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동아리 뒤풀이를 하면 꼭 들르는 식당이 있었다. '닭한마리 칼국수'라는 정문 앞 칼국수집.
어디 대학가에나 있는 칼국수집이지만, 회기동의 닭한마리는 유독 특별했다.
(맛이 좋았던 것은 당연하고) 닭과 칼국수를 건져 먹을 때 '아무도 감자에 손대면 안 된다'는 특이한 규칙이 있었기 때문. 학생이 아니라 교수가 와도, 경희대학교 학장이 와도 적용되는 불문율이었다.
왜냐하면 칼국수를 다 먹고 나서 볶음밥을 만들 때 푹 익힌 감자가 필수 재료이기 때문이다. 육수가 알맞게 밴 감자를 으깨 볶음밥을 만들면 그 맛이 가히 천상이다. 닭 육수의 감칠맛과 감자의 고소한 맛이 어우러져 입 안에서는 탄수화물 파티가 펼쳐진다. 오, 아직도 선명한 길티 플레저.
학기 초엔 그런 규칙을 모르는 신입생들이 칼국수 안의 감자를 건져 먹다가 사장님에게 따끔하게 혼쭐이 나는 일이 흔했다. 가끔 식사를 하다가 멀리서 노기를 띤 사장님의 목소리가 들려올 때면, '또 눈치 없이 누가 감자를 건드렸나 보다' 하곤 했다. (장난으로 혼나는 게 아니라 진짜로 혼남)
볶음밥을 안 먹는 사람들은 감자를 먹어도 되지 않냐고? 글쎄, 그런 사람들은 없다. 경희대 닭한마리는 사실 칼국수집이 아니라 볶음밥집이라고 봐야 하니까. 어디까지나 닭과 칼국수는 조연일 뿐이고 마지막에 먹는 감자 볶음밥이 메인이다. 그만큼 <닭한마리 칼국수>의 '감자'는 가게의 시그니쳐이자 사장님의 확고한 음식 철학을 상징했다.
그런 닭한마리 칼국수가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마 코로나로 텅 빈 대학가와 그로 인한 매출 감소를 견디지 못한 탓일 테다. 정문의 터줏대감으로 오랜 세월 각종 모임, 대면식, 뒤풀이 자리를 책임졌던 추억의 공간이 사라졌다니 황망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조금 울컥하는데, 이렇게 나이가 드는 걸까.
폐업을 앞두곤 눈치 없는 누군가가 감자를 다 건져 먹어도 사장님은 별 말씀이 없으셨다고 한다. 평소 같았으면 불호령이 떨어졌을 일인데 말이다. 그런 풍경이 상상이 되지 않아 폐업 소식이 더 씁쓸하게만 느껴진다. '감자를 먹어도 혼내는 사람이 없는' 경희대 정문은 앞으로도 너무 허전할 것만 같다. 아, 코로나가 이만큼 미웠던 적이 없다. 사장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2022.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