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레오네의 수필집 #016
하늘에서 오는 여러 빛이 있다.
햇볕이나 달빛, 별빛이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은 이런 "하늘에서 오는 빛"을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 이런 하늘의 빛을 싫어하는 사람을 본 적은 없다. 그게 여름날의 강렬한 뙤약볕이 아닌 이상은 적어도 그렇다. 모두가 햇살을 좋아하고 노을빛을 좋아한다. 달빛이 은은하게 비치는 밤풍경을 즐기거나 별빛이 쏟아지는 밤하늘에 감동을 받는다.
그리고 또 하나, 지구상 일부 지역에서 드물게 볼 수 있는, 오로라가 있다.
운이 좋게 오로라를 감상했던 그 기억을 떠올려보려 한다.
오로라가 최우선 순위는 아니었지만, 오로라도 볼 수 있을 기대를 조금은 하며 아이슬란드로 여행을 갔다. 기대를 하면 실망도 커지기에, 운에 맡겨야 하는 오로라를 절대 최우선 순위에 두지 않았다. 자칫 오로라를 보지 못한다면, 여행의 목적이 달성되지 못하는 불상사를 초래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오로라를 보고 싶은 마음도 당연히 있었기에 적당히 백야가 아닌, 밤이 있는 계절로 여행시기를 정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오로라는 오직, 달빛이 적고 구름이 없으며 별이 보일 정도의 날씨에서, 태양풍의 영향으로 내가 있는 위치에 운 좋게 오로라가 떠야, 볼 수 있게 된다. 그야말로 은하수를 보는 것보다 더 확률이 낮으며, 모든 건 운에 맡길 수밖에 없다.
운에 맡겨야지-하면서도 내심 오로라가 뜨진 않을지 매일 저녁 기대했다. 그러다가 피곤해서 누웠다가 잠에 들었다가, 오로라가 뜨진 않았을지 오로라 어플을 확인하면서 문득문득 잠에서 깨어나고, 창밖을 바라보며 오로라가 보이진 않은지 자꾸만 문을 열어보았다.
밤잠 설치며 네 번째 즘 문을 열어보았던가, 밤하늘에 구름도 아닌 것이, 뿌연 띠가 있는 것을 보았다. 혹시나 오로라는 아닐까 사진을 찍어보니, 세상에, 선명한 초록빛이 찍히는게 오로라가 맞았다. (실제로 오로라는 육안으로 색이 선명하지 않다. 오로라인가 애매하면 사진을 찍어보아야만 그 정체를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같이 여행을 떠난 친구들을 급하게 깨우는데, 우리 숙소 옆에 묶던 어떤 (미국인처럼 보이는) 아저씨가 빨리 불을 끄라면서 다급하게 소리치신다. 숙소 외벽에 조명이 있었고, 불을 끄면 오로라가 보다 선명하게 보일 것임은 분명했다. 나도 끄고 싶은데 당최 스위치가 한두 개도 아니고, 어디서 꺼야 하는지 찾지 못하자, 급한 나머지 옆집 아저씨는 우리 숙소까지 냉큼 들어와서 같이 불을 끄는 곳을 찾는다.
그래, 이게 오로라구나. 구름이 조금 끼어있었지만, 구름 사이로 나오는 빛처럼 보이는 무언가는 바로 오로라가 확실했다. 인생 첫 오로라를 바라보는 순간, 흥분의 감정이 쏟아져내린다. 오로라는 물에 풀어놓은 새하얀 물감처럼 밤하늘을 도화지 삼아 자신만의 모습을 그려나갔다. 강렬하지 않은 오로라였지만 스스로 빛을 내고 있었기에 그 존재감만큼은 확실하다. 마치 구름과 흡사한 모양새이지만, 어둠에 집어삼켜진 구름과 다르게 스스로 그 자리에 있음을 강조한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금세 사라질지도 모를 오로라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어느새 사라지고 어느새 나타난다. 소문으로만 듣던 것을 직접 마주할 때, 언제나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조용히 넋을 놓게 된다.
그리고 며칠 뒤, 또다시 오로라를 볼 확률이 높은 날이었기에, 차를 타고 오로라 헌팅이란 것을 떠났다. 실제로 오로라는 순간적으로 갑자기 뜨기도 하고, 잘 보이다가도 감쪽같이 사라지기도 했다. 국내에서 은하수 헌팅을 하면서, 은하수 보기 참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하지만 밤하늘의 별과 은하수는 자전축에 따라 조금씩 움직일 뿐, 그래도 고정되어 있고 언제나 떠있기에, 오로라에 비하면 정말 보기 쉬웠다는 것을 깨닫는다.
결국 오로라 헌팅으로 이동한 곳에서 오로라는 쉽사리 보이지 않았고, 이만하면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여 숙소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일까. 숙소 바로 위 하늘이 온천지 오로라다. 그냥 구름이 빼곡하게 뒤덮인 하늘인 줄 착각했것만, 순간적으로 일렁이는 모습에 다시 올려다보니, 온 세상이 오로라였다. 그리고 그 오로라는 빛이 무척이나 강렬했기에 스스로 몸을 꼬며 일렁이고 있었다. 오로라보다 더 귀하다는, 댄싱 오로라였다.
오로라가 스스로 일렁이며 움직일 때, 사람들은 그 모습이 춤을 추는 듯하다고 하여 '댄싱 오로라'라고 부른다. 사실 오로라를 볼 수 있을 기대는 하였지만, 댄싱 오로라를 볼 것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다. 그리고 오로라는 내 머리 위를 뒤덮고 한참을 움직이고 있었다. 투명한 물에 새하얀 물감을 흘리는 게 한 줄기의 오로라라면, 댄싱 오로라는 다른 색색의 물감을 (적어도 더러워지기 전까지) 계속해서 떨어뜨릴 때 저마다의 모습으로 물 안에서 모습을 그려나가는 형상과도 같다. 그렇게 오로라는 밤하늘에서 소용돌이를 그리기도 하고, 회전하기도 하며, 실제로 파도가 치는 모습처럼 일렁이기도 한다. 타오르는 불이 규칙 없이 모습을 바꿔가며 나타나고 사라지듯, 마치 밤하늘에 새하얀 모닥불이 피워진 것만 같다. 해변가의 파도나 타오르는 모닥불과 같이 불규칙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눈에 잔상을 남기는, 마치 그 모습들과 흡사해보인다. 목이 아프도록 하늘을 쳐다보았다.
오로라를 보았던 것은 실로 운이 좋았던 것임은 틀림없다. 그리고 일렁이는 오로라는 숨 막힐 정도로 신비롭고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내 인생에서 다시 보기 힘든 풍경인걸 알고 있었기에, 그 순간이 더욱 소중하고 감사했다.
소중한 사람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지평선이 보이는 우유니에서 보았던, 쏟아질 것만 같은 180도 은하수도 무척이나 아름답고 웅장한 자연의 빛이었다. 그보다 더 희소성이 있어서일까. 정말 소중한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바라보고 싶은 풍경임에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다시 오로라를 보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