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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올 Mar 18. 2020

이겼다 오늘은!

ep.7 ABBA_The Winner Takes It All

  

  안녕하세요. 읽고 쓰는 라디오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 수플레'의 셋째 주를 담당하는 JUDY입니다. 3월의 오늘, 다들 안녕하신가요? 청개구리 심보가 발동해서 코로나 19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요즘 우리의 시간에 아주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부분이라 외면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외면하는 게 답도 아니고요. 제 일상 역시도 그래요. 무기력증으로 시작해서 수시로 찾아오는 불안감, 언제 끝날지 모를 휴직 상태, 그리고 지금이 영원할 거라고 생각한다는 건 사는 동안 가장 위험한 생각 중에 하나구나라는 깨달음까지. 어쨌든 주어진 이 시간을 잘 활용해보자 다짐하지만 그게 쉬우면 다 괜찮게요. 무튼 그런 모두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리며 함께 듣고 싶어 준비한 이 달의 노래는 ABBA의 <The Winner takes it all>입니다.



https://youtu.be/92cwKCU8Z5c

ABBA-The Winner Takes It All

https://youtu.be/fmtrRpmfD_U

영화 <맘마미아> 중에서


   저는 ABBA의 세대는 아니지만 영화 <맘마미아>를 통해 친숙해진 그룹이에요. 영화를 보신 분들이면 아시겠지만 저 또한 영화로 그들을 처음 접했다 보니 당차고 멋진 여성그룹일 거라고 생각했었는데요. ABBA는 사실 두 쌍의 부부로 이루어진 혼성그룹입니다. 아 아쉽게도 두 쌍의 부부 모두 현재는 이혼했지만요. <Waterloo>라는 곡이 1974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하며 그야말로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Dancing Queen>, <Thank you for the music> 등 주옥같은 히트곡을 많이 발표한 ABBA는 1980년 <The winner takes it all>이라는 곡을 발표합니다. 좀 마음 아픈 이별 노래예요. 사랑하는 사람을 다른 이에게로 떠나보낸 자가 그의 뒷 모습을 바라보며 부를만한 노래라고 하면 딱일까요. 영화 <맘마미아>에서도 메릴 스트립이 이 곡을 애잔하게 소화해내는 장면이 있는데요. 저는 이 노래를 취준생 때 처음 들었어요. 노래 가사를 이해하며 들었던 것은 아니고 후렴구의 'the winner takes it all~' 이 부분의 호소력에 매료되어 무한 반복하곤 했어요. 그 당시 제게 필요했던 건 목표에 대한 성취였습니다. 그래서 제게는 애잔함 보다는 '그러니까 힘을 내!' '멈추지 마!' '이겨내야만 해!' 라는 응원곡에 가까웠어요. 다짐 한 것을 이루지 못해서 다른 사람들을 부러워하기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요.



이겼다 오늘은!



"언니는 힘들 때 어떻게 이겨내요?"

"가끔 져요"


  제대로 된 뒷북을 치며 아이유의 일화를 알게 되었고 (한 팬의 질문에 아이유가 솔직하게 위와 같이 대답했다고)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은 아니었지만 내게도 위로가 되기에는 충분했다. 마침 나는 매일이 '지는 자'였다. 상대는 바로 나 자신. 코로나 19로 시작된 예상치 못한 상황들에 어쨌든 나는 굉장히 무기력해졌고 앞 뒤 신경 쓰지 말고 일단 밀어붙여보자 했던 태도가 이럴 때는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예상치 못했던 나는 좌절감에도 시달렸다. 설상가상으로 이 상황에 몸살까지 얻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꼼짝없는 감금 생활을 시작한 터였다.


  그러다 우연히 보게 된 한 유투버의 영상에서 '아침 시간을 활용하면 무기력이 좀 나아져요'는 말에 속는 셈 치고 한 번 일찍이라도 일어나 보자 라고 가볍게 먹었던 마음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래 괜찮지 뭐. 사람이 인간미 없게. 내일은 일찍 일어나 보자. 급할 거 없잖아?


