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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다리 아저씨들

14

by 코리디언

[Episode 14] — 키다리 아저씨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어릴적 나의 최애 애니메이션은 "키다리 아저씨"였다.

미국의 여류 소설가 진 웹스터(Jean Webster)가 1912년에 발표한 소설로 영어 원제는 Daddy-Long-Legs이다.

1990년 일본 텔레비전은 이 원작을 배경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방영했으며, 한국에서도 세계명작 시리즈로 한국어 더빙 방송을 했고, 나를 포함한 많은 시청자들에게 추억의 작품으로 남아 있다.

한국에서 방영된 키다리 아저씨 만화영화는 원작 소설과 마찬가지로 주디가 키다리 아저씨에게 보낸 편지 형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며, 줄거리는 비록 고아원에서 자랐지만, 밝고 명랑한 소녀인 주디 애벗이 어느 날 고아원을 방문한 한 익명의 남성이 주디의 글쓰기 재능을 높이 평가하고 그녀를 대학에 보내주겠다고 제안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 남성은 자신이 누구인지 절대 밝히지 않고, 다만 주디가 가끔 자신에게 편지를 써서 자신의 학업과 일상생활에 대해 알려주기를 바란다는 조건만 제시했다. 주디는 그가 방문했을 때 직접 얼굴은 보지 못하고, 그의 긴 그림자만 보고 그를 키다리 아저씨(Daddy-Long-Legs)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우리 아파트에도 키다리 아저씨가 사는 것 같다. 어쩌면 키다리아저씨들일수도 있겠다.




가끔씩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중문 입구에는 사람들의 눈에 잘 띄게 각종 보존기간이 긴 음식들이 놓여있을 때가 있다. 이를 테면 통조림 고기, 야채, 수프, 파스타소스, 콩종류, 파스타면, 쌀 등등

부활절,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같이 특별 명절이 가까울 때면 스테이크나 로스트를 해 먹을 수 있는 닭고기 소고기도 있고, 싱싱한 야채나 과일들도 올려져 있다.

지금은 자연스럽게 생각하지만, 처음에는 누가 이런 것을 갖다 놓은 것일까? 누가 이런것을 가져갈까? 궁금하기도 하고 의아해하기도 했다.

나중에는 과자, 스낵, 학용품, 모자, 장갑 심지어는 화초가 심긴 화분까지도 놓여있었다.

이것을 갖다 놓은 사람도 언제 갖다 놓은지도 모르고, 가져가는 이도 누구인지 모르게 즉시 물건들이 없어졌다. 나만 모르는걸까?


사실 나는 이곳에 살면서 이웃들의 살림살이를 잘 모른다.

지나다가 자주 만나는 이웃과 인사를 나누는 정도이지 그들의 삶 깊숙이 들여다보지는 않았다.

그냥 전형적인 도시 아파트의 삶이었다.

그러나 이 건물에 사는 누군가는 나와는 다르게 이웃의 살림살이를 알고 돕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도 아무도 모르게 말이다.


특별히 코로나 펜데믹동안에는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도 많았는데 아랫집 북 치는 남자는 주말마다 자신이 직접 피자를 만들어서 저렴한 가격인 $2에 한 끼 식사를 제공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용했는지는 모르지만, 이윤을 남기자고 했을 거라는 생각은 안 든다. 재료값만 해도 $2이 넘을 테니 말이다.





캐나다에는 푸드 뱅크(Food Bank)가 있는데, 이 기관은 식료품을 기부받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누어주는 비영리 자선 단체이다.

푸드 뱅크의 주요 기능과 역할은 식품 제조업체, 농부, 슈퍼마켓, 개인 기부자 등으로부터 남거나 잉여가 된 식료품을 기부받는다. 기부받은 식료품을 종류별로 분류하고, 안전하고 위생적인 환경에서 보관하였다가 수집한 식료품을 푸드 뱅크에 직접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직접 제공하거나, 푸드 팬트리, 수프 키친 등 지역 사회의 다른 구호 단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배분을 한다. 이 과정은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데도 기여하게 된다.

갑작스러운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개인이나 가족에게 식량 지원을 제공하여 긴급 상황을 극복할 수 있도록 긴급 지원을 하기도 하는 푸드 뱅크는 단순히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을 넘어, 빈곤, 식량 불안정, 음식물 쓰레기 문제 등 더 넓은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데 기여하고 있다.

저소득층, 실업자, 장애인, 은퇴자, 그리고 예상치 못한 위기로 인해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누구나 이용할 수 있으며, 최근에는 임금 상승률이 물가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해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근로 빈곤층(working poor)의 이용률도 증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개인이나 가족 구성원 수에 따라 식료품이 담긴 푸드 배스킷( Food Basket)을 제공받는데, 이 배달도 자원 봉사자가 필요해서 나도 참여한 적이 있다.


캐나다 전역에는 Food Banks Canada라는 전국적인 조직을 중심으로 수많은 푸드 뱅크가 활동하고 있고, 몬트리올에는 Moisson Montréal과 같은 대형 푸드 뱅크를 포함해 여러 지역 푸드 뱅크들이 있다.




사회 전반적인 구제 시스템도 있지만, 슈퍼마켓에도 계산대를 지나 출구옆에 작은 푸드뱅크 상자가 놓여있어 장을 보면서 같은 음식을 하나씩 더 사서 푸드 뱅크통에 넣을 수 있도록 개인이 구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세계의 경제가 어려워지고 개인의 살림살이도 힘들어지는 현재에 다른 사람들의 삶까지 돌보기가 버겁다. 그러나 세상은 혼자 사는 곳이 아닌 함께 사는 곳이라는 것을 일깨워주며, 어려운 이웃을 조용히 돌보는 우리 아파트 키다리 아저씨들에게서 많은 것을 생각하고 배우게 된다.

나는 그가 누구인지 아직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가 누구인지 끝까지 모르기를 바란다.

그의 선행이 오래오래 지속되어 이 아파트에 행복 바이러스를 계속해서 퍼뜨렸으면 좋겠다.

아직도 사람들의 인정이 뭍어나는 100년된 아파트에 살기를 잘 했다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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