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백 엔이 한 천칠백 원쯤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유례없는 엔고의 시대, 오사카로의 수학여행을 기획하는 정신 나간 고등학교도 있었다. 그렇다. 당시 나는 새파란 고1이었다. 참가비만 120만 원에 육박하는 수학여행 통지서와가파른 환율 그래프를 번갈아 보며 열일곱의 나는 탄식했다. 이 시국에 일본이라니. 고작 나흘에 백만 원이 넘게 필요하다니. 나는 그때 이미 백만 원의 가치를 너무 잘 알고 있었고, 그에 반해 빤한 집안 사정을 등지는 법은 알지 못했다.
아직도 오사카는 가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 여행을 가지 않았다. 오히려 엄마가 나서서 가도 된다고, 보내줄 수 있다고, 열 번은 물어보고 권유했다. 하지만 백만 원의 가치를 아는 나에게 그 여행은 별로 내키지 않았다. 진심으로 내키지 않았으므로 나를 위로하거나 설득하려 드는 것이 퍽 이상했다. 가봤자 애들이랑 몰래 맥주나 사 먹겠지. 재미없는 투어에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끌려다니기나 하겠지. 시시콜콜한 추억 쌓기에 쓰긴 백만 원은 너무 큰돈이었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을 이제야 정주행 중이다. 거기서는 48만 원짜리 전지훈련을 가지 못하는 여덟 살 필구가 나온다. 48만 원이면 엄마가 돼지 두루치기를 오십 개는 안 팔아도 되지 않냐며, 어차피 그런 훈련 가지 않아도 야구는 내가 제일이라고 당돌하게 소리치는 꼬마. 나는 여덟 살 필구에게서 열일곱의 나를 본다.
나는 필구 같은 아이들을 잘 안다. 그런 아이들은 마음속에 저울을 지니고 산다. 저울의 한쪽엔 늘 '현실'이 무겁게 올려져 있다. 저녁 늦게 퇴근하는 아버지의 그늘진 얼굴, 학비나 생활비 고지서에 어김없이 동반되는 엄마의 한숨 같은 것들이. 저울의 반대쪽에 놓이는 것들은 그에 반해 아주 좀스럽고 잡다한 것들이다. 첫 수학여행, 새 축구화, 새 옷, 비싼 간식들 등등. 그것들은 상상 속 이미지로써 존재하는 반면현실은 4D로 줄기차게 상영된다.저울은 뒤집어지는 일이 없고, 아이들은 필요 이상으로 씩씩해진다.
필구를 보면서 마음이 먹먹했던 것은, 그러면서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린 것은, 그 씩씩함과 의연함 때문이었다. 혼자만 수학여행에 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친구들과의 비싼 추억 쌓기에 동참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또래 집단을 자발적으로 벗어나는 파격이 실제로도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게, 그 나이에 그걸 너무 자연스럽게 납득할 수 있었다는 게, 나는 이제 와서 뒤늦게 짠하다. 어디 바닥에라도 굴러가면서, 몰래 지갑이라도 뒤져가면서 법석을 떨지 못하고, 너무 침착하고 차분하게 현실을 인정해버린 어린 필구와 내가.
고작 필통을 놓고 두 번씩이나 뜸을 들이곤, 꼭 사줄 필요는 없다고 금세 말을 바꾸던 꼬마가 있었다
극 중에서 어른들은 필구에게 말한다. 너는 여덟 살 답게 살라고. 그냥 실없이 오락이나 하고 돈가스나 먹으러 다니라고. 하지만 이미 쏜 화살이 돌아오지 않듯 이미 철이 나버린 아이는 그 전으로 되돌아올 수 없다. 나는 안다. 48만 원의 크기를 셈할 줄 아는 여덟 살 꼬마는 복잡한 마음으로 환율 그래프를 뒤적거리는 열일곱이 될 것이다. 값나가는 물건을 살 때마다, 혼자서 푸짐한 메뉴를 고를 때마다 여전히 품 안의 저울을 꺼내는 어른이 될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필구를 만난다면, 도로 어린애처럼 행동하라고 타이르는 대신, 너 정말 애썼구나 하고 등을 두드려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