  그리고 다음날 나는 또 졌다. 그렇게 며칠이 반복되었다.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실패할 일이 없다고. 그래도 한 번 세운 계획을 그냥 철회한다는 것이 못내 찝찝하여 그냥 그렇게 수십 번의 마음을 요리 조리 바꾸고 나서야 지는 것 조차도 지겨워졌다. 자꾸 지니까 해결되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몸살은 괜찮은 핑계가 되어 주었지만, 또 바로 다음 날 무슨 안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결되는 것도 없었다.


  지고 지고 계속 지다 보니 아니 그럼 이겨보면 어떻게 되나 싶었다. 오기가 꿈틀 대어 나는 한 번 마음 굳게 먹고 일찍 자보기로 했다. 일찍 자면 좀 일찍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하고 말이다. 오전 4시 30분에 알람을 다시 맞추고, 밤 10시에는 무조건 잠들어볼 거라 다짐했다. 그래서 그냥 다짜고짜 10시에 침대에 몸을 뉘었다. 이미 낮잠을 거하게 오늘 아무것도 한 일이 없었지만 일단 그냥 누웠다. 하지만 역시나 낮에 에너지를 다 소모하지 못한 나는 오전 12시 40분, 1시 20분 계속해서 떠지는 내 눈을 원망하고 있었다. 동남아 인바운드 픽업 직전에 놓인 것 같았던 이 몽롱한 상태는 뭐냐고요.


  아 그래도 오늘은 너무나 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은 야속하게도 벌써 오전 3시 11분에 도착했다. 여기서 꾸역꾸역 잠들면 분명히 4시 30분 알람이 울릴 때에 나는 그제야 잠이 솔솔 오기 시작해서 절대로 일어나고 싶지 않은 상황이 될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로부터 한 6시간 뒤에나 눈을 뜨겠지. 그리고 이건 어제의 나다. 안돼. 오늘은 절대 안 돼! 그래서 오늘은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그냥 바로 일어났다. 오전 3시 11분에 그냥 일어난 거다. 찬물에 세수를 하고 로션을 바르고 따뜻한 물을 끓여 루이보스 차를 한 잔 마셨다. 집에 있는 덤벨을 들어 다짜고짜 팔 운동을 했다. 일기를 썼다. 샤워를 하고 방울토마토를 한 컵 씻어 먹었다. 거실 소파에 누워 사이드 조명을 켜놓고 한 시간 동안 책을 읽었다. 이 모든 것을 다 하고 나니 오전 6시였다. 물론 오전 4시 30분에 울린 알람은 그냥 깨어 있을 때 들었다.

그래도 오늘 나는 4시 30분에 일어나 있는 자였고, 그래서 오늘은 드디어 나에게 이긴 날이 되었다.


  참 신기한 게 이게 뭐라고 오늘 하루는 정말 어제보다 나쁘지 않다. 하려던 일의 절반은 이미 새벽 6시에 다 끝냈고 그 후 잠을 좀 더 자고 일어났지만 기분이 괜찮다. 며칠 동안 아무것도 쓰고 싶지 않았던 내가 카페에 내려와 이렇게 글을 쓸 힘을 내고 있다. 어떤 상황도 어제와 달라진 것이 없지만 분명한 것은 어제보다 좀 '나은' 오늘 하루라는 것이다. 나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당장 없애지 못하고 나의 출근 일정을 바꾸지 못하고 지난날의 부족한 나를 없애진 못했지만 적어도 어제보다는 확실하게 나은 오늘을 보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2020년의 마지막 날에는 꼭 떳떳하게 말하고 싶다.


"올해는 나한테 진 날보다 이긴 날이 더 많았어."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줄여서 수플레)'는 네 명의 브런치 작가가 매주 수요일마다 본인의 에세이가 담긴 음악을 소개하는 읽고 쓰는 라디오입니다. 잠들기 전 이름 모를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노래를 듣고 싶으셨던 분들, 즐겨 듣는 노래에 다른 누군가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궁금해본 적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매주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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