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레오네의 수필집 #017
배낭여행을 가다 보면 굉장히 다양한 국적의 여행자들을 만나게 된다. 세렝게티 사파리 투어에서도 그러했는데, 캠핑장에 모인 대다수는 사실 유럽 사람들이었고 동양인은 나와 동행 둘 뿐이었다. 서로 알아가고 여행 경험을 듣는 등의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할 무렵, 한국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게 되었다. 네덜란드에서 왔다는, 키가 190은 되어 보이는 남자는 이전에 일본에 오랜 기간 여행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중에 한국도 가보고 싶다는 식으로 얘기를 했고, 동양 문화에 대한 환상이 있는 몇몇 여행자들도 그 말에 공감했다.
그리고 나와 같은 투어그룹이었던, 프랑스 국적의 토마스와 줄리아는 이듬해 한국을 방문했다. 나를 보러 오기 위함은 절대 아니었고, 당시에도 한국이나 일본을 여행할 계획이 있다고 말은 했었다. 반가운 마음에 잠실에서 삼겹살을 먹인 뒤, 다음 일정을 물어보니, 경주와 부산까지 일주일 정도 돌아볼 계획이라고 한다. (역시 아프리카까지 여행한 커플답다) 꽤 오래 그리고 여러 지역을 둘러보는 모습이 신기했는데, 일주일만 여행하기에 짧은 거 아니냐고 하니, 배를 타고 일본으로 넘어가서 3주가량 더 여행을 한다고 한다. 한국은 고작 일주일 남짓, 일본은 3주.
그랬다. 서양인들에게 아시아 문화권을 경험할 수 있는 여러 선택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 일본이 가장 선호되고 궁금해한다. 왜 그럴까?
일본에는 신사, 애니메이션, 장인 정신, 스시, 기모노, 사무라이 등 일본만의 유구한 전통과 문화가 있다. 그들은 여전히 그 문화를 간직하고 키우고 있다. 물론, 한국도 한옥, 한복, 발효음식 등 우리만의 전통과 문화가 있지만, 일본만큼 힘이 강하지 않은 것인지 - 혹은 아직 널리 알려지지 못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외국인들로 하여금 "경험하고 싶은" 힘이 전달되기에 일본보다 많이 약한 느낌이 있다. 실제로 최근에 서울에서도 외국인 여행객들이 꽤 자주 보이곤 하는데, 이들도 K-POP이나 K-드라마, 뷰티산업 등 2000년대 이후 생겨난 콘텐츠를 기반으로 성장된 문화에 불과하다.
그럼 우리는 왜 도시로 여행을 갈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는 어떤 도시에 가서 그 나라만의 문화를 구경하고 체험하고 싶어 한다. 건축, 음식, 제도 등 모든 것은 그 나라만의 라이프스타일로부터 비롯되었으며 반대로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그리고 생활방식이 하나하나 모여 '문화'가 된다. 최근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물론 이전에도 많이 방문했지만- 유럽여행의 새로운 유행이 되어가는 것 같은데, 스페인은 고유한 건축 (이를테면 가우디로 대표되는), 음식 (파에아, 폴포 등), 문화유산이 여행객을 불러오는 큰 자산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스페인만의 고유성은 GDP의 약 15%나 차지하는 경제력을 불러왔다.
그렇다. 결국 우리는, 그 나라만의 독특한 정체성, 고유한 무언가를 기대하고 여행을 가게 되는 것이다. 외국에 가서 굳이 한식을 -그리워서 먹는 것을 제외한다면- 먹지 않는 이유 또한, 한식을 먹는 것은 그 나라를 오롯이 즐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터넷과 SNS가 발달함에 따라 외국문화가 너무 쉽고 빠르게 수용되고, 서로의 문화에 영감을 받아 새로이 탄생되는 것들이 많아지다 보니 우리나라 문화의 고유성을 잃어버리기도 쉬운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근래 젊은 세대 사이에서 약과가 새로 유행하고, 경복궁에는 꾸준히 한복 입은 내외국인이 즐비하고, 파스타에 깻잎을 올린 퓨전 레스토랑도 종종 볼 수 있다. 이처럼 우리만의 고유한 문화를 지키고 이어나가는 것, 혹은 우리의 문화와 외국의 문화를 적절히 융합하여 새로운 문화로 재탄생시키는 것이 필요하고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2010년대 후반부터 핑크뮬리라는 녀석이 SNS에서 유행하더니, 어느새 우리나라 전역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핑크뮬리라는 식물은 북미출신인데 어느 환경에서나 자라기 쉬운 탓에, 그리고 SNS에 유행을 타니 관광지로 뜨는 바람에 너도나도 심게 된 것이다. 심지어 가장 우리의 것이라고 보이는 경주 첨성대 바로 옆에도 핑크뮬리로 도배가 되어 있는 지경이다. 그리고 이 핑크뮬리는 유행이 지나니 이전만큼 많은 사람들이 찾지는 않게 되었다. 한국인 입장에서야 핑크빛이 도는 것이 신기하고 새로운 것이라 많이 찾게 되는 것이지만, 외국인이 과연 한국에 여행 오면서 핑크뮬리를 기대할까? 어쩌면 한국의 자생식물이고 한국의 고유한 꽃을 더 보고 싶어 하진 않을까? 매 순간 유행에 매몰되지 않고, 매화나 산수유, 개나리 등 자생식물을 더 많이 심어 고유성을 지키는 게 더 나은 선택지 인건 아닐까.
우리는 이제 서양 문물이 다 좋고 멋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지난 수 십 년에 걸쳐 학습해 왔다. 이제는 우리나라의 고유성을 지키고 발전시키면서 새로운 대한민국만의 문화를 발전시켜 나가는 방향이 되어야 할 것만 같다.
핑크뮬리는 오직, 한국인만을 위한 꽃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