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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5] — 바늘구멍으로 황소바람이 들어온다
원래 속담의 뜻은 바늘구멍만한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도 아주 차고 매섭다는 뜻으로 작은 것이라도 소홀히 하지 말라는 뜻이란다. [출처 : 소년한국일보]
100년 된 아파트의 문틈사이로는 사람들의 이야기소리와 생활 소음들, 그리고 각 나라별 음식냄새만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캐나다 겨울의 차가운 황소바람도 들어온다.
나무로 지어진 이 오래된 아파트의 특징은 계절별로 문틀의 사이즈가 늘었다 줄었다 한다는 거다.
습기가 많은 여름철에는 나무들이 습기를 먹어 팽창이 되어서 문들이 뻑뻑하게 되어 힘을 주어 당기거나 밀어야 한다.
반대로 겨울이 되면 건조해진 날씨 탓에 나무들이 습기를 다 빼앗겨서인지 바짝 말라 문들이 헐거워진다. 그래서 문을 닫아 놓아도 틈새가 벌어져 스르르 열린다.
우리 집에 초대를 받아온 손님들이 화장실을 사용할 때 당황하는 부분이다.
화장실에 들어가 아무리 문을 닫아도 스르르 열리니 손님들은 화장실 문과 몇 분 동안은 치열한 싸움을 한다. 오래된 목조 건물에서만 일어날 에피소드이다.
그뿐 아니라 늦은 밤 고요한 시간에는 천정이나 나무 마루바닥에서 쩍쩍 나무팽창하는 소리가 난다.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밤새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시며 내시는 신음소리 같다.
새로운 가구를 사서 수평을 맞추는 것도 쉽지 않다. 기본적으로 나무 마룻바닥들이 오래되어 평평하게 수평이 잘 맞아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새로운 가구라 하더라도 밑에 수평맞춤을 해 주어야 한다.
창문의 경우도, 다행히 거실 앞쪽 창문은 우리가 이사 올 때 새로운 창문틀로 바꾸어주어서 제법 바람도 막아주고 소음도 차단해 주지만, 마스터 베드룸과 다른 2개의 방에 딸린 창문들과 작은 화장실 창문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모르는 나무 창문으로 세입자가 바뀔 때마다 페인트로 덧칠을 했을 뿐 창문틀 자체가 너무 오래되고 마모되어서 틀과 문이 잘 맞아떨어지지가 않고, 틈새로 바람이 들어온다.
여름에는 괜찮지만, 겨울에는 그 작은 틈새로 스며드는 찬기로 코가 시리다.
작은방에 딸린 욕실에서 샤워를 하면, 창문틈에서 들어오는 바람로 재채기를 연신하게 한다.
그래도 겨울이 되면 난방이 들어오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우리 아파트의 난방은 조금 특별하다. 대부분의 아파트가 전기를 이용하지만, 우리 집은 온수나 증기 같은 열매체가 라디에이터(금속 열교환기) 안을 순환하며 공간을 데우는 라디에이터 방식이다.
금속 표면을 타고 퍼지는 그 은근한 온기가 공기 속에 스며들면, 차가운 방 안이 어느새 포근하게 변한다.
겨울에는 이 난방 덕분에 창문 틈새로 스며드는 찬바람쯤은 아무렇지 않다. 오히려 실내는 따뜻해서 얇은 옷차림으로 지내기에도 충분하다. 하지만 문제는 환절기다.
늦겨울과 초봄, 늦여름과 초가을이 되면, 중앙난방식인 우리 아파트는 ‘적정 온도’가 아니라는 이유로 난방을 틀어주지 않는다. 그래서 한겨울보다 오히려 이 시기가 더 춥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땐 두꺼운 양말을 신고, 겨울 스웨터를 꺼내 입는다. 때로는 매트리스 위에 전기장판을 깔고 자기도 한다.
현대식으로 지은 모던한 아파트나 콘도에는 웃풍이 없지만, 우리 아파트는 웃풍도 세다.
특히 마스터 베드룸은 산 절벽밑에 있어서인지 찬기가 많이 느껴진다.
이불을 덥고 누워있으면, 코끝이 매워진다.
그럴 때면 어린 시절 겨울밤이 생각난다. 저녁 밥상을 물리고 나면, 아빠는 장롱에서 요를 꺼내서 바닥에 깔아놓으신다. 그러면 우리는 그 요 위에 내복만 입고 마구 뒹군다.
장롱에서 막 꺼내 놓은
요의 찬기는 묘하게 기분이 좋아진다.
요 위에서 뒹굴고 있는 우리에게 아빠는 이불까지 펼쳐서 우리 위로 던지신다. 이불에서 느껴지는
매콤한 겨울냄새와 이불의 찬기를 느끼며, 점점 온돌에서 전달되는 온기에 잠이 들곤 했다.
이 오래된 아파트의 창문 틈에서 슝슝 들어오는 황소바람과, 웃풍은 옛 어린 시절의 향수를 느끼게 한다.
낡고 오래되어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이 집이 그래서 나는 좋은 거 같다.
이제는 나이 들어 이불을 펼 힘조차도 없으신 부모님의 젊은 시절의 향수를 유일하게 간직할 수 있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