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ore Jul 29. 2019

각자의 레이싱

올림픽대로에서의 깨달음



나는 운전을 좋아하지 않는다. 꽉 막힌 도로에 갇혀있는 시간이 세상에서 제일 아깝다. 그렇다고 다른 시간을 의미있게 쓰는 것도 아니면서. 여하튼 나는 운전할 때마다 성질이 몹시 예민해진다. 내 앞길을 막고 천천히 달리는 차나 굳이 내 앞으로 얌체같이 끼어드는 차를 볼 때면 물꾸물 이 오른다. (누군가 나의 블랙박스를 본다면 이중인격을 의심할 것이 틀림없다오늘 퇴근길에도 나를 추월해 달려가는 BMW가 얄미워 죽을 뻔했다. 아슬하게 신호에 걸쳐 멈춘 나를 비웃듯 멀어져가는 그랜져를 저주하기도 했다.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저들을 의식하는 걸까. 우리는 각자의 레이싱을 하고 있는 건데.


생각해보면 그렇다. 도로 위의 수많은 차들은 나와 같은 목적지를 향할 리 없다. 우리는 각자의 경로를 가는 도중 어떤 도로에서 서로를 만났을 뿐이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우리 앞에 잠시 끼어들건 앞지르건 나와는 하등 관계가 없는 것이다. (그가 나를 충돌하지 않는다면) 그가 빠르게 달리는 이유는 가야 할 길이 나보다 훨씬 멀기 때문일 수도, 시간 내 처리해야 할 특별한 용무가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누군가 나를 앞지른다고 해서 내 도착이 크게 늦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가 우리 집 주차장에 먼저 도달해 우쭐한 얼굴로 나를 기다릴 일도 없다. 우리는 개별적인 여정 속에서 철저히 혼자다. 종착지가 같지 않기에 비교대상은 애초에 존재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내가 타인의 성공을 시샘할 까닭은 또 뭔가. 우리는 각자의 레이싱을 하고 있는 건데.


내가 최종적으로 얻고자 하는 가치들은 타인과 완전히 같을 리 없다. 백 명이 있으면 백 개의 제각기 다른 성공의 모습이 있을 것이고 천 개의 서로 다른 여정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때때로 다른 이의 성조급해진다. 인의 놀라운 퍼포먼스 앞에서 시로 서러워지거나 애가 끓곤 한다. 남들에 비해 옹색한 내 엔진의 출력, 과한 짐칸의 무게 좌절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잊지 말자. 우리는 각자의 레이싱을 하고 있다는 것을. 나의 레이싱에 참가자는 나 혼자라는 사실을.


(2019.07.28)




매거진의 이전글 생태찌개는 잘못이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