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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콘과 해왕성 사이

<애드 아스트라>

by core

!주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리뷰를 읽지 않을 사람을 위해 첫머리에 당부의 말을 몇 가지 적어둔다.


1. 인터스텔라를 기대하지 말 것.

2. 반드시 아이맥스로 볼 것.

3. 절대 팝콘을 사들고 가지 말 것. 인류의 평화를 위해 제발, 제발 영화 도중 먹지 말 것.




많은 리뷰나 한줄평에서 찾아볼 수 있듯, 이 영화는 거창한 우주 SF 영화라기보다는 인간의 내면을 다룬 드라마에 가깝다. 우주 공간은 그것을 극대화하는 효과적인 장치이다. 존재의 고독은 광활한 우주 속에서 더욱 도드라지고, 감정의 지하실로 끝없이 침잠하는 주인공과 태양계 언저리를 탐험하는 우주선은 어딘가 닮아 있다. 관객도 편안하게 빠져든다. 가끔은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 우주를 유영하는 일처럼 아득하게 느껴질 때가 있으므로. 그런 점에서 장르 선정은 성공적이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초점은 다소 흔들린다. 영상미는 뛰어나지만 디테일이 한참 떨어진다. 주인공의 연기는 압권이지만 서사는 개연성을 확보하지 못한다. 관객은 광대한 우주에 홀로 남겨진 느낌을 공감각적으로 체험하면서도 설정의 무리한 도약에 의해 별안간 현실로 튕겨져 나올 때가 있다. 만약 브래드 피트의 감정선에 차분히 안착하지 못한다면 나처럼 각종 의문들과 함께 우주 공간을 부유할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우주복 헬멧은 왜 그렇게 쉽게 뚫리는가. 아버지는 그토록 목표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다가도 왜 일순간 생을 놓아버리는가. 주인공은 어떻게 철판 하나로 우주선 복귀에 성공하는가.


결론은 심플하다. 멀리 존재하는 허상을 쫓기보다는 현재 소중한 대상에 집중하라는 메시지. (어떻게 보면 어바웃 타임의 그것과 비슷하다.) 홀로 해왕성까지 왕복한 뒤의 결과물 치고는 단순하지만, 단순한 만큼 무게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연유는 따로 있다. 나는 오랜만에 혼영을 하고 싶은 기분에 <애드 아스트라>를 예매했다. 영화에 대한 기대는 크지 않았지만 우주를 다룬 영화는 언제나 매력적이니까. 커다란 스크린을 꽉 채운 아름다운 우주 풍경에 압도되거나 한순간 사운드가 진공처럼 텅 비는 순간에 한껏 몰입되기를 고대하면서. 하지만 그 작은 소망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물거품이 되고 만다. 아이맥스가 아닌 스크린은 태양계를 담기에는 너무 작았고, 하필 내 옆자리엔 팝콘 빌런이 있었던 것이다. 극장 선택은 나의 실수였으니까 그렇다 치자. 하지만 과자가 입안에서 부수어지는 날카로운 파열음이 우주적 적막을 뚫고 나올 때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그 소리와 함께 내 안의 어떤 이성의 억제기마저 깨져버린 것 같았다. 와그작. 그 이후로도 내내 과자봉지를 뒤적거리는 그 남자. 제 딴에는 조용히 먹겠다고 조심스레 깨무는 모습이 얼마나 얄밉던지. 그렇게 한 가지 깨달은 사실. 과자는 천천히 바스러질 때 훨씬 거슬리는 소리를 낸다. (바...사...삭..)


나는 영화관을 나오면서 그 남자에게 온갖 저주를 걸었다. 휴가 첫날 타이어가 펑크나기를. 기다리던 택배가 문 앞에서 실종되기를. 진수성찬을 맛보려던 찰나에 직속 상사부터 전화가 걸오기를. 아니다. 이런 저주들은 너무 시시하다. 오늘 먹은 과자로 뱃살이 우주처럼 팽창하기를. 그래서 결국 여자친구에게 차이기를. 그 여자친구가 자신보다 훨씬 더 뱃살이 두툼한 남자와 결혼하기를. 자신이 버려진 이유를 납득하지 못해 잠 못 이루기를. 그때 내가 나타날 수 있다면 그 옆에서 팝콘을 경쾌하게 깨물어줄 테다. 와그작.


(2019.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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