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로도 개봉한 <결혼 이야기>를 극장에서 보고 왔다. 제목만 보면 낭만적인 결혼 일대기 같지만 사실은 이혼 과정을 담은 이야기이다. 사랑해서 결혼했던 연인이 어떻게 이혼을 맞이하는지, 이혼이라는 지난한 절차가 서로의 삶을 얼마나 뒤숭숭하게 헤집어놓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썩 유쾌하진 않다. 나는 찰리와 니콜, 둘 모두의 입장에 공감했기에 그들의 다툼을 보는 것만으로도 에너지 소모가 컸다.
모든 신을 통틀어 가장 격렬했던 싸움 신에 대해 설명하자면 이렇다. (영화는 이 장면을 위해 내내 달려온 것처럼 보인다) 이혼 소송 중 두 사람은 상황이 더욱 막장으로 치닫는 것을 막기 위해 모인다. 차분하게 대화를 시작하지만, 여전히 서로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클리셰처럼 '당신은 늘 그런 식이지'로 시작해 감정은 격해지고 급기야 서로에게 악담을 퍼붓기까지 한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저주와 폭언을 상스럽게 교환하다가, 문득 무릎을 꿇고 엉엉 운다. 엉엉 울면서 절감한다. 이젠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보호막 없이 풀어헤쳐진 날것의 분노와 절망을, 카메라는 긴 테이크로 집요하게 따라가 담아낸다. 그걸 지켜보는 관객은 불편하기를 넘어서 고통스럽다.
<being alive>를 축가로 쓰면 어떨까 싶기도.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면은 이 부분이다. 이혼 후 찰리가 극단 동료들 앞에서 뮤지컬 톤으로 <being alive>를 부르는 장면. 마지막엔 눈물까지 글썽이는 찰리. 이기적이고 둔감하기만 했던 그가 무언가를 조금은 깨달은 표정이었다. 노래가 너무 좋아서 구글링을 해봤는데, 유명한 뮤지컬 <Company>에 등장하는 곡이라고 한다. 가사가 참 좋다. '날 너무 필요로 하는 사람, 날 너무 잘 아는 사람, 날 너무 꼭 껴안고 깊은 상처를 주는 사람, 내 자리를 빼앗고 내 단잠을 방해하는 사람. 그리고 살아간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사람.' 이 노래의 함의에 대한 기사를 링크로 첨부한다. 영문이지만 꼭 읽어보시길.
기사의 한 꼭지.
솔직히 말하면 나는 마지막까지 내심 해피 엔딩이나 열린 결말을 기대했다. 소송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물불 안 가리는 변호사들과는 달리, 그들은 끝까지 서로를 염려하는 마음이 남아있었으니까. 늦은 밤 전 부인의 배전반을 고쳐주고, 전 남편의 신발끈을 위해 기꺼이 무릎을 꿇는 의리 있는 커플이었으니까. 지독한 싸움 직후에도 사과를 주고받을 줄 아는 사람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미묘한 뒷맛을 남긴 채, 각자 갈 길을 가는 것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영화관을 나오며 조금은 배신감이 들었다. 이미 현실이 아주 지긋지긋한데 굳이 스크린에서까지 그랬어야 했나.
귀여운 그림체와 기발한 상상력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웹툰 <유미의 세포들>. 그런데 요즘은 독자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주인공 유미에겐 다정다감하고 자상하고 배려심 넘치고 잘생기고 키도 크고 옷도 잘 입는, 그야말로 완전 사기캐 남자 친구 바비가 있었다. 떡볶이를 좋아하는 유미를 위해 퇴사하고 떡볶이 가게를 차릴 정도로 스윗한 그의 마력 앞에서, 뭇 여성들은 퍼펙트를 외쳐댔다. 그리고 모두가 그 둘이 결혼에 골인해 행복하게 잘 살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웬일. 바비는 떡볶이 가게를 운영하던 중, 알바로 들어온 대학생 다은에게 잠시 마음이 흔들리고 우여곡절 끝에 유미와 이별하게 된다. (몇 년 후의 미래에서 그는 다은과 결혼을 한다) 유미의 편인 많은 독자들은 분개했다. 이번엔 진짜배기 남주를 만났다고 철석같이 믿었던 그들은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아니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다른 사람도 아닌 바비 네가 어떻게 한눈을 팔 수 있어. 어떻게 그 상대와 결혼까지 할 수가 있어. 유미에게 이런 시련을 내린 작가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며 댓글 창에서 시위를 했다. 마치 애인의 부정 앞에서 절규하는 사람처럼. 어떻게 유미한테(나한테) 이럴 수 있어.
동화 같은 엔딩을 꿈꾸며 영화나 드라마나 웹툰으로 도망해온 사람들에게, 두 작품의 작가는 달콤한 모르핀을 주사하는 대신 따귀를 올려붙이며 현실 인식을 촉구한다. 연애도 결혼도 현실은 이래. 정신이 번쩍 든다. 그래, 현실은 원래 그랬다. 누군가 변심을 하고, 누군가 마음을 잃고, 누군가 단념을 하는, 그런 종류의 사소한 비극은 일상 속에서 무궁하게 되풀이된다. 그래서 우리는 안심할 수 없다. 멋진 애인을 만났다고 끝이 아니고, 그와 결혼에 성공했다고 끝이 아니며, 심지어 이혼을 매듭짓고도 끝이 아닐 것이다. 얼얼한 뺨을 움켜잡고, 오늘도 being al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