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Epiosde 12] — 아파트에는 13호가 없다
쿵쿵쿵!!!
묵직하고도 성급하게 누군가 우리 집 아파트 문을 두드린다.
관리인이 가끔 찾아오는 것 외에 우리 집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조심스레 문을 열어보니 우버잇츠(Uber eats- 한국의 배달의 민족 혹은 쿠팡잇츠) 배달원이 음식이 든 갈색 봉투를 들고 혹시 11호가 어딘지 아냐고 물었다.
"글쎄요?"
아마존 딜리버리 하시는 분들도 아파트 로비까지 호기롭게 들어오지만, 패키지에 쓰여 있는 호실을 찾지 못해서 우왕좌왕하며 내게 묻는 일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11호가 어디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동안은 아파트 호수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요즘은 자꾸 우리 집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생기다 보니 자세히 살펴보게 되었다.
당연히 아래층에는 우리 집보다 낮은 숫자가 적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려가서 살펴보니 뜬금없는 33호 34호 번호가 걸려있다.
이 건물이 원래 이렇게 뒤죽박죽이었나?
빌딩 중문에 있는 인터폰도 숫자도 아파트 호실이 아닌 랜덤 한 숫자들이 붙어있었다.
아마도 개인의 안전을 위해서 그런 것 같다.
이웃집은 14호다.
그러면 13호는 어디지?
위층으로 올라가 보니 더 큰 숫자들이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다.
우리 아파트에는 왜 13호는 없지?
북미나 유럽의 대부분의 건물에는 13층이나, 13호가 없다.
미국 아파트나 고층 건물에 13층이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미신(superstition) 때문이다.
동양이 4자를 꺼려하는 것처럼, 웨스턴 문화는 13이라는 숫자를 꺼려한다.
13이라는 숫자가 불운을 가져온다는 '트리스카이데카포비아(Triskaidekaphobia)'라는 문화적 믿음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다.
트리스카이데카포비아의 뿌리를 명확히 추적하기는 어렵지만, 여러 역사적 및 신화적 출처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겠다. 대표적인 이론 중 하나는 종교적 이야기와 관련이 있는데,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의 제자의 한 사람인 유다 이스카리옷은 열세 번째 손님이었으며,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배신했다. 이러한 배신과 불운의 연관성은 기독교 사회에 깊이 스며들어 숫자 13이 불운을 가져온다는 인식을 퍼뜨렸다. 고대 문명도 이 숫자의 불길한 평판이 있다. 북유럽 신화에서는 장난의 신 로키가 발할라의 연회에서 열세 번째 손님으로 등장해 혼란과 비극을 일으켰다.
완전함을 상징하는 숫자 12(12개월, 12 별자리, 12 사도 등) 다음에 오는 13은 과잉과 혼란을 의미하며, 그 부정적인 의미를 더욱 강화했다.
트리스카이데카포비아의 영향은 일상생활과 건축 환경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데, 많은 건물, 특히 호텔과 사무실 건물은 13층을 생략하고 12층 다음에 14층으로 건너뛴다. 항공사도 좌석 배치에서 13번 줄을 제외하거나, 일부 거리 주소에서 13번을 건너뛰기도 한다. 이러한 관행은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이 미신이 얼마나 널리 퍼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건축가나 개발자들은 이러한 미신이 부동산 시장에서 13층에 사는 것을 꺼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또, 13층의 아파트나 사무실은 임대나 판매가 어려워질 수 있고, 13층의 가치가 다른 층보다 낮게 평가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13층이나 13호를 표시하지 않는다.
호텔의 경우, 고객들이 13층 객실을 배정받는 것을 불편해하거나 심지어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문화적 미신으로 인해 많은 건물주와 개발자들은 엘리베이터 버튼에서 13층을 아예 건너뛰고 12층 바로 다음을 14층으로 표기하는 방식을 택한다.
물론, 물리적으로 13번째 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12층 위에는 엄연히 13번째 층이 존재하지만, 번호만 14층으로 바뀐 것이다. 일부 건물에서는 13층을 기계실이나 창고 등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공간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관습은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등 서양 문화권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으며, 일부 아시아 국가에서는 '4'라는 숫자가 죽음(四, 사)과 발음이 비슷하여 4층을 생략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 사례로 유명한 공포 영화 '13일의 금요일(Friday the 13th)' 시리즈는 이 미신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또한, 스티븐 킹의 소설 '1408'은 호텔의 1408호(숫자를 합하면 13이 됨)에서 벌어지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다루며 이러한 미신을 소재로 활용했다.
'13일의 금요일'은 13이라는 숫자가 가진 가장 대표적인 미신이며, 이 날에 벌어지는 불운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유럽이나, 북미의 어떤 사람들은 13일의 금요일에는 중요한 계약을 피하거나 여행을 가지 않고, 검은 고양이나 깨진 거울을 조심해야 한다는 등의 미신을 믿는다.
13층이다 혹은 14층이다 하여 논란이 있어 정확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밴쿠버의 '페어몬트 호텔 밴쿠버(Fairmont Hotel Vancouver)'에 나오는 "빨간 옷의 숙녀(The Lady in Red)"에 대한 이야기는 호텔에 얽힌 가장 유명한 유령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사교계 명사인 제니 펄 콕스(Jennie Pearl Cox)는 1940년대에 페어몬트 호텔 밴쿠버에서 열리는 무도회에 자주 참석했던 단골손님이었다. 그러나 1944년, 그녀는 스탠리 파크 근처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된다.
그 후, 호텔 직원들과 투숙객들은 빨간 드레스를 입은 한 여성이 14층 복도를 거닐거나, 14층에 있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모습을 종종 목격했다고 전해진다. 심지어 그녀가 벽을 통과하거나 갑자기 사라지는 것을 봤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유령은 악의를 가지고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우아하고 상냥한 유령으로 알려져 있으며, 마치 죽어서도 자신이 좋아했던 호텔에 머무르며 그 시절의 화려함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호텔 측은 이 이야기를 공식적으로 부인하지 않고, 오히려 이 전설을 마케팅에 활용하여 "빨간 옷의 숙녀"라는 이름의 칵테일을 판매하기도 했다. 이 이야기는 밴쿠버의 '유령 투어'의 주요 코스 중 하나가 될 정도로 유명하다.
앞서 설명했듯이, 13층이 불길하다고 여겨져, 이 호텔 역시 13층을 건너뛰고 14층으로 표기했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호텔 표기상으로는 14층으로 불리운 것이지만, 유령이 실제로 나타나는 층은 13번째 층이다,
트리스카이데카포비아는 단순한 미신을 넘어, 역사적 사건, 심리적 요인, 문화적 전통이 복합적으로 얽힌 현상이다. 이러한 이야기와 미신이 현대 사회에서 공포를 조장하며 지속되는 것은, 집단적 믿음이 행동과 의사결정에 얼마나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예다. 숫자 13을 불운하게 여기든 단순한 숫자로 보든, 트리스카이데카포비아는 인간이 패턴을 찾고 의미를 부여하며 불확실성을 극복하려는 경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전히 많은 건물과 사람들이 13층을 생략하거나 불길하게 여기는 문화적 현상은 이성과는 별개로 뿌리 깊은 문화적 공포가 되었음을 표현하고 있다.
우리 아파트에도 13호가 없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이 글을 쓰는데 왜 서늘한 느낌이 드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