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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도예 체험기

by core


도예 수업에 대해 얘기하면 다들 <사랑과 영혼>의 로맨틱한 물레 신을 떠올리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누가 내 뒤에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는 마당에 웬 연애질이람. 게다가 물레 작업은 굉장히 복잡다단하기도 하다. 흙과 나 사이의 사투 그리고 화해가 변주하는, 역동적이고도 고요한 작업이다. 그 과정에 제삼자가 개입할 여지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없다. 무엇보다도 이 일련의 새로운 체험은 내게 한 편의 철학 강의 같기도 했다.




물레로 기물을 만드는 과정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먼저 중심을 잡는다. 흙무더기를 밀어 올리고 내리는 동작을 여러 번 반복하며 중심을 잡는데, 익숙해지지 않은 상태에선 흙이 내 뜻대로 따라오지 않고 말썽을 부리기 십상이다. 지루하고 힘든 중심잡기가 손에 익어야만 본격적인 기물 작업에 들어갈 수 있다. 중심축이 벗어난 상태에서 섣부르게 작업을 시작하면, 만드는 과정에서 조금씩 더 비뚤어져 가고 그 끝에 가서는 반드시 낭패를 보게 된다.


중심을 잡고 나선 기물의 대략적인 사이즈와 형태에 맞추어 구멍을 뚫고 바닥을 편다. 구멍을 뚫을 때 한번 그 깊이를 정하고 나면, 나중에는 수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되도록 첫 동작에 충분한 깊이로 파 들어가야 한다. 또한, 바닥은 평평하고 고르게 펴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못한 바닥은 두께의 차이 때문에 건조 과정에서 금이 가기 쉽고, 기물이 쓸데없이 무거워지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는 흙을 부드럽게 밀어 올려 측벽을 만드는데, 두께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특히 내벽의 곡선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내벽의 선이 기물 전체의 선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외벽의 흠결은 건조 후 굽칼로 일부 보정할 수 있으나, 내/외간의 그 균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만 가능하다. 우리가 극찬해 마지않는 달항아리의 유려한 곡선은 그 내면에도 역시 나란히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다.


마지막으로 신중해야 할 점은, 건조와 소성 과정을 거치면 기물의 크기가 꽤 줄어든다는 것이다. 부피로 7% 감소라고 하는데, 실제 체감으로는 훨씬 큰 차이가 난다. 국공기로 만들었는데 밥공기가 나오는 정도의 차이랄까. 그러니 가늠하는 단계에서 조금 여유롭게 대중하여 작업해야 한다.




이미 우리 모두는 천천히 그릇을 빚고 있다. 가깝거나 혹은 먼 사람들과의 인간관계가, 평소에 마주하는 글과 노래와 풍경들이, 새로운 경험이나 일상 속의 갈등 따위가 끊임없이 물레를 세차게 돌리고, 그 속에서 얻어지는 각자의 관점과 사유가 흙더미를 밀어 올리는 손이 되어 그릇을 빚어낸다. 그렇게 만들어진 누군가의 그릇 한 사람 누울 자리도 빠듯할 수도 있고 어쩌면 온 세계를 다 담아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규모가 중요한 것은 결코 아니다.) 나는 당신이 결국 만들어낼 그릇 크기에는 관심도 없지만, 우리 약속 하나만 하기로 하자. 오래 걸리더라도 중심은 반드시 잡고 지나가기로. 나는 깊고 넓고 아름다운 그릇만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데, 아무래도 기울고 뒤틀린 그릇들은 식탁 위에 놓기 망설여진다.


(2019.04.03.)





이 그릇을 마지막으로 당분간 도예는 쉰다. 잠시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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