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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PD의 잡학다식 Aug 26. 2021

맛집의 발견

봉평 막국수, 강원도의 힘

 강원도 평창, 해발 700미터

 시원을 넘어 서늘함을 느낄 만큼 제대로 피서한다.


 메밀과 감자의 고향, 봉평. 막국수집이 여럿 늘어서 있지만 눈과 마음이 가는 간판이 들어온다.

'봉평 막국수'

 前 직업 특성상 10년 넘게 지방 출장을 자주 다녔고, 입맛 까다롭고, (맛에 관한한 거의 신경질적이기까지 한) 선배, 상사 PD들을 여럿 모셨으며 농산물, 음식 관련 프로그램을 여러 해 한 경험으로 어느새 나도 모르게 '나만의' 좋은 식당, 잘 하는 집 감별하는 기준이 생겼다. 여러 집이 있지만 어느 집이 잘 하는지 '느낌'이 오고, 90% 이상 들어맞는다.

 

 첫째, 식당 이름, 간판 디자인을 본다.  폰트, 색감, 작명에서 주인의 안목과 감각, 나아가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새로 생긴 집 보다는 연륜 있는 곳을 선택한다. 화려하지만 어쩐지 촌스럽고, 부조화한 집은 가지 않는다. 수수하지만, 단정하고 세월이 느껴지는 집이 좋다.


 둘째, 실내를 살핀다. 공간은 사는 사람의 기운과 정서를 풍기기 마련이다. 어쩐지 차갑고 냉랭한 집이 있고, 소박하지만 따뜻하고, 정겨운 느낌이 드는 집이 있다.


 셋째, 메뉴가 많고, 서로 연관성이 없는 집은 피한다. 이것도 잘 하고, 저것도 잘 한다는 집은 결국 아무 것도 제대로 못할 확률이 높다.


 넷째,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군 단위 이하 동네로 가서 시간 여유가 있으면 장독대를 본다. 장독의 크기가 다양하고, 수가 많으면 내력이 오래된 집이다. 그리고, 맛에 대한 그집만의 고집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다섯째, 밥맛 좋은 집이 좋은 식당이다. 한식은 밥이 맛 있으면 반은 먹고 들어간다. 밥맛이 좋으려면 우선 좋은 쌀을 써야 한다. 완전미 비율이 높은 그 지역 대표쌀을 사다가 자주 밥을 해야 하는데 쌀값이 일반미에 비해 두 배에서 서너 배 비싸다. 꼭 완전미가 아니라 해도 도정한 지 일주일 이내의  쌀을 써서 물배합을 잘 해 고슬고슬하고 기름지도록 밥을 하는 식당은 내력 있는 집임에 틀림 없다. 한가할 때 밥을 많이 해서 온장고에 '쟁여 놓고' 꺼내주는 식당이 많고, 간혹, 옆집에서 공기밥을 빌려오는 곳도 있는데 이런 집은 분식집 수준을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쌀과 밥은 '음식업'에서 프로페셔널을 가늠할 수 있는 기본이자 첫째 기준이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 식당에 가면 그집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을 본다. 주인과 종업원, 종업원과 종업원이 주고 받는 눈빛과 말씨, 서로에 대한 태도를 살피는 것이다. 종업원이 주인과 따뜻한 말과 웃음을 주고 받는 집이면 더 볼 것 없이 훌륭하다. 큰 소리로 종업원을 나무라거나 종업원끼리 대화 없이 자기 일만 하는 집은 뭔가 불합리하고 부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에 틀림 없다. 화난 얼굴로 불편한 마음으로 음식을 만들었다고 생각해 보라. 끔찍한 일이다.

 나는 자신감 있고, 밝은 표정으로 자기 재량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일하는 집이 좋다. 때로 너무 잘 되는 나머지 손님을 무시하거나 수용 능력을 넘어 무리하게 손님을 받는 바람에 많이 기다리게 하고, 빨리 먹고 나가도록 눈치 주는 집은 싫다. 그건 맛집이 아니라 그냥  '밥집'일 뿐이다.

 

'봉평막국수'는 아마도 2세가 물려받은 모양이다. 안주인이 젊다. 감자전과 메밀부침을 시켰다. 김치와 부추만 넣은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메인 메뉴 막국수는 담백하고, 입에 착 붙는 게 아주 개운하다. 어른 둘이 먹어도 부족함 없을 만큼 후한 양..전 두 접시, 동동주 한 동이, 막국수 도합 2만원. 착하다! 젊은 주인장의 인심도 기억할 만 하다.


 밖으로 나오니 기분 좋은 바람과 시골에서만 만날 수 있는 칠흑같은 어둠이 신비롭다. 달이 뜨면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 봉평의 밤얼굴이 드러나겠지?  ‘봉평막국수'집의 메밀국수 끝맛처럼 개운하고, 시원한 밤이다. (2010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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