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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e Mar 11. 2020

[수플레] 아무 말도 하지마 다 알고 있으니까

ep.6 선우정아 - 모른 척

라이브 버전 (모른 척 + city sunset)
아무 말도 하지마 다 알고 있으니까

세상이 날 어떻게 말하고 있을지
미련하고 세상 무서운 줄 모른다고 바보라 부른대
그래 나도 그게 궁금해 요즘 따라

모른 척 웃고 있지만
아무 일 없는 척 살고 있지만
내 마음에 쌓인 시간들은
왜 아직까지 기다리는 걸까
어쩌라는 걸까 이제 와서

한심하긴 현실은 동화가 아니라고
꿈 깨라 하는데
그래 그 꿈은 왜 깨어지질 않을까

아닌 척 앞을 보지만
하라는 대로 다 하고 있지만
내 시간에 쌓인 눈물들은
왜 아직까지 마르지 않을까
어쩌라는 걸까

닦아도 또 끝나지 않는 그 날
빛바래 초라한 내 도전도
끝나지 않을 그 날
빛바래 초라한 내 도전도

아무 말도 하지마 다 알고 있으니까




내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이 있다면 이런 것이다. 한 사람이 누군가를 좋아하는데, 고백을 하고 나면 그 관계가 영원하지 못할 걸 알기에 그냥 친구로 남기로 하는 결정. 나만 조금 조심하면, 내 마음만 철저히 단속하면, 그의 곁에서 더욱 오랜 시간 함께할 수 있으니까. 90년대 드라마의 한 장면 같은 그런 꼬라지를 보고 있자면 화딱지가 난다. 요즘 같은 시대에 짝사랑이 웬 궁상이야.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는데. 사랑도 우정도 어차피 영원한 건 없다면 한 번 질러나 봐야 속 시원한 거 아니겠냐고. 이런 짝사랑은 애잔하기는커녕 비겁하게만 느껴진다.


그렇다면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지 못하는 마음은 이와 얼마나 다른가. 흔히들 꿈꿔왔던 일이 진짜 '일'이 되는 순간 불행이 펼쳐진다고 경고한다. 현실의 도돌이표 속에서 꿈은 점점 생기를 잃어버리게 될 거라고. 상상 속엔 없었던 온갖 대수롭고 치사한 일들을 매일매일 마주하게 될 거라고. 열정만으로 감당하기에 세상은 너무 냉혹하다며 너도나도 우려 섞인 말들을 보탠다. 그래 맞다. 좋아하는 일을 좋아하는 건 취미일 때나 가능하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넉넉하게 벌어먹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삶의 무게를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고 나니 이런 짝사랑은 비겁하기보단 애잔하게 느껴진다.


생각해보면 참 우습다. 사랑 앞에선 고백을 윽박지르던 내가, 꿈 앞에서는 한껏 움츠러들고 말다니.

 



어렸을 적부터 나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 그 꿈은 아주 서서히 그리고 단단하게 뿌리내렸고, 그게 무엇이든 하고 싶은 게 있다는 사실에 친구들은 부러워했다. 나는 그저 '이렇게 확실한 무언가가 내 안에 있다니 내가 운이 좀 좋은가보다' 생각할 뿐이었다. 삶을 관통하는 소명이 생긴 것 같아서 한동안은 잔뜩 설렜다.


길고 긴 세월을 지나 꿈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그걸 둘러싼 배경이 모두 변했다. 그리고 나는 비로소 꿈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었다. 이제 보니 그건 운 같은 게 아니다. 삶의 축복이나 선택받은 자의 징표 같은 건 더더욱 아니다. 재능이나 여건을 동반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반대에 더 가깝다. 꿈과 동거하길 십 수년 째,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제 조금 지쳤다.


끊임없이 가능성을 타진해보다가도 별안간 모든 게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일, 누군가의 한 마디에 희망이 부풀었다가 또 다음날은 현실의 벽에 처절히 무릎 꿇는 일, 그런 일들을 여태껏 수없이 되풀이했다. 지금 이 순간도, 누구보다 오랫동안 그것만을 바라왔던 나와 그게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가장 잘 알고 있는 내가 끊임없이 육탄전을 벌이고 있다. 아. 머리 아파 그만 싸워. 가장 슬픈 사실은 나는 그 둘 중 누구도 응원할 수 없다는 거다.


그렇다고 꿈을 내쫓을 수도 없다. 일부러 모른 척하고 아무리 외면해봐도 자꾸 알은체를 해온다. 열심히 솎아내봐도 어느새 새 가지를 내고 끈덕지게 되살아난다. 이제 이만큼 오래 있었으니 그만 나가줘, 나도 이제 평범하게 살래, 어르고 달래봐도 묵묵부답 그 자리를 지킬 뿐이다. 내 안에 어떻게 들어왔는지 르기 때문에 어떻게 내보내는지도 르겠다.




오랜 짝사랑 끝에 결국 꿈 쪽으로 과감히 방향을 돌린 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기약없이 시간을 갈아넣던 어느 날, 문득 마음이 편해졌다고. 꿈이 이토록 질기게 내 안에 붙어있는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고. 당장이 아니더라도 훗날 어떤 방식으로든 발휘되고야 말 거라는 확신이 든 순간, 긴장이 풀리는 걸 느꼈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깨달음의 순간 이후 얼마 되지 않아 그는 당당히 원하던 시험에 합격했고, 지금은 온갖 욕을 해대며 꿈의 현장을 누비고 있다. (다행히 그는 꽤 행복해 보인다)


나도 그 가능성을 믿기로 했다. 꿈이란 놈이 그토록 오래 내 안에 똬리 틀고 한 구석 차지하고 있다면, 월세도 안내고 밥값도 안내고 이렇게나 긴 시간동안 내 가슴 속의 화두를 점령하고 있다면, 언젠가는 어떤 형태로든 뛰쳐나오겠지. 제깟게 그 속에서 천년만년 움직이지도 않고 뭘 할 것인가.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천천히 녀석을 길들이는 일이려나. 시도때도 없이 불쑥불쑥 몽상에 빠지지 않게. 현실에 발붙이고서도 기회를 야금야금 넓힐 수 있게. 애잔과 비겁 사이를 오가며, 어찌해도 '깨어지지 않는' 이상을 쥐고, 도대체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는 현재를 살아내면서. 아아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애증의 꿈이란 녀석.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줄여서 수플레)'는 네 명의 브런치 작가가 매주 수요일마다 본인의 에세이가 담긴 음악을 소개하는 읽고 쓰는 라디오입니다. 잠들기 전 이름 모를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노래를 듣고 싶으셨던 분들, 즐겨 듣는 노래에 다른 누군가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궁금해본 적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매주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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