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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나도 봤다, 어벤저스. 세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이 길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흡입력 있는 전개와, 온갖 슈퍼 히어로들과 괴생명체들이 뒤섞여 등장하면서도 조잡함이 없었던 전투씬의 영상미는 단연 압권이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늘 존재한다. (기대가 컸기 때문일지도)
1. 지각생 캡틴 마블
우주 공간에서 떠돌고 있던 아이언 맨을 지구로 무사히 송환시켜줘서 고맙다. 수 천 개 행성을 지키는 절대자의 존재께서 이 코딱지만한 지구의 대소사에도 친히 함께 해줘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어벤저스 칭구들이 얻어터지고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할 시점에 때맞춰 외계 거대 함선을 한 큐에 박살 내며 등장해줘서 눈물 나게 감사하다. 근데 한 마디만 하자면 정말 왜 맨날 늦게 오나? 제시간에 도착하면 힘을 못쓰는 병이라도 걸렸나? 언제부터 코리안 타임이 우주에도 통용되는 법칙이었나? 나는 약속시간 안 맞춰 오는 사람은 한 나라의 대통령이건 우주 최강 히어로 건 예의 없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학생이 지각까지 하면 못쓴다.
2. 여성 히어로들의 뜬금없는 단체샷
나는 마블의 여성 히어로들을 사랑한다. 맹세코 그들이 남성 히어로들에 비해 모자라거나 부족하다고 느껴본 적 없다. 그런데 온 우주의 명운을 건 전투 중에 굳이 여성 히어로들을 한 앵글에 욱여넣었어야만 했을까? 마치 '자 이것 봐, 우리의 여성 히어로들은 캡틴 마블도 있고, 와스프도 있고, 스칼렛도 있고, 가모라도 있어, 심지어 페퍼 포츠조차 아이언 슈트를 입고 있어. 멋지지 않니?'라고 누군가에게 항변하는 듯한 장면이었다. 꼭 그렇게 설명해야만 그들의 존재 의미를 느낄 수 있는 것처럼. 하지만 관객들은 바보나 성차별주의자들이 아니고, 히어로들은 남/녀 구분 없이 매력적이다. 거기에는 어떤 부가적인 해설도 사족이 될 뿐이다. 아무래도 그 신은 너무 유치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할 말은 많지만 여기까지만 하기로 한다. 아이 엠 그루트.
3. 우려가 현실로
여섯 개 스톤이 박힌 건틀릿이 바닥에 나뒹굴던 그 순간, 닥터 스트레인지의 그 거친 생각과, 아이언맨의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관객들은 조마조마했다. 우리는 실로 아이언 맨을 전쟁같이 사랑했다. 그는 가장 현실성 있으면서도 지구 상에서 제일 강력한 히어로였기도 하고, 그 경이로운 능력의 모태가 인간의 신체와 두뇌일 뿐, 여타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았기 때문일 테다. 그래서 그는 가장 인간적이기도 했다. 오만했었고, 방탕했었고, 자주 흔들렸었고, 그럼에도 위트와 사랑을 항상 간직했었다. 들여다보면 그가 가진 슈퍼파워는 아크 원자로나 나노 슈트 따위가 아니라 그러한 인간적인 면모들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타노스 사태 이후 운 좋게 살아남은 토니가 그제야 발견한 일상의 행복을 뒤로하고 어벤저스에 다시 합류하기로 했던 결심이, 그리고 자신의 희생만이 유일한 길임을 깨닫고 기꺼이 몸을 던졌던 용단이, 그가 가진 능력의 본질인 것이다.
여하튼 손가락 하나를 펴서 보여주면서, 그래, 네가 생각하는 그 시나리오가 바로 1400만 분의 1이야,라고 아이언 맨에게 눈빛을 쏘는 닥터 스트레인지가 너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벌컥 화를 내며 '니가 가라 하와이'를 외쳤을지도 모른다) 그러지 말고 닥터 네가 애초부터 넉넉히 미래를 한 4천만 개 정도 봤었더라면 어땠을까. 그중에는 마침내 타노스가 생각을 고쳐먹고 어벤저스에 합류하여 온 우주가 해피했을 그런 미래는 진정 없었을까. 없었겠지만, 그도 어쩔 수 없었겠지만, 그의 손가락 하나는 핑거스냅을 가능케 한 타노스의 손가락 두 개보다 어쩌면 더 잔인했다.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가 팔콘에게 전해졌듯이, 아이언 맨의 슈트와 의지도 분명히 누군가에게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토니 스타크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멋진 등장 신을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건 퍽 아쉽다. 아쉬워서 오늘은 술이나 한 잔 하련다. love you three thousand.
(2019.05.05)
love you three thousand, Tony St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