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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훈 Mar 25. 2020

[수플레] 슬프면서 좋은 것

ep.8 Mac Demarco - Chamber Of Reflection

안녕하세요. 수플레의 영훈입니다. 수플레 매거진에 함께 해보자는 제안을 받고 첫 글을 쓴 지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한 달이 지나 다시 제 차례가 왔네요. 수플레 덕분에 수요일의 마무리가 좀 더 풍성해진 요즘입니다. 저번에는 사랑이 가득해 저를 움직이게 만드는 노래를 소개해드렸는데요. 오늘은 그와 반대로 한없이 무기력할 때 탁한 어둠 속에서 웅크려 듣고 싶은 노래를 소개해드릴게요. 바로 Mac Demarco - Chamber Of Reflection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QsF3pzOc54

Chamber Of Reflection


이 노래를 부른 맥 드마르코는 캐나다 출신의 싱어송라이터예요. 노래를 들어보면 알 수 있듯이 괴짜 같은 구석이 매력적인, 인디 락 장르의 최고 찌질이라는 타이틀이 어울리는 가수입니다. 저는 주로 우울한 날 이 가수의 노래를 찾게 돼요. 살다 보면 침대에 누워있는 제 몸의 하중 자체를 견디기가 버거워질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카프카의 <변신> 속 벌레처럼 방 안에서 별 생각을 다하면서 스스로를 더 움츠러들게 하기에 딱인 bgm이 바로 이 노래예요.


이 노래를 지긋하게 듣고 있자면 마약을 하면 이런 기분일까 싶을 만큼 몸이 나른해지는 것을 느껴요. 어딘가 모르게 슬프고 몽환적인 신시사이저 소리에 'alone again'을 반복해서 외치는 맥 드마르코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보면, 제 몸이 녹아 지구 내핵보다 더 깊은 곳으로 고립될 것 같은 위험한 기분이 드는 거죠.


여러분은 한없이 무기력해질 때,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을 때 무엇을 하시나요? 

(질문이 어딘가 모르게 이상하네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을 때 뭘 할 수 있을까요) 저는 보통은 잠을 자요. 잠을 통해 저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들로부터 잠시나마 로그아웃하는 거죠. 그러고 나면 이상하게도 저를 우울하게 만들었던 복잡한 생각들이 어느 정도 망각됨으로써 다시 살아갈 힘을 얻어요. 하지만 동시에 알고 있어요. 언젠가 다시 우울이 나를 덮칠 것이다. 무기력이 나를 삼킬 것이다.


그 때문에 저는 어느 정도 감정을 직면할 에너지가 생기면, 저로부터 한 발자국 떨어져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요. 누구에게나 그렇듯 저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에요. 우울한 감정을 직면한다는 것은 꽤나 용기가 필요하니까요.  다행인 것은 대체적으로 그런 시간을 가지고 나면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와 활력을 얻을 수 있다는 거예요. 하지만 정말이지 내 안의 우물이 유독 깊은 날이 있어요. 그 안으로 파고들고 파고들다 보면 그 무엇도 남지 않아 저를 다 소진해버릴 것만 같은 날. 저를 지독하게 괴롭히는 그것이 떠오르는 날. 


https://www.youtube.com/watch?v=kz9jhG963no

Mac DeMarco - Chamber Of Reflection (Official Video)


그것은 바로 제가 상처를 줬던 사람들이 꿈에 나와서 저를 빤히 쳐다보는 꿈을 꾸는 거예요. 제가 상처를 주려고 작정한 사람들은 오히려 꿈에 나오지 않아요. 그런 사람도 없고 그럴만한 성격도 못 되는 편이고요. 제 꿈에 나오는 사람은 제가 의도하진 않았지만 저로 인해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에요. 단지 저는 저대로,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대로 자신의 삶을 살았을 뿐인데 서로에게 줄 수밖에 없게 된 상처 같은 것들 있잖아요. 그런 상처들이에요. 살다 보면 당연히 상처를 주거나 받는 일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다가도, 그 어쩔 수 없지라는 생각을 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바로 밀려와요. 끝없는 썰물과 밀물의 반복처럼요.  


