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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가족

13

by 코리디언

[Episode 13] — 수상한 가족 14호



지난밤 잠을 설치고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쿵쾅쿵쾅!!!

다급하고도 거만하게 누군가가 우리 집 문을 세차게 두드린다.

짧고 얇은 잠을 깨우는 소리에 짜증이 났다.

누가 이 이른 아침에 남의 집 문을 두드리는 것일까?


문을 열어보니 다부진 몸에 위아래 검은색 정장을 한 젊은 여자가 파란색 눈동자를 반짝이면서

건너편집을 가리키며 프랑스어로 무어라 물어본다.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프랑스어

'나는 프랑스어를 몰라요 영어로 말해주시겠어요?'


그녀는 강한 프랑스 액세트가 섞인 영어로 나에게 건너편 집 사람들이 여기 있냐고 물었다.

그거야 그 집을 두드려서 알아보면 될 일인데 엄한 우리 집을 두드려 나의 아침 잠을 깨우면서까지 묻는 것인지 순간 화가 났다.


나는 그 집에 대해, 거기 사는 사람에 대해 아는 게 없다고 친절하지 않게 말했다.

그러는 당신은 누군데 그 집에 대해 묻냐고 퉁명스럽게 질문했다.


그녀는 자신이 법원에서 나왔다며 신분증을 보여주면서 건너편 사는 사람에게 법원 출석을 명령하는 레터를 보냈는데 아무런 답장이 없어 자신이 직접 서류를 들고 왔다고 설명했다.

순간 그 앞집 남자가 범죄자일지 모른다는 사실에 잠이 깼다. 어차피 이곳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잘 말해주지 않으니까 그녀에게 더 자세한 것은 물어보지는 않았다.

특별히 범법자라면 말이다.

문을 닫고 돌아서려는데, 관리인이 사는 곳이 어디인지 알려달라고 한다. 나는 그냥 잠옷차림으로 슬리퍼를 주섬주섬 신고는 관리인 아파트로 안내해 주었다.


아침부터 이 무슨 황당한 일이람!

선잠을 잔 탓인지 아직 잠에서 깨지 못하고 꿈을 꾸는 듯 몽롱해서 이 무례한 여인에게 화를 낼 여력도 없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건너편 이웃집에 사람사는 기척이 없은지도 거의 반년이 되었다는 사실과, 문고리에 거이 한 달 동안 하얀색 서류봉투가 걸려있었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대부분의 서류나 우편물은 개인 우체통으로 전달되는데 말이다. 사실 건너편 집이 오랫동안 집을 비우는 일이 잦다는 것 외에는 딱히 아는 게 없는 것 같다.



나중에 관리인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리가 이사 오기 전부터 건너편집 사람들이 우리 집을 눈독 들이고 관리인에게 부탁을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관리인은 우리에게 인심을 쓰듯 우선권을 준 것은 우리에 대한 배려라기보다는 새로운 입주자가 자신을 통해 계약을 하게 되면 아파트 회사로부터 커미션(commission)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이 집을 내놓은 것이다.

지금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 아파트는 현재 입주자가 다른 사람에게 집을 소개해서 계약을 하게 되면, 소개비용 명목으로 200불 정도의 금액을 커미션으로 주는 시스템이 있었다.


여하튼 그들의 노력인지 아니면 관리인과 그들만의 모종의 거래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건너편 사람들은 우리가 이사한 지 8개월 만에 이사를 들어왔다.


그들이 이사 온 이후로 밤마다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가끔은 아는 멜로디도 들렸는데, 한동안은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가 서툴게 연주되었다.

공포 영화는 아닌데, 패치 아담스에서 긴장감 넘치는 장면에 엘리제를 위하여가 나왔던 것이 아주 인상 깊었던 터라 살인장면이 연상되면서 밤마다 들리는 이 멜로디에 묘하게 공포감이 느껴졌다.

아마도 10대 소녀인 그 집 딸이 피아노 레슨을 받는 것은 아닌가 짐작을 해 본다.

한 번은 문 밖에서 여자 아이들의 소리로 너무 시끄러워 문을 열어보았더니 10대 소녀 3명이서 어찌나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고 있던지.. 그 나이에는 친구들과의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을 나이이지. 높은 지붕 탓인지 빈 공간에 소녀들의 이야기 소리와 웃음소리가 공명이 되어 더 크게 들렸던 것 같다.

나는 좀 조용히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그 집 아이가 열쇠가 없어서 집에 못 들어가고 있다고 미안하다며, 친구들을 데리고 계단 밑으로 내려가 버렸다. 졸지에 내가 아이들을 쫓아낸 모양새가 되었다. 나는 그러려고 한 게 아닌데 말이다.


가끔씩 그 집에 인기척이 날 때면, 아파트 앞에 플로리다 번호판을 단 파란색 벤츠 오픈카가 주차되어 있다.

우리 아파트 앞 길거리 주차는 오후 2:30부터 6:30 까지는 버스 전용차선으로 변경되어 주차를 할 수 없다. 항상 그 시간이 되면 차주들은 차를 옮겨야 하는데 나도 차를 다른 곳으로 옮기려 나왔다가 그 차 주인이 건너편 남자의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건너편 집 여자는 목소리가 아주 큰 호탕한 전형적인 미국 아줌마이다. 그 아줌마 하고는 딱 한번 마주쳐 잠깐 대화를 나눈 것이 끝이다. 미국 남부의 억양이 살짝 묻어나기는 하지만, 아줌마의 영어는 프렌치 악센트가 섞인 퀘벡사람들과는 다르게 오랜만에 들어보는 원어민발음으로 내 귀에 딱딱 꽂히는 느낌이었다.



그날 -파란 눈의 법원 여성이 다녀간- 이후로도 그 하얀색 편지 봉투는 한 동안 문에 걸려 있었는데, 파란색 벤츠가 아파트 앞에 주차되어 있는 게 눈에 띈다. 건너편 가족들이 돌아온 모양이다.

또다시 사람들의 소리가 한 이틀 들렸다 사라졌다.

이들은 또 어디로 간 것일까?

참 수상한 가족이다.


나만의 짐작이긴 하지만, 이들은 플로리다에 집을 두고 여기는 비즈니스나 또 다른 이유로 세컨드홈( Sencond Home)으로 사용하는 것은 아닐까 유추해 본다. 아님 그 반대의 경우이던가.

퀘벡 사람들 중에는 캐나다의 긴 겨울 동안이나, 긴 겨울이 지루해질 때인 2월쯤에 추위를 피해 미국플로리다로 여행을 많이 간다.

마음만 먹으면, 차로도 이동이 가능한 거리이니 많은 사람이 플로리다로 철새처럼 겨울이동을 한다.


오후 산책길에 산끝자락에서 기러기들의 울음소리와 함께 파란 하늘에 브이자( V)를 그리며 캐나다 기스들이 (Canada geese) 무리를 지어나 날아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기러기들이 남쪽을 향하는 것을 보니 곧 겨울이 오려나보다.

건너편집 사람들도 그들만의 또 다른 둥지인 남쪽 플로리다로 떠난 듯하다.

굳게 닫힌 건너편집 문이 오늘은 내게 쓸쓸함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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