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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료대신 받아온 맥길대학 머그

by 코리디언


“엄마! 이거!”
“응? 이건 맥길대학 컵이네.”
“엉, 교수님이 주셨어.
강의 끝나고 교수실에 갔더니 이거 주시던데, 강의료 대신인가 봐!”
“하하하”

아이의 상쾌하고, 유쾌한 웃음

저녁에 퇴근하며 돌아온 아들이 건네준 빨간 머그를 받아 들며 나눈 대화다.



아들은 맥길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한 지 꽤 오래되었다.
후배들에게는 단순히 선배가 아니라 전설, 화석, 조상처럼 불릴 정도다.
졸업 후에는 미국 컨설팅 회사인 올리버와이먼(Oliver Wyman)에서 2년 동안 컨설턴트로 일했다.
그 후에는 투자회사로 유명한 소프트뱅크(Softbank)에서 일했고,
코로나가 막 시작된 2020년 9월, 옥스퍼드 대학(Oxford University)에서 정책 석사를 시작했다.
우리는 그 격리 생활을 "럭셔리한 격리"라고 놀리기도 한다.
옥스퍼드에서 공부하면서 창업을 시작했다.
다행히 투자자들의 신임을 얻어 바로 창업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창업자, 즉 스타트업 CEO로 일하고 있다.
대기업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는 한 끼에 30파운드짜리 식사를 했지만, 지금은 맥도널드에서 치즈버거로 끼니를 때울 정도로 경제적인 격차가 나지만, 자신만의 일을 하며 만족하고 있다.

아들은 직업의 성격상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일한다.
그렇지만 매년 12월이 되면 꼭 집으로 돌아오고, 돌아오면 항상 대학교수님들께 문안 인사를 드린다.
학창 시절에도 몇몇 교수님들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졸업 후에도 이런 관계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참 부럽다.
올해도 교수님을 찾아가 인사를 드렸더니,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한 경영 수업에서 '창업'에 대해 강의를 해줄 수 있겠냐는 제의를 받았다.
이탈리아에서의 콘퍼런스를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올 계획이었기에 시간이 될 것 같아 스케줄을 조정하고 기꺼이 강의 기회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어제 오후, 수업을 마친 후 교수실로 돌아가 교수님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너 맥길대학 머그컵 있어?”라고 물으시길래, 없다고 하자 하나 가져가라고 주셨다고 한다.


대학 4년 내내 아들은 학교 굿즈를 살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
빠듯한 용돈으로 바쁘게 살았고, 친구들은 학교 근처에서 하숙을 했지만, 아들은 집에서 1시간 거리를 기차로 다니며 등하교했다.
중간고사와 학기말 고사 때는 시간이 부족했을 텐데도, 아들은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는 고된 시간들이었지만, 불평하지 않고 환경을 탓하지 않으며 잘 자라준 아들이 정말 자랑스럽고, 고맙다.

강의 중


맥길 팟캐스트에서 인터뷰중인 아들


눈이 부시게 푸르른 겨울 햇살이 스며드는 창가에 앉아서 아들이 강의료 대신 받아온 맥길대학 머그에 커피와 아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꾸우욱 담아 본다. 향 좋은 커피 안에 옛날 추억들이 녹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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