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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17 — 맺음 이야기

by 코리디언

[Episode 17] — 맺음 이야기


새로 이사 와서 여덟 해를 살면서 기억에 남은 일들을 일기에 기록했던 것을

열여섯의 에피소드로 만들어 다시 글로 엮어 보았다.

비록 많은 독자층을 얻지는 못했지만, 글을 쓰는 내내 나에게 집중할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

나는 ‘집’, ‘사는 곳’, ‘장소’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는 것과, 또, 이곳은 나에게 그냥 ‘사는 곳’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흔히 ‘집’과 ‘가정’을 같은 말로 생각하지만, 그 안에는 살짝의 차이가 숨어 있다.

집(家, House) 은 벽과 지붕, 방과 창문이 있고, 사람이사는 물리적인 장소이며,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는 나만의 공간을 포함한 공간개념이며, 은유적 의미로 ‘소속’이나 ‘근본’을 나타내는 곳이다.

한편, 가정(家庭, Home)은 단순한 ‘집’보다 부모, 자녀등 가족이 함께하는 삶으로 서로의 마음이 모인 따뜻한 사람들의 관계와 생활이 있는 관계 중심적인 추상적 개념이다.

‘돈을 주고 집을 살 수는 있어도 행복한 가정은 살 수 없다’라는 말이 있지만,


나에게 있어 100년된 이 아파트는 집(家, House) 이자 가정(家庭, Home)이다.

이곳에 사는 몇몇의 이웃들은 이웃사촌 곧 새로운 나의 가족이 되었다.


공생(共生, 영어: symbiosis)은 생물학 관점에서 각기 다른 두 개나 그 이상 수의 종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를 말한다. 공생 중에서도 상리공생이 있는데 이것은 두 종 모두 이익을 얻는 관계를 말한다. (출처:위키백과)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면 당연히 좋은 점도 있겠지만, 불편한 점도 있기 마련이다.

북을 치는 아래층 남자(Episode7)나 꽃에 물을 주는 위층 여자(Episode8)나 내게는 눈에 연기 같은 사람들이지만, 나도 의도치 않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품고, 더불어 사는 공생의 관계를 살아가야 한다.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르지만, 이민자라는 이름으로 이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공통점을 가지기에 서로의 삶을 더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것이 가족 공동체가 된 것 같다.

나는 얼마나 더 이 공간에서 주인행세를 하며 살지 모르지만, 있는 동안 이곳의 삶을 누리고 즐기고 싶다.


100년 된 벽, 그 속에 스며든 수많은 발자국과 웃음, 눈물과 속삭임을 느끼며,

낡은 계단을 오르며, 나는 그 시간을 밟는다.

캐나다의 긴 겨울바람이 흔드는 창문 틈새로 지난 세월의 속삭임을 듣는다.

이곳은 단지 지붕과 벽이 아니다. 세월과 추억, 사람들의 마음이 한데 모여 살아 숨 쉬는 집이다.

오늘도 나는 그 안에서 하루를 마치며, 조용히 안도와 만족의 미소를 짓는다.

누군가에게는 현재였을 100년의 기억 속에서 오늘의 내가 숨 쉬고 있다는 것을,


16편의 에피소드를 읽어주시고, 함께 해주신 모든 독자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100년 된 아파트에 삽니다’ 연재를 마치려 한다.


하지만, 이곳의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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