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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e Apr 15. 2019

어떻게 질량이 변하니

변하는 것들 투성이에서 잘 살아남기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한 친구가 뜬금없이 청첩장을 꺼냈다. 우리는 모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조심스레 받아 들었다. 언젠가는 우리도 다 하게 되겠지마는 제일 얌전한 그 녀석의 가방에서 그 파스텔 톤 봉투가 이렇게 빨리, 그리고 가장 먼저 나올 줄은 아무도 몰랐다. 남자였구나, 짜식.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뒤 우리는 고향 동네에 모인 겸 옛 추억을 떠올리며 그때와는 너무 많이 변해버린 이 곳 풍경과 우리 사는 환경에 대해서 떠들었다. 시간이 흘러 모두 자기 밥벌이 정도는 하고 있고, 한 녀석은 인생의 거사를 앞두고 있으며, 예전 그 앳된 얼굴들은 이제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 대화주제 역시 프러포즈를 비롯한 결혼 준비가 얼마나 골치 아픈지, 회사 업무나 상사는 얼마나 지루한지, 우리가 살던 동네의 재건축 소식은 어떠한지 등 꽤나 고리타분한 종류였다. 그 날 우리 얼굴이 벌게졌던 건 결단코 술에 취해서가 아니라 너무 빨리 지나가버린 세월에게 섭섭했기 때문이리라.


그러다가 한 녀석은 공대 석사생답게 요즘은 변하는 것이 하도 많아서 기본 물리량 단위조차 변한다는, 다소 학술적인 수다를 늘어놓았다. 어리둥절한 문과생 친구를 내버려두고 우리는 그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 말인즉슨, 국제단위계(SI)의 7개 기본단위 중 질량/전류/온도/물질의 양 등 총 4개 물리량에 대한 단위가 새롭게 정의되었다는 것이다. 그중 예를 들자면, 1889년에 만들어진 ‘국제 킬로그램원기’의 질량으로 정의되어 왔던 ‘킬로그램’은 현재 해당 원기의 질량이 50㎍ 변했다는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수정이 불가피해졌다고 한다. 기준 단위가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는 측정값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값이 일정한 상수를 도입해 도량형을 새로 규정하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이다. 그래, 백 년을 이어온 도량형의 정의도 새로 써야 하는 마당에 어디 변하는 것이 그뿐이랴.


우리가 변하지 않으리라고 무심코 믿어온 것들 중 대부분이 실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 비단 물리량 단위뿐 아니라 고혈압 진단 기준과 같은 의료 가이드라인은 때때로 개정되고, 태양계 언저리에서 심심하게 지내던 명왕성은 어느 날 갑자기 영문도 모른 채 행성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이제는 죄수번호 같은 134340으로 불리고 있다. 굳이 어려운 과학 분야까지 가지 않아도 당신의 얼굴과 눈가 주름, 당신의 복부 지방과 근육량, 당신 머리카락의 굵기와 개수 등 당신을 둘러싼 많은 것들의 오늘과 내일이 같지 않다. (당신이 대머리라면 미안하지만 모발 분야에서 당신은 예외다.)


 변하는 것들 중에 으뜸은 역시 마음이다. 그때 내 마음을 흔든 그 물건은 막상 갖고 나니 더 이상 그렇지 않고, 취향이나 입맛 같은 나의 고유한 정서들도 달라지며, 일에 대한 열정도 사람에 대한 애정도 결국에는 변하기 마련이다. 사람 마음이 제일 어렵다 모두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이유는 그 변화 과정에서 일정한 패턴이라고는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바뀐 메뉴나 식어버린 사랑과 같은 변덕은, 그 동기나 원인이 항상 무의식 속에 감추어져 있는 탓에 예측도 대비도 불가능하다. 그리고 대부분 마음속에서 떠난  아무리 야단을 쳐도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고 후회할지언정.


 은 변화무쌍하다는 세상의 이치에 대해 깨달아버리고 나니 무엇에 의지해 어떻게 살 것인가 막막하다면 여기 응용해볼 만한 대책이 있다. 오늘 새로 만나는 나 자신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최선을 베풀어라. 나를 비롯한 그들은 내일이면 흔적만 남기고 온데간데 없어질 것이니까.


(2019.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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