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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e Aug 10. 2019

눈이 맞는다는 건



'눈이 맞는다'는 철 지난 관용구의 진짜 의미를 깨달은 것은 그때였다. 별 특이한 점도 없었던 그 날 저녁. 테이블의 가장 먼 대각선을 가로질러 마주친 그의 눈동자. 어떤 말도, 아무런 맥락도 없이 연결된 시선, 그리고 놀란 듯 어색한 미소. 눈이 맞아 야밤에 도망을 가기도 했다던 뭇 소설 속 연인들이 완벽하게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눈이 맞는다는 것은 이런 뜻이었구나.


그 찰나를 해부해보자면 이렇다. 완전히 무방비한 두 사람이, 전혀 예측하지 못한 시점에, 정확하게 서로를 발견하는 것. (그것은 물리적 포착이 아니라 심리적 재발견에 가깝다) 놀란 눈동자가 마주치는 그 짧은 시간, 이전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세계의 지각변동을 분명하게 감각하는 것. 바로 다음 순간, 그 감각이 경계심과 두려움과 불확실성을 한꺼번에 허물어버리는 것. 느낌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예언 같은 사건.


그때부터 그 장면끊임없이 반복 재생되었다. 머릿속엔 지진이 일었고 나의 일상이 온통 휘청거렸다. 고작 한 번의 눈맞춤 때문에. 1초도 안 되는 순간 때문에. 그러니까 나는 첫눈에 반한 것이었구나. 이 사실을 인정하는 데에만도 오래 걸렸다. 낭만적 사랑을 부정하는 나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어렵사리 용기를 내어 연락을 하고 약속을 잡았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유학길에 오를 예정이었던 그는, 당황하면서도 나에게 출국 전의 귀중한 시간을 허락했다. 만나서 물어보니 그도 역시 그때 그 순간을 또렷하게 기억한다고 했다. 처음 느낀 그 감정이 무엇인지 몰라 오래 골몰했다고도 했다. 우리는 첫 데이트 후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연달아 다섯 번을 봤다. 아쉽게도 나는 그의 비행기를 돌릴 순 없었고, 나는 홀로 남아 그를 기다렸다.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기다렸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 후의 이야기는 너무 길고 내밀하니까 생략하기로 한다.)

 



그런 순간이 있었다. 신은 나를 보곤 눈썹을 올리며 싱긋 , 나는 거기에 멋쩍은 미소로 답하 간. 왠지 모르게 미더운 그 눈빛과, 으쓱했다가 내려가던 당신의 어깨선과, 터틀넥 스웨터에 파묻던 얼굴 같은 것들이 엉켜있는 순간이. 


(2019.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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