터'라는 이런 생활방식이 새로운 종류의 압박감을 유발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를 '무경계 압박감'이라고 일컫는다. 건너편의 예비 침실이나 원룸 아파트의 식탁에 일거리가 놓여 있다면 물리적이나 정신적인 면에서 일과 삶 사이에 경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껏 장소를 이동하는 방식으로 일과의 형태를 구분했다. 이제 그런 것이 모두 사라졌다. 한 형태가 언제 끝나고 나머지 형태가 언제 시작하는지 구분하기가 어려워졌다.

<일의 철학>, 빌 버넷, 데이브 에번스


그렇다. 회사의 공간적 경계가 무너졌다는 건 회사가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어디든 회사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집, 카페, 휴양지 어디든 말이다. 그렇다면 위험하다. 더 이상 내 방 침대가 침대가 아니고, 아늑한 카페가 카페가 아니고, 근사한 휴양지가 휴양지가 아닐지도 모른다. 원격근무의 시대엔 일과 삶을 의식적으로 분리하는 일이 새로운 과제로 대두될까? 안 그래도 휴식을 잘 못해서 번아웃을 호소하는 현대인들에게는 치명타일지도 모르겠다.


왜 갑자기 다른 얘기로 샜냐고?


나는 근본적으로  가지가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기술의 발전으로 일상이 편리해지는 만큼 인간에게는  다른 숙제가 생긴다는, 모든 작용은 반작용을 동반한다는 진리 중의 진리 말이다. 우리는 단톡방으로 '생일 축하'라는 표면적인 목적은 손쉽게 달성했지만 '마음을 전달'한다는 본질에서는 멀어지고 있는지 모른다. '회사'라는 공간적 제약은 극복했을지 몰라도 '온전한 휴식' 점점  까다로워질지도 모른다. 그거 아시는지. 산업혁명 시대의 사람들은 기계 고통스럽고 힘든 노동에서 인간을 해방시켜주리라 기대했다는 것을. 현실은 어땠는가. 실제로 노동의 효율성과 생산성은 모두 증가했지만 오히려 인간은 단순 반복 노동의 굴레에 갇히고 말았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과거는 지금도 되풀이되고 있다.




오늘도 어떤 이의 행복한 생일이어서 단톡방들에서는 축하 릴레이가 이어질 것이다. 누군가는 그 릴레이에 기분 좋게 동참할 것이고, 누군가는 다소 귀찮음을 느낄지 모르고, 누군가는 꽤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좋든 싫든 우리는 그 대열에서 완전히 이탈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기술의 발전이 무서운 진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번 맛보고 나면 절대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기에.


하지만 그래도 작은 희망을 가져보기로 한다. 진심은 결코 종말을 맞지 않으리라고. 누군가를 위해 열심히 선물을 고르고 포장해 직접 건넬 때의 설렘과 누군가의 오래 고민한 마음을 직접 손에 받아드는 기쁨을 아는 사람이 존재하는 한. 가끔씩은 번잡한 이모티콘 밭과 노란 말풍선 숲을 벗어나 꾹꾹 눌러쓴 편지를 전해주는 사람들이 있는 한. 아무리 시간이 많이 흘러도 그런 실체적 행복감만큼은 디지털이 아날로그를 대체할 순 없을 거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불편한 진실, 우리에게 편리함을 가져다준 카카오톡 선물하기는 인터넷 최저가보다 (거의 늘) 비쌉니다. 참고하세요.


(2021.11.09)



혹시 오해하실까봐 말씀드리자면 제가 이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거나 누군가를 저격하려고 했다거나 하는 건 아닙니다. 오늘 생일이신 분이 있다면 정말 정말 축하드립니다. 오늘 하루 행복한 걸로 끝내지 말고 늘 생일 같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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