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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y View Today

내가 틀렸을 수도!

Maybe I was wrong

by 코리디언

내가 틀렸었네! I was wrong

갈등은 인간관계에서 피할 수 없는 요소라고 생각하며, 그 갈등은 ‘내가 옳고 네가 틀리다는 생각’에서 발생된다. 서로 다른 생각, 감정, 기대가 부딪히는 순간, 우리는 종종 방어적이 되고,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려 한다. 그러나 때로는 단 한마디 “내가 틀렸어”가 갈등의 흐름을 바꾸고, 상처를 치유하며, 관계를 회복하는 놀라운 전환점이 되는 것 같다. 또 갈등 속에서 “내가 틀렸어”라고 말하는 순간,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그 이면의 감정과 동기를 성찰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개인 성장의 길이 된다. 또한 자신이 오랫동안 믿어왔던 신념에 대해 객관적인 질문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너무나 단순한 일에서 비롯되었다.


9월 말쯤 마음 맞는 몇 명의 친구들과 새 학기를 잘해보자라는 의미로 작은 리트리트(Retreat)를 갔다. 나는 영국에서 공부를 하고 온 K와 주방에서 2박 3일 동안에 우리 크루( Crew)들의 음식을 담당했다.

주방에서는 음식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음식보관 및 식기세척과 정리도 포함되어 있다.

식사를 마치고 주방에 있는 식기세척기를 사용하여 설거지를 하려고 했으나, 식기세척기가 고장이 나 있었다. 할 수 없이 직접 손설거지를 해야 하는데, 우리 둘의 방식이 조금 달랐다.

K는 커다란 통에 물을 가득 받아서 세제를 조금 풀어서 모든 식기들을 담그고 하나씩 꺼내어 헹굼을 하고, 건조대에 올렸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초창기 유학시절이 떠 올랐다.

같은 클래스에 남편은 영국출신이었고, 아내 되는 친구는 헝가리출신인 동년배의 한 커플이 주말에 우리 가족을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식사를 마치고 뒷정리를 도와주기 위해 주방으로 들어갔다가

그들의 설거지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음식물 찌꺼기가 남아있는 접시를 포크로 싹싹 긁어내고는 세제를 풀어놓은 커다란 통에 접시를 그냥 담갔다가 꺼내서 건조대에 올려놓고는 설거지를 끝냈다.

내 머릿속에서는 이들의 설거지 방법이 비위생적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왜 이들은 설거지를 이렇게 하는 것일까? 아마도 물 아끼는 유럽이라 이런 방법을 선택한 것이리라 짐작했다.

K도 영국에서 어려서부터 자랐기 때문에 그런 생활방식에 익숙해져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그 때 영국부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나의 설거지 방법에 대해 물었다.


“나?

식기를 물에 틀어놓고 하나씩 스펀지에 직접 세제 묻혀 씻고 헹굼을 하는 방식이지.”


물 낭비가 크고, 손이 세제에 자주 닿아 피부 트러블이 생기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간편하고 빠르고 위생적이라 생각해서 나는 거의 평생을 이런 방법으로 설거지를 해왔다.

K와 내가 설거지에 대한 토론을 하고 있으니, 다른 친구들이 하나둘씩 주방에 들어왔다가 우리의 대화에 참여하게 되었다.

중국에서 유학생활을 했던 친구가 진지하게 우리의 이야기에 동참하면서, 나의 설거지 방법은 잔여세제가 많아 건강을 해 칠 수도 있다고 했다.

“정말?”

그리고는 주방세제병을 들고는 깨알같이 쓰여 있는 주방세제 사용법과 경고문을 읽어주었다.



대부분 기름진 음식이 많은 중국에서는 뜨거운 물로 기름기를 제거한 후 세제를 넉넉히 사용하고, 2~3회 헹굼 하는 방식으로 한단다. 특히 남부 지역에서는 식기 소독기(건조 살균기) 사용이 흔하고, 일부 농촌 지역에서는 여전히 냄비나 그릇을 밖에서 세척한다고 한다.


위생, 효율, 환경 측면에서 설거지 방식은 다양하게 나눌 수 있다. 또 문화, 물 절약 의식, 주거 형태, 기후, 세제 습관 등에 따라 나라별 설거지 방식은 꽤 달라진다.


예를 들어, 식기 대부분이 쉽게 세척 가능한 스테인리스나 금속제를 쓰는 인도에서는 손 설거지를 주로 하는데, 흙, 재(ash), 레몬, 식초와 같은 천연 세제를 사용하고 있다. 아프리카와 중동 일부 지역에서도 재나 모래의 입자가 기름을 흡착하고, 연마작용으로 그릇의 오염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설거지를 한다. 베두인족(사막 유목민) 은 모래로 찻잔을 닦는다고 한다.

물이 귀한 유목지대인 몽골, 중앙아시아 일부에서 그릇을 불 위에 잠시 올려놓거나 연기에 쬐어 살균하는 전통방식으로 설거지를 하는데, 그릇이 손상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고온으로 세균을 제거하고 냄새도 사라지고, 물이 부족한 지역에서 물이 전혀 필요 없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뿐 아니라, 동남아 지역에서는 바나나 잎으로, 북극에서는 눈으로, 아프리카에서는 그냥 햇빛에 말리는 방식으로 설거지를 한다.


이쯤에서 이 글의 주제는 설거지 방식에 대한 글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키고 싶다.


설거지는 단순한 예이지만, 우리 행동 안에는 습관과 고집, 그리고 자신만의 세계관이 숨어 있다.

내가 익숙한 방식만 고집한다면, 더 나은 방법은 영영 내 것이 되지 못한다.

나는 오랫동안 나와 다른 방식의 설거지를 하는 친구를 비위생적인 설거지 방법이라고 단정하며 살았다. 하지만 K와 설거지 토론 후에는 '내가 맞나? 혹은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작은 의심을 해보며 나를 더 유연하게 만들고, 더 배우게 한다.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은, 틀림없이 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으며, 이 말은 나를 더 겸손하게, 더 성숙하게, 더 인간답게 만들어 줄 것이라 믿는다.

K가 깨끗하게 닦아 건조대위에 올려놓았던 그릇들이 물기가 마르고 있다.

설거지 방식으로 인해 또 다른 관계 맺음의 지혜를 터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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