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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의 시대에 자아를 외치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by core


에세이만 읽다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가볍고 잘 넘어가는 책만 읽다간 바보가 되고 말 거야. 이제 두꺼운 책을 집어. 그렇게 야심차게 고른 유발 하라리의 3부작. 그중 <사피엔스>는 읽다 말았고 <호모 데우스>는 손도 안 댔지만, 이 책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은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석학의 분석에 연신 감탄해가며.




그의 미래 예측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세계는 점점 더 편리해지고 있다.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깊숙하게 그 편의성에 빠질 것이다. 음악 취향에 맞게 플레이리스트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가정의 AI 비서가 자동으로 식료품을 구입하고, 체내 센서가 건강 상태를 체크해 병원 스케줄을 조율하는 등 삶의 모든 부분에서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을 것이다. 그런 생활에 취한 나머지 우리는 모든 판단을 인공지능에게 위탁해버릴지 모른다. 삶의 통제력을 빼앗기는지도 모르면서 천천히, 무의식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소수 기업에게 정보와 영혼을 함께 털리는 것이다. 탈탈.

이런 점에서 인간은 가축화한 다른 동물과 비슷하다. 우리는 온순한 젖소를 사육해서 엄청난 양의 우유를 생산하지만 이들은 다른 면에서 보면 야생 조상에 비해 훨씬 열등하다. 민첩하지도 않고 호기심도 떨어지고 기지도 모자란다. 우리는 지금 거대한 데이터 처리 메커니즘 안에서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생산하며, 아주 효율적인 칩으로 기능하는 길들여진 인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p.121)
지금 우리도 삶아지고 있는 중일까? 유튜브에 의해, 구글에 의해, 삼성페이에 의해.

저자는 또 경고한다. 과거엔 토지가 곧 계급이었고, 지금은 자본이 곧 권력이지만, 미래엔 정보가 그 자리를 차지할 거라고. 세계의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고 부의 집중은 더욱 확고해질 것이다. 대중들은 아주 은밀하고 교묘하게 착취당할 것이다. 착취당하는 사실조차 모르고 착취하는 주체를 옹호할 수도 있다.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이라는 불가침의 영역을 선점한 소수 기업과 국가에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 흔히들 우려하는 '대량 실업'이나 '인간 대 로봇 사이의 전쟁'같은 개념보다 훨씬 더 커다란 위험이 우리 앞에 놓여있는 것이다.

오늘날 공상과학 소설의 최악의 잘못은 지능과 의식을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 로봇과 인간 사이의 전쟁 가능성을 지나치게 우려한다. 사실 우리는 알고리즘으로 증강된 소수의 슈퍼휴먼 엘리트와 무력해진 다수 하위 계층의 호모 사피엔스 간의 갈등을 두려워해야 한다. (p.370)
공상과학 스릴러물은 불과 연기가 난무하는 극적인 종말론에 끌리지만, 현실에서 우리는 클릭에 이끌려 지극히 시시해 보이는 종말에 직면할 수 있다. 그런 결과를 피하려면 인공지능 개선에 투자하는 돈과 시간만큼, 인간 의식을 증진하는 데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현명하다. 불행히도 현재 우리는 인간 의식을 연구하고 개발하기 위해 하는 일은 별로 없다. 인간 능력을 연구하고 개발할 때조차 의식을 가진 존재로서 장기적 필요에 따르기보다 주로 경제와 정치 시스템의 즉각적인 필요에 좌우된다. (p.120-1)


그러면서 해결책으로 '깨어 있을 것'을 요구한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바는 무엇인지에 대해 탐구하는 것을 멈추지 말라고 한다.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사유하고 궁리하는 행위만이, 인간으로서의 통제력을 잃지 않는 길이라고 말한다. 즉, '인간다움'을 지켜내는 일이 우리를 살아 있게 할 것이다.

코카콜라나 아마존, 바이두 혹은 정부가 우리의 가슴에 연결된 조종끈을 당기고 뇌의 버튼을 누르는 법을 아는 상황에서, 어떤 것이 나 자신의 목소리이고 어떤 것이 시장 전문가가 주입한 내용인지 식별할 수 있을까? 그런 막중한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려면 우리 자신의 운영 체계를 더 잘 알기 위해 아주 열심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인생에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물론 이것은 책에 나오는 가장 오래된 교훈이다. 너 자신을 알라. 수천 년 동안 철학자들과 선지자들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이 조언은 21세기에 와서 더없이 다급한 것이 되었다. (p.401-2)




산업화 이후 고성장 국면의 사회에서는 성공으로의 질주가 당연한 세상이었다. 되도록 대학에 가고, 누구나 취업을 하고, 모두가 부를 축적해 집을 장만하고 가정을 꾸렸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막상 사회에 나와보니 암울한 현실과 어두운 앞날이 젊은이들을 반긴다. 하지만 그렇게 절망적인 것만은 아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미래에서 현재로 옮겨오고 있기 때문이다. 불확실한 미래보다는 현재의 자신에 초점을 맞춰 새로운 도전을 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구태의연한 관행을 거부하고, 무기력으로 점철된 직장에서 뛰쳐나오고, 본격적으로 자기를 들여다보려는 이들. 여태까지의 교육과정에 없었던 파격적인 시도를 하고,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자신에게 투자하려는 이들. 그래서 아예 새로운 형태의 삶의 모델을 제시하는 이들. 나는 이 흐름이 하나의 예보라고 생각한다. 마치 지진해일이 나기 전 예민한 동물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급변하는 시대에 우리 중 영리한 이들이 발 빠르게 대처하는 게 아닐까.


인공지능의 도래가 일으킬 거대한 파도 앞에서, 자아의 확립은 생존의 필요조건이 될지도 모른다. 정해진 길만 따라오다가 자신을 잃어버린 인간들은 모두 알고리즘에 잠식되고 말 테니까. 진작에 뿌리를 가꿔놓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시스템에 휩쓸리고 말 테니까. 그러니까 저자는 아마도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 같다. 있는 돈 없는 돈 탈탈 털어 무작정 여행길에 오른 당신이나, 삶의 부족한 무언가를 채우려 일단 퇴사부터 지른 당신이나, 인생의 의미를 얻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애쓰며 돌아다니는 당신들 모두, 아주 잘 하고 있는 거라고. 아, 위로를 이렇게 유식하게 할 수 있다니. 유발, 당신은 대체.


(2020.02.05)



책의 일부분을 발췌하여 정리한 페이지를 첨부합니다. 궁금하신 분은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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