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소에 결혼에 대해 생각이 많다. 결혼이란 인생에서 가장 중차대한 일이니까. 언젠간 꼭 하고 싶다. 하지만 연애도 이렇게 어려운 마당에, 도대체 결혼은 어떻게 하는 걸까. 다들 어떤 짝을 만났길래 결혼에 대한 결심이 선 걸까. 나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떤 배우자를 선택해야 할까. 모아놓은 돈도 한 푼 없는 주제에, 벌써부터 혼자 끙끙 앓는다는 게 우습기만 하지만.
그러던 와중, 아오이 유우의 결혼 기자회견 기사를 접했다. 청순의 대명사인 일본 톱스타가 8살 연상의, 그리고 결코 그녀와 어울리지 않는 외모의 개그맨과 결혼 발표를 한 것이다. (나는 그에게 '못생긴'이라든가 '추남'이라는 등의 단어는 쓰고 싶지 않다. 아오이 유우라는 미녀 옆이라 상대적으로 그렇게 보일 뿐, 사실 그의 외모는 굉장히 평범한 축에 속한다.) 일본 전역은 충격에 휩싸였고 나 역시도 머릿속에서 난사되는 물음표를 막을 수 없었다. 도대체 왜? 왜????
??? 형이 왜 거기서 나와?
진위 여부나 살해 협박에 대한 의혹을 넣어두고 글을 읽어보자. 기자들도 나처럼 납득할 만한 증거가 필요했던 모양인지 그녀가 결혼을 결심한 계기를 파헤쳐 간략히 밝혀 놓았다. 그간택의 여러 이유들 중에서 '냉장고 문을 잘 닫는다'라는 다소 엉뚱한 조건이 눈에 띈다. 단지 그는 냉장고 문을 잘 닫았을 뿐인데 아오이 유우를 아내로 맞게 되었다고? 순간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이미 잘 닫혀 있는 냉장고 문을 부술 뻔했다. 나도 냉장고 문이라면 이렇게 확실하게 닫는 편인데. 그녀라면 난 평생을 냉장고의 문지기로 살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사실은 알고 있다. 냉장고 문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으로 대표되는 각자의 자질구레한 버릇이 중요하다는 것을. 성공적인 결혼 생활을 위해선 그처럼 서로의 아주 작고 사소한 규칙을 인정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너무 유치해서 뜨거운 사랑으로도 녹여낼 수 없고, 너무 미미해서 단조로운 배려로는 미처 닿지 않는 부분들을 말이다.
가까이서만 봐도 그렇다. 아버지는 식기에 남는 물때를 지독히도 싫어해 설거지 후 숟가락을 엎어놔야만 하는 사람이었고, 엄마는 빠른 설거지가 중요하지 그런 디테일 따위는 관심 없는 사람이었다. 반대로 엄마는 현관 앞에 신발이 세 켤레 이상 나와있는 꼴을 못 보는 사람이었고, 아버지는 몇 켤레가 어떻게 어질러져있건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었다. 이십 년 넘는 인고의 세월 속에서도 서로가 변하지 않자 그들은 그냥 입을 다물기로 결정했다. 대화가 단절된 싱크대와 현관 앞에선 가끔 냉기가 쌩쌩 돌았다.
내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건 무엇일까. 단연코 확실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책날개를 책갈피로 쓰는 사람. 오, 그것은 명백한 범죄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이들에게도 그럴 테다. 날개를 책갈피로 쓰게 되면 다음과 같이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1. 첫 몇 페이지 정도는 괜찮지만 임계치를 벗어나면 날개에 접힌 자국이 생긴다. 2. 날개에 생긴 그 주홍글씨는 책 표지를 붕 뜨게 한다. 3. 그걸 본 나같은 사람들은 각종 현기증과 착란 증세에 시달린다. 4. 아무튼 싫다. 빼애액.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건 종이책에 대한 모욕이자 출판업계에 대한 도전이다. 그런 자에겐종신토록 종이책을 금하는 엄벌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평생 차가운 태블릿 스크린을 더듬으면서 빳빳하고도 매끄러운 종이의 질감을 그리워하도록. 선처는 없다.
참혹한 범죄의 현장. 노약자 및 임산부는 주의
사랑을 으뜸으로 여기는 낭만주의는 일상의 압력 속에서 산산이 부서질 것이다. 부부간 의리를 중시하는 합리주의는 속세의 유혹 앞에서 자주 흔들릴지 모른다. 만남에 현실적 조건을 위시하는 실용주의는 때때로 삶을 헛헛하게 만들 것이 분명하다. 무엇이 결혼에 적합한 기조인지 알 수는 없으나 한 가지는 확실해 보인다. 나만의 아주 작고 사소한 규칙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자. 설렘은 사그라들기 마련이고 의리는 밋밋해지기 십상이고 경제적 상황은 언제 변할지 알 수 없다. 유구한 시간의 흐름과 일상의 스트레스 앞에서 달콤한 언약과 핑크빛 환상은 해어져버리고 그 자리에는 오로지 습관과 버릇만이 알몸으로 남을 것이다. 나는 어떤 규칙을 견딜 수 없는가. 당신도 스스로에게 따져 물어보시라. 치약을 꼬리부터 열심히 짜내 쓰는 당신. 빨래통에 젖은 수건을 구겨 넣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당신. 당신의 짝도, 나의 짝도, 어디엔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