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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팅 어플 리얼 후기

by core


그전까지 꾸준히 들어오던 소개팅이 요즘 들어 똑 끊겼다. 까다롭다는 소문이 벌써 전국에 퍼진 걸까. 점점 피부는 푸석해져만 가는데, 모발은 한없이 가늘어져만 가는데, 나는 어디서 누구를 어떻게 만나야 하나. 혼자인 것에 더더욱 익숙해져 버리면 어쩌지. 그렇게 고뇌하던 와중 내 안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젊음을 방구석에서 낭비할 수 없어. 뭐라도 해봐. 미래에서 온 외침 같기도 했다. 그 목소리는 나를 소개팅 어플에까지 인도했다. 디지털 세대의 일원으로서 시대의 흐름에 뒤쳐지면 안된다는 달콤한 명분을 속삭이면서.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깐깐한 가입 절차를 살금살금 밟아나갔다.


밖으로 나가서 여자를 만나 이 자식아. 너는 곧 머리가 빠진단 말이야


대표 사진을 정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었다. 셀카를 잘 찍지도 않는 편인데 그나마 있는 셀카는 죄다 친구들과 함께였다. 너무 먼 과거로 거슬러가지 않도록 스스로를 검열하며 겨우 몇 장을 발굴해냈다. 전신샷을 하나 정도 추가하는 것이 좋다고 하니 최대한 비율 좋게 나온 사진도 억지로 한 장 욱여넣었다. 다음 단계는 직업 인증이란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이러라고 준 면허증이 아닐 텐데. 나는 자기혐오로 쏟아져 나오는 구토를 억눌러가며 꾸역꾸역 인증을 했다.


마지막 단계는 소개글 작성. 나는 이미 스스로를 어딘가에 진열한다는 개념에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게다가 글로 나를 표현해야 한다니. 매일 몇 명의 이성에게 전송될 문건을 작성해야 한다니. 그렇다고 프로필에 이렇게 적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저는 가을을 좋아하고요. 땀 흘리는 운동을 하면서 살아있음을 느끼고요. 지금 듣고 있는 노래는 Damien rice의 Elephant이고요. 영화 <뷰티 인사이드>의 색감을 좋아합니다. 주말에는 혼자 서점에 가거나 카페에서 글을 쓰고요. 아, 꾸준히 글을 쓰곤 있지만 구독자가 늘지 않아 쓸쓸합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 보여도 가끔 흔들리고요. 내가 지금 잘 살아내고 있는 건지 물어볼 곳이 없어 답답하고요. 답답해서 술을 마시면 더 공허하고요. 말이 두서가 없어서 죄송합니다만 잘 부탁드립니다.

솔직한 내 심정을 넣어두고 나는 적당히 사회적이고 적당히 사람 좋아 보이는 말을 꾸며냈다. 무성의하지도 너무 진지하지도 않게. 둥글게 둥글게.




막상 시작해보니, 매일 배달되는 이성의 프로필보다는 활발한 익명 게시판이 나의 이목을 끌었다. 회원들간의 담소를 위해 만들어진 그곳에선 은밀한 만남(이라고 쓰고 거래라고 읽는다)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예컨대 누군가가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인데 이러이러한 사람을 찾는다"라고 글을 쓴다. 통상적으로 남성은 연봉/직업과 키를, 여성은 신체 사이즈와 외모의 호감도를 주로 서술한다. 내건 조건에 부합(한다고 주장)하는 다수의 익명 이성이 댓글을 남기면, 글쓴이가 대댓글로 추가 정보를 요구한다. 사는 곳은 어디인지, 나이는 몇 살인지 등등 몇 단계의 추가 탐색전을 거친 뒤 서로의 니즈가 일치한다면 프로필을 열람해볼 수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일정의 현금이 사용된다.) 흡사 참치 경매와도 같은 현장 속에서 나는 자주 헷갈렸다. 이렇게 사람을 만나도 되는 것인가. 머릿속에서 윤리의 경보음이 울려댔다.


마음 한 켠에서는 이런 목소리도 일었다. 이게 소개팅이랑 다를 게 뭐람. 소개팅이나 맞선 역시 서로의 외모, 직업, 신체적 특질 등을 어렴풋하게 가늠해보지 않는가. 이렇게 교환 단위로 직접적으로 사용된다고 해서, 요구 사항을 분명하게 드러낸다고 해서 거부감을 느낄 건 또 뭔가. 나 역시 멋진 몸매와 예쁜 얼굴의 이성이라면 마다하지 않을 거면서. 그렇다면 내가 지금 느끼는 회의감은 위선인가. 참치 뱃살이라면 환장하서 참치 해체쇼 마음 아파하는 꼴인가. 나는 쉽게 답을 내릴 수 없어 오랫동안 망연했다.


참치야 미안해


그뿐만이 아니다. 거기선 다양한 사람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익명 글을 올리곤 했다. 아무 조건 없이 통화할 상대를 찾는 사람, 이성에게 솔직한 답변을 요구하는 질문, 단순히 위로나 공감을 얻기 위한 푸념 등이 어지럽게 나열되어 있었다. 그 수많은 목소리들은 내게 이렇게 들리기도 했다. 여기 사람 있어요. 문득 세상 사람들이 많이 외롭구나 싶었다. 하룻밤 풋사랑을 찾는 사람들도, 진지하게 결혼 상대를 구하는 사람들도, 아니면 그저 응답을 바라는 사람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과 연결되려 애쓰는 듯 보였다. 그러니까 내가 목도한 것은 단순히 짝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라, 사람들 속에서도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슬프고도 조용한 아우성 같았다. 나는 휴대폰을 끄고 짧게 묵념했다.




오늘도 몇 장의 카드가 왔고 몇 개의 호감 표시가 도착했지만 아직 나는 내가 이걸 통해서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몇 번의 손가락 움직임으로 연결되기엔 우리는 너무 거대한 존재이기에. 하지만 희망의 불씨를 아예 꺼트리지는 않기로 한다. 혹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어딘가에도 있을지 모르니까. 그런 운명의 여인이 이 디지털 연옥 속에서 나를 구원해줄지도 모르니까. 그날까지 나의 프로필 카드는 명랑하게 살아있지도 아주 죽어있지도 않은 채로 온라인 세계를 떠돌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풍장(風葬)이라고 치자.


(2019.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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