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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e Jul 10. 2019

생태찌개는 잘못이 없다



우리 부자는 식성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입이 짧아 가리는 음식이 많았던 반면 아버지는 잘 익은 김치 하나만 있어도 밥 두 공기는 거뜬히 비우는 분이었다. 바로 그 차이로 아버지와 나는 밥상머리에서 끊임없이 부딪히곤 했다. 장정의 눈에는 반찬을 깨작거리는 왜소한 아들이 맘에 들 리 없었고 어린 나에겐 매번 밥공기 가득 채워 나오는 밥알들이 징글징글했다. 게다가 나는 느리게 먹는 습관 탓에 밥을 항상 남겼고 아버지는 그런 내가 못마땅해 진즉 식사를 마치시고도 식탁을 떠나지 않으셨다. 그런 아버지의 눈을 피해 밥솥에 밥을 덜어내다 혼구녕이 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억지로 먹다가 체한 적도 부지기수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내가 이렇게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한 것은 아버지의 타박 덕택이었으나, 고백하건대 그 과정은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세월은 흘러 상황은 역전되었다. 다만 나는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내가 많이 먹기 시작했다기보다 아버지의 식성에 문제가 생긴 것이었으니까. 갑작스레 발병한 암으로 아버지는 췌장 전부와 십이지장 일부를 떼어내는 수술을 했고, 그 뒤 식욕은 급격하게 줄었다. 체중도 따라 곤두박질쳤다. 게다가 급하게 먹는 습관도, 맵고 짠 음식도 금지였다. 그에게 허용된 식단이라곤 심심한 반찬들에다가 밥 반 공기 정도가 전부였다. 그 옛날 아버지와 식탁에서 줄다리기를 하던 시절, 내가 남기려고 아등바등했던 딱 그 정도 양이었다. 당신 인생의 가장 큰 낙이었던 푸짐한 끼니를 잃어버린 뒤로, <맛있는 녀석들>과 같은 먹방 프로그램으로 미처 채우지 못한 허기를 달래는 듯했다.


그 프로그램에서 생태탕이 나와서일까. 엄마가 일하러 나가신 사이 당신은 갑자기 얼큰한 생태찌개가 먹고 싶다며 수산시장에서 큼지막한 생태를 사오셨다. 물론 요리는 내 몫이었다. 아픈 아버지와 바쁜 어머니 대신 내가 주방 전권을 가졌으므로. 나는 꽤 능숙하게 생태와 야채를 손질하고 간을 맞추어 나름 근사한 생태찌개를 선보였다. 내가 먹어봐도 맛있었다. 아버지 역시 빛나는 눈으로 연신 엄지를 치켜세우며 밥 한 공기 반을 뚝딱 비우셨다. 저녁 약속이 있었던 나는 식사를 함께 하는 대신 그 모습을 잠자코 지켜봤다. 아버지의 옛 먹성을 오랜만에 마주해 내심 뿌듯한 마음으로.


하지만 몇 주 뒤, 다음 치료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병원을 찾은 아버지는 급속도로 상황이 나빠져 다시 입원하고 말았다. 이후 몇 차례의 항암요법과 방사선요법을 거듭 거치면서 입맛은 영영 돌아오지 않게 되었다. 나는 그 후로 음식을 말끔히 비우는 아버지를 본 적이 없다.


변명하자면 내 생태찌개는 잘못이 없다. 생태는 더할 나위 없이 신선했고, 쑥갓이나 미나리도 쌩쌩한 놈으로만 골라서 썼다. 최대한 간은 싱겁게 했고 고춧가루도 소량만 넣었다. 듬뿍 넣은 건 정성뿐이었다. 굳이 잘못을 찾자면, 내가 함께 식사를 하지 않은 것 때문이었을까. 아버지가 식사하는 모습을 감시하듯 지켜봐서였을까. 아들의 요리를 말끔히 비워야 한다는 압박감에 한도를 초과해버린 건 아니었을까. 그러다가 그 어린 날의 나처럼 얹혀버린 것이었을까. <맛있는 녀석들>은 죄가 없고, 생태찌개도 잘못은 없고, 남겨진 나는 진짜 그것 때문이었냐고 어디 물어볼 데가 없어 막막하기만 하다.


(2019.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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