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가는 길
한 여름 주말오후 무료하다.
이번 주말에는 아이들이 다 집을 떠나 있어 식사준비를 좀 단출하게 해도 될 것 같다.
남편은 또 서재에 들어가 책 보고 글 쓰고…
나는 무료함을 해소하기 위해 저녁거리 장 보러 간다는 핑계를 삼아 집을 나섰다.
오후 5시가 되어도 낮이 긴 여름의 햇살은 여전히 따갑다.
선글라스 끼고 반바지 입고, 운동화 신고 편하게 빈 배낭을 메고, 잔돈지갑도 두둑히 챙겨 시장에 간다.
‘시장 가면 순대도 있고, 떡볶이도 있고, 생선도 있고.. ㅇㅇ도있고, 뭐도 있고… ‘끝없는 말잇기게임이 머릿속에 떠 오른다.
집에서 내 걸음으로 30분 남짓 걸어가야 하는 꼬데네지 시장(Marché cote des neiges)은 한국으로 말하면 상설재래시장이다. 눈이 녹고 봄이 오는 4월쯤 시작해서는 10월 말이나 11월 초쯤 눈이 내리기 전까지 장사를 하는 마을의 작은 재래시장이다.
일종의 파머 마켓(Farmer Market)처럼 퀘벡에서 나는 과일과 채소, 그리고 꽃들과 허브들, 메이플시럽과 꿀까지 판매하는 곳이다.
가격도 저렴한 편이라 아무 생각 없이 장바구니를 채우다 보면 예상치 못한 가격에 놀라기도 한다. 여기서는 신용카드는 받지 않는다. 현금과 체크카드( Debit Card)만 사용할 수 있다.
오늘 나의 장바위에는 옥수수 5개에 $2.99, 상추 한 다발 $1.77, 호박 4개 $2.43, 배 한 바구니 $5 이 담겼다.
우리 집에서 시장까지 가는 길에는 The Royal Canadian Hussars Montreal라는 군부대가 있다. 나도 사실 이 군부대가 무엇을 하는지는 자세히 모른다.
한 번은 아주 오래된 레이저 프린터를 지인으로부터 받았다. 그래서 시중에서는 토너를 살 수가 없어서 HP 본사에 연락을 해서 토너를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후 이 부대에서 연락이 왔다. 어리둥절해서 무슨 일이냐고 했더니 내가 주문한 토너가 우리 집 대신 그 부대에 도착했다고 친절하게 연락을 주신 거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궁시렁대며 집에서 5분 거리의 부대에 도착해서 정문을 두드리니 정복을 한 군인이 문을 열어 주었는데 부대 분위가 삼엄하게 느껴져서 그런지 나는 쪼금 쫄았다.
전화를 걸어준 사람이 다행히 나와서 내 대신 설명을 해 주어서 토너를 찾아 집에 돌아온 적이 있다.
요즘은 부대 앞길까지 새롭게 공사를 해서 비가 와도 질퍽거리지 않아 좋다.
새로운 보도 블록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시에서 운영하는 시립 공동묘지가 나온다.
처음 캐나다 작은 마을들을 여행할 때 한국에는 공동묘지가 한적한 지역에 따로 지정되어 있어 도심에서는 보기 어려운 반면 캐나다에서는 동네 어귀에는 항상 공동묘지가 있는 것을 보면서 이곳 사람들은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느낌을 받았다. 큰길에 떡 하니 서 있는 공동묘지는 거부감 없이 그저 주민들이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곳이고, 넓은 잔디는 사람들에게 피크닉과 쉼을 내어주고 있다.
한국에는 망자들의 얼굴을 가릴 뿐 아니라 몸을 꽁꽁 싸매어 습의(襲衣) (장례 과정에서 염과 습을 할 때 입히는 옷)을 입히지만, 이곳에서는 망자의 얼굴에 화장을 해주고 평소에 즐겨 입은 옷이나, 가장 좋아하는 옷을 입혀 최대한 살아있을 때의 모습을 재현해서 관에 뉘어놓는다.
그런 의미에서 삶과 죽음을 완전히 단절시킨 것 같은 한국의 장례문화와는 다르게 이곳 사람들은 죽음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느낌이다.
묘지의 비석들이 쭈~욱 늘어서있는 담장길에는 한쪽에 아름드리나무들이 줄지어 아치형으로 펼쳐져있어 길가는 사람들의 그늘막이 되어주어 따가운 여름햇빛을 가려준다. 그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꼬떼네지 공원(Cote des Neiges Park)이 나온다.
côté 는 영어로 sideway, side, edge...등등 여러개의 뜻이 있다. 그 중에는 언덕 이라는 뜻이 있고, Neiges 는 Snow란 뜻이다. 이를 합해보면 '눈들의 언덕' 이라 표현할 수 있겠다.
눈들의 언덕 공원 (côté des Neiges Park) -너무 낭만적인 이름이 아닌가!
36도의 기온의 더운 날씨에 아이들의 놀이터에는 물놀이를 할 수 있도록 시설을 갖추어놓아 공중으로 퍼져오는 물보라가 여름 한낮을 더욱 청량게 만든다. 보기만 해도 더위가 가시는 것 같다.
이 지역은 저소득층의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해서 집집마다 에어컨이 설치되어있지 않은 곳이 많아서 공원에 나와 더위를 식히는 사람들이 많고, 시에서는 이런 취약계층들이 더위로 험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차도를 막아 더위 쉼터를 마련해 놓아 주민들이 쉴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모든 연령의 계층들이 이 공원을 즐길 수 있도록 구성해 놓았으며, 다른 공원과 다른 점은 무료 WiFi까지 설치해 두어 집에 인터넷 설치가 안 되는 사람들까지도 배려해 주었다는 점이다.
해마다 이곳에는 상설 아트전시회를 한다. 길에 작품들을 전시해 놓고 주민들에게 문화적인 혜택도 제공한다.
le marché는 시장이란 뜻을 포함하며, 영어로 Market이다. 또 다른 Marche가 있는데 이는 Marcher 걷다 라는 동사의 1인칭 동사 변화이다. Je marche(나는 걷는다)
나는 이 시장이라는 명사와 걷다는 동사를 외울 때 둘의 연관성을 두고 외웠다. 시장은 걸어 다니는 곳 ( le marché = marche).
오랜만에 꼬데네지 시장을 걸어갔다 오면서 불어도 복습하면서 일상에서 무심히 지나친 곳들을 좀 더 자세히 들여보게 되었다.
돌아오는 길, 뉘엿뉘엿 넘어가는 석양으로 인해 늘씬하게 길어진 나의 그림자. 그런 그림자놀이에 한뼘쯤 키가 커졌음 하는 소원을 풀었다.
길 옆 풀숲사이로 풀벌레 소리가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여름이 너무 깊이 익어 벌써 가을이 오려는 건가? 귀뚜라미 소리는 아닌 거지? 혼잣말을 스스로에게 건네며 집으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