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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e Jan 26. 2022

잘 쓴 글의 두 가지 조건



브런치에 계신 분들은 공감하겠지만 글쓰기는 하면 할수록 어렵다. 잘 쓴 글은 무엇일까, 에 대한 고민이 늘 마음 한편에 존재한다. (무거운 마음으로 쓰면 안 되는데..)


나는 늘 궁금했다.


사람들은 왜 어떤 글은 읽고 어떤 글은 읽지 않을까?


왜 어떤 글은 스크롤을 내리다 말고 뒤로 가기를 누르게 되는 반면, 어떤 글은 끝까지 읽고 작가의 다른 글까지 찾아보게 되는 걸까? 그 사이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법칙이 존재할까? 그와 관련하여 두 가지 기준을 생각해보았다.




1. 빈 공간을 확보하기 : 울림


(칼럼이나 제품 소개서가 아니라면) 글은 늘 여러 각도로 해석될 여지가 있어야 한다. 독자가 끼어들 틈이 있어야 한다. 그 틈이야말로 독자가 각자 자신의 무언가를 투영하고 발견해내고 얻어가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해석이 사람마다 달라지더라도 상관없다. 글은 원래 독자에 의해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니까.

'울림이 있는 글'도 같은 맥락이다. '울림'이 있다는 말은 퍼져 나갈 공간이 있다는 말과 다름 아니다. 소리든 감정이든 공간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으면, 멀리 가 닿을 수도 없을뿐더러 둔탁한 소리까지 난다.

"많은 이들이 깊이 사랑하는 콘텐츠에는 대체로 여백이 있습니다. 보는 이가 끼어들 틈이 있습니다. 그 틈에 자기를 집어넣고 그 노래, 영화, 그림을 자신만의 버전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죠."

<생각의 기쁨>, 유병욱




2. 말하지 않고 말하기 : 전이


A에 대해 말하지 않고도, A가 자연스럽게 느껴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중요하니까 다시 한번 얘기하겠다.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느껴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즉, 독자에게 감정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다들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왜 좋은지 모르겠는데 좋아. 콕 집어 말할 순 없지만 뭔가 강력해.

텍스트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감정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이다. 언제나 느낌이 먼저 오고 해석은 뒤이어 오니까.

느낌적인 느낌

노래를 들을 때도 마찬가지다. 사랑 노래의 가사가 직설적이고 호소가 과할수록 청자는 한 발자국 후퇴하게 된다. ('죽도록 사랑한다'고 냅다 지르는 노래는 처음엔 속이 시원할지는 몰라도 계속 듣고 싶지는 않다) 어쩐지 감정을 강요당하는 기분이랄까.


반면 노랫말이 덤덤하고 차분할수록 귀를 기울이게 된다. 오히려 미묘한 긴장감과 조심스러운 뉘앙스가 듣는 이의 감정을 더욱 고조시킨다. 반복해서 들어도 결코 질리지 않는다. 오히려 평소에 어떤 '느낌'이 들 때 노래가 먼저 떠오르기도 한다. 오랫동안 회자되는 명곡에는 그런 공통점이 있다. 예컨대, <걱정 말아요 그대>, <편지>,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등등.


시대를 초월하는 훌륭한 곡들은 많지만 그중에 특히 긴 여운을 남기는 곡이 있어 소개한다. '말하지 않고 말하기'의 정석이 아닐까 싶다. 김소월의 시를 노랫말로 정미조가 부르고, 아이유가 리메이크한 곡. '개여울'이다. 꼭 들어보시길.

개여울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 나오고
잔물이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런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런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두 가지를 종합하면, 결론적으로 좋은 글이란 '이입할 수 있는 글'이다. 넉넉한 공간을 열어젖히고 텍스트가 아닌 감정으로 다가가는 글. 독자를 여유롭게 환대하고 모두가 충분히 포개어질 수 있도록 배려하는 글.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느끼게 하고, 거듭 생각하게 하고, 그 위에서 자유롭게 뛰놀 수 있게 하는, 하나의 '플랫폼' 같은 글 말이다.


그렇다면 그런 글은 어떻게 하면 쓸 수 있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작가가 '좋은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글쓰기란 어딘가에서 빌려오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에게서 비롯하는 것이므로. 마음속에 친절을 간직하고, 인간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사색하고 성찰하는 좋은 사람이야말로 마침내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게 아닐까. 바꾸어 말하면 좋은 글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은 좋은 삶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기도 하겠다. 그러므로 오늘도 고민은 늘어만 가지만, 나는 계속 쓸 것이다. 언젠가는 제가 그런 글을 쓸 수 있을까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글을 쓰려면, 대단한 삶은 아니더라도 기만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자기기만 없는 글쓰기의 비결은 어쩌면 내 삶 안에서 떠올릴 수 있는 얼굴들, 내 삶을 비교적 잘 아는 얼굴들을 향해 쓸 수 있는 글을 쓰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일하는 마음>, 제현주


(2022.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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