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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오 Aug 07. 2023

무지개가 있는 하늘

古汗


옛 고, 을 한


내가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내가 살던 고한은 흑룡강(원래 지장천이지만, 아무도 그렇게 부르지 않았다.)이 흐르고, 검은 석탄가루 날리던 탄광촌이었다. 산골짜기 v자 계곡의 마을로 늦게 해가 뜨고, 빨리 해가 졌다. 겨울은 왜 그렇게 지,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어린이날에도 눈이 내다. 킬리만자로 만년설도 아닌데, 1년의 반은 눈이 쌓인 곳이 있고, 눈은 왜 그렇게 많이 내리는지 어디를 갈 수 없는 지경이니, 집에서 감자나 구워 먹고, 눈썰매, 눈싸움, 얼음집 만들기가 고작이었다. 난 그곳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스무 해를 꼬박 살고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문득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 누가 무지개의 색깔을 이런 나열로 만들었을까 궁금해질 때가 있었다. 요즘같이 숨이 가쁘게만 돌아가는 세상에 할 일이 그렇게 없느냐는 핀잔을 들을 수도 있다. 지금까지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무지개를 보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모여 놀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하나둘 집으로 돌아가던 그 시간에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에서 무지개를 본기억이 있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하나의 무지개가 짧게 있고 그 위쪽에 비스듬히 약간 흐릿하게 또 하나의 무지개가 있었다. 흔히 쌍무지개라 부르기도 하는 걸. 어린 나이여서 그랬는지 하늘에 그런 예쁜 색깔이 있다는 자체가 신기해서 마냥 쳐다보았다. 무지개맨눈으로 식별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게 존재하지 않는다. 몇 분쯤 머물러 있는 게 고작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읽어 보았을 법한 동화가 있다. 무지개 끝에 황금단지가 묻혀있다는 동화 말이다. 어릴 때 보았던 쌍무지개엔 끝이 따로 없었다. 두 개가 허공에 약간의 타원 모습만을 그린 채 있다가 아쉽게도 몇 분 후에 흔적 없이 사라졌던. 그래도 그때는 흔치 않은 걸 봤다는 자체만으로도 마냥 행복했고, 아무것도 아니지만, 자랑하고 다녔다. 그 후로 몇 년에 한 번씩 볼 수 있었지만 처음 보았을 때의 느낌은 아니었다.


다른 기억으로, 여름을 알리는 비가 잦았던 어느 날, 비 온 후의 잿빛 하늘에서 무지개를 보았다. 얼마 만인지 예쁘다는 마음과 함께 반가운 마음부터 들었다. 길지 않은 시간을 또 그렇게 바라보았다. 여전히 자연이 만들어낸 그것은 충분히 아름다울 자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미 내겐 어릴 때의 설렘은 없어져 버린 지 오래여서 큰 감흥없는 나를 보게 되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고 했다. 사람을 사귀면 그 사람이 어떤 꽃을 좋아하는지,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궁금한 것이 아니라 나이가 몇인지, 재산은 얼만큼인지, 사는 집의 평수가 얼마나 되는지만 궁금해한다고 했다. 친구와의 헤어짐이 슬퍼 울음을 터트린 어린 왕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던 때가 내게도 있었던가 싶다.


어린 왕자가 바라본 어른들처럼 나도 숫자로 따지기를 좋아하고, 내게 맞게 계산하기에만 바쁘지 않은지 되돌아본다. 잃어버리고 지냈던 순수함이 문득 그리워 창문을 열어본다. 비가 한바탕 내릴 것 같은 밤하늘은 잔뜩 흐려 있고, 밤새 짝을 찾는 새소리, 어미를 찾는 듯 괴음을 내는 고라니 울음소리가 들린다. 내가 이기적으로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의 순수했던 마음들이 가려져 타인과의 관계에 어떤 기준을 들이대고, 그 기준에 끼워서 맞추기 시작했고 보이지 않는 마음의 중요성을 잊고 지내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보다는 내 입장을 먼저 생각했고, 내게 피해가 되는 일은 꺼리고, 다른 사람 때문에 손해를 보게 되면 그 사람을 미워하기도 했다.


무지개의 여러 색은 세상의 다양함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다양성이 아름다운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모른다. 여름이면 어김없이 들리는 새와 풀벌레 소리에 귀를 기울여 자연을 느끼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하는 것인지 모른다. 처음 무지개를 보았을 때의 그 설렘과 행복, 숫자로 따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한 번이라도 더 가져보려는 마음이 그립다.


최근 공익적 마음이 전혀 없는 지도자와 그 친인척들은 자신들의 일임에도 남의 일인 듯. 자연의 아름다움, 무지개의 찬란함, 땅의 안정감과 소중함, 시민들의 편리함을 위한 것이 아닌, 내가 가진 것들의 가치를 더 높게 하기 위해서 공공성을 무너뜨리는 어마어마한 계산기를 들이밀면서 내 것이 옳다고. 너희들은 틀렸다고 말하고 있다. 어릴 적 고향을 벗어나고 싶었던 그 마음처럼 이 혼란한 시기를 벗어나고픈 마음이다. ·


그래도 이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무지개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때문이다.


* 이 글은 다른 곳에 실린 글을 깁고 다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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