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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e Oct 11. 2019

여행에는 여행이 없다

베트남 패키지 투어




처음으로 엄마를 모시고 여행을 다녀왔다.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와 효도관광 명소 하롱베이포함하는 3박 4일 일정. 메이저 여행사의 천편일률적인 코스를 피하기 위해 실속 있다고 소문난 중소 여행사를 랐다.

파스텔톤과 원색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도시의 색감

결론부터 말하자면 코스는 어디나 거기서 거기였고, 정작 여행엔 여행이 없었다. 여행사와 제휴된 한식 뷔페와 빡빡한 관광 일정 사이에서 이국의 정취를 만끽하기란 쉽지 않았으며, 사실상 선택권이 없었던 선택 관광은 나를 더욱 진 빠지게 했다. 예컨대 스트릿카 시티투어($40) 선택하지 않는 인원은 차 안에서 2시간 대기고, 선상 시푸드 정식($30)을 신청하지 않는 인원은 밥과 두부김치로 끼니를 때워야 한다. 다가 인솔의 편의성을 위해 억지로 옵션을 통일해야만 했다. 트남은 공산주의/사회주의 국가라고 가이드가 첫날 말했던가. 그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환멸의 정점을 찍은 것은 쇼핑센터에서였다. 장황한 서술로 우리에게 한 건강식품의 대단한 효능을 강조하던 홍보관. 쇼닥터의 얄팍한 말들과 허접한 통계자료를 근거로 사람들을 현혹하던 그곳. 단일 약재의 치료 효과가 뭐 그리도 다양하고 무쌍한지. 설명이 끝나고도 우리 모두가 제품에 시큰둥하자 가이드가 직접 나서서 구매를 독려하기 시작했다. 우리 중 누구 하나가 지갑을 열지 않으면 홍보관을 떠나지 않을 기세로. 화란에게 순정을 짓밟힌 곽철용의 얼굴을 하고서 말이다. 말이 권유였지 그건 거의 윽박이었다. 다음 일정을 저당 잡힌 우리는 죄인이 되어 일동 고개를 푹 숙이고 묵비권을 행사할 뿐이었다.

내가 너희 시간을 깡패처럼 납치라도 하랴?

그런 쇼핑센터를 무려 네 군데나 방문했다는 점만 빼곤 엄마는 전체 여행에 꽤 만족하셨으니 그걸로 됐다. 그리고 단순히 가이드 개인의 부정으로만 치부할 수도 없을 것이다. 기본급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가이드 업계의 연봉 체계와, 이런 비겁한 상품을 기획한 회사와, 여행객에 기생한 현지 한인 업체들이 이 악습의 본체일 것이므로. 또한 그렇게 모호해진 책임 소재와 여행으로 누그러지는 마음도 이 낡은 패키지 투어를 지탱하는 기둥이 된다.




갑갑한 일정을 견디다 못한 나는, 결국 마사지를 포기하고 두 시간 남짓의 자유시간을 얻어냈다. 맘껏 걷지도 못한다면 나중에 후회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유명하다는 카페도 기웃거리고, 현지인들이 즐비한 디저트 가게에도 들렸다. 몸짓으로 소통하며 메뉴를 주문해보고, 길거리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기도 했다. 전적이고 적극적으로 도시를 구석구석 정복하기엔 시간이 모자랐지만 그래도 그 와중에 몇 장 건져낸 사진을 소개한다.

한 무리의 가젤 떼처럼 도시를 누비는 오토바이들
컨셉 확실한 베트남 카페
풍경을 찍으려다 우연히 카메라에 잡힌 빨간 스쿠터의 처자.




이밖에도 사진에 미처 담지 못한 포토제닉한 순간들이 많다. 드넓은 논 사이에서 농을 쓰고 일하던 청년, 스쿠터 위에서 멋진 레이밴 선글라스를 쓰고 포즈를 취하던 아저씨, 늦게까지 풋살장에서 공을 차던 젊은이들 등등.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의 재미는 이런 데에 있다. 이국의 생생한 장면을 포착하는 것. 그 장면을 여러 각도에서 오래 응시하는 것. 가능하다면 그 속으로 들어가 겹쳐지는 것. 그러니까 딘가 어색하게 마사지를 받던 시간보다는 휴식시간에 포켓볼을 즐기며 떠드는 마사지사들을 관찰하는 순간이 훨씬 여행스러웠달까. 아무래도 조만간 베트남에 다시 가야겠다. 진짜 여행을 하기 위해서.


(2019.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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