꿈에서 그 사람들은 대체로 저를 빤히 쳐다봐요. 어떤 날은 환하게 웃고 있고요. 어떤 날은 표정 없는 얼굴로 저를 응시합니다. 또 어떤 날은 엎드려서 울고 있어요. 저는 그들을 보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힘들어하다가 꿈에서 깨곤 해요. 이런 꿈을 꾸는 날은 시간이 갈수록 빈도도 줄고,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마음 한편이 아려오는 꿈이에요. 이런 꿈을 왜 꾸나 생각해보면 내가 누군가에게 의도치 않게 상처를 줘서 힘들어하던 시기에 그런 꿈을 꾸곤 하더라고요. 꿈은 보통 무의식이 표출되는 거라고 하잖아요. 아마도 제 무의식 속에 그들에 대한 어떤 죄책감이 그런 식으로 발현되지 않나 싶어요. 가끔은 엉뚱한 생각도 해요. 그 사람들이 살아가다가 문뜩 제 생각을 한 날에 제 꿈에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요. 


세상이 그런 것 같아요. 상처 주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도 그들은 나와 다르기 때문에 상처를 받게 되는 것, 내가 먹고사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피해가 가는 것, 나의 정체성을 이유만으로 편이 갈리고 서로의 적이 되는 것. 저는 그런 것들이 싫어요. 살다 보면 익숙해질 법도 한데 그런 면역이 생기는 것 자체도 싫고요. 이런 생각들을 붙잡고 있다 보면 정말이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가 있어요. 혼자인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내가 정말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단지 숨을 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누군가가 피해를 보고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걸 아니까요. 


저는 유독 남들이 저한테 주는 상처보다 제가 타인에게 주는 상처에 약해요. 저의 이런 약점을 이용하는 친구마저도 이해하려고 애를 써요. 차라리 그렇게 우울해지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을 땐 생각이 멈춰버렸으면 좋겠어요. '아는 게 힘이다. 슬픈 것보다 슬픈 것을 느끼지 못하는 게 더 슬픈 일이다.' 이런 말들을 좋아하다가도 진절머리가 날 때가 있어요. 다 관두고 싶은 거죠. 그럴 때 이런 노래를 찾게 되는 것 같아요. 신기한 건 이런 노래들에 취해 있다 보면 우울한 감정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묘한 양가감정에 사로잡혀요. 깊은 심연에 흠뻑 잠수했다가 고개를 들었는데 반짝이는 물비늘을 발견한 것처럼요. 



요즘은 그런 감정들을 정신 차리고 나서 기록해뒀다가 소설로 써보려고 시도해요. 무기력함을 무언가를 만드는 힘으로 전환하는 걸 알아가는 중이죠. 재미있는 건 그 소설에서도 저는 해피엔딩을 내려고 애를 쓰고 있더라고요. 다들 착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결말. 누군가는 그 소설을 무해한 세상이라며 아름답게 읽어주기도 했고 누군가는 착한 것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현실을 더 즉시 해야 한다고 하기도 했어요. 그런 저에게 최근에 큰 위로가 된 소설이 있어요. 권여선 작가의 신작 소설 <아직 모르겠다는 말>에 있는 단편 '모르는 영역'이요. 글 속에서 작가가 자신을 둘러싼 것들을 한참 동안 관찰하고도 판단하지 않은 채 모르는 영역으로 내버려두려는 태도가 느껴져서 좋았어요. 억지로 따뜻하지 않아서, 억지로 결말을 내려하지 않아서 좋은 소설이었어요. 제가 배워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했죠.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을 때, 무기력할 때는 그 자체에 푹 빠져있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억지로 나오려고 하지 말고 나오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오면 나오는 거죠. 이 노래 제목처럼 ('Chamber of reflection'을 의역하면 '성찰의 공간'이라고 해요) 그냥 그 공간에서 머무는 거예요. 그럴 때 도움이 되는 것들이 각자마다 있다고 생각해요. 저에겐 맥 드마르코의 노래나 권여선 작가의 소설이 그렇고요. 

요즘은 특히 우울한 일들이 많은 것 같아요. 코로나 19 때문에 전 세계가 뒤숭숭하고, 뉴스에선 끔찍한 일들이 보도되고 있고, 그 와중에도 삶은 계속 흘러가고. 이럴 때일수록 자신에게 '슬프면서 좋은 것'을 찾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슬프면서 좋은 게 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찾게 되는 것. 그런 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면서 그럼에도 살아가는 단단한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여러분도요.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줄여서 수플레)'는 네 명의 브런치 작가가 매주 수요일마다 본인의 에세이가 담긴 음악을 소개하는 읽고 쓰는 라디오입니다. 잠들기 전 이름 모를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노래를 듣고 싶으셨던 분들, 즐겨 듣는 노래에 다른 누군가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궁금해본 적 있으신 분들이라면 매주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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