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을 먹게 되다

꼴레오네의 수필집 #018

by 꼴레오네

내가 몸 담고 있던 육군 어느 보병 부대에서는 반기마다, 아주 날이 좋을 때면, 진지공사라는 것을 한다. 진지공사란, 전쟁이 나면 전투를 할 수 있게끔, 말 그대로 진지를 구축하고 정비하는 연례행사를 말한다. 그리고 이른 아침부터 삽과 곡괭이 따위를 챙겨 트럭에 올라타 산으로 향한다. 땅구덩이를 파고 흙을 퍼 나르고 잡초를 뽑거나 낙엽을 치우는 등의 고된 막노동에 불과한 일이긴 하다.


내가 있던 소대는 박격포 중대에서 기동이 필요했던 기관총 소대였고, 그래서 운이 좋았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소대장이란 사람의 지휘 아래, 본 중대와 따로 떨어져 작업하는 일이 흔하게 있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산 중턱 어딘가에서, 우리는 일을 빨리 끝내고 -판초우의를 펴 놓고 피크닉 마냥- 쉬자 라는 생각으로 열심히도 땅을 팠던 것 같다.


당시 소대장이란 작자의 계급은 상사였는데, 높은 짬과 많은 경험에서 상당한 노하우와 유도리를 가진 사람으로 기억한다. 진지공사와 같은, 주둔지를 벗어난 외부 작업을 나가게 되면, 으레 병사들과 함께 미니게임 따위를 함께 했다. 스톱워치 섯다 (소대장 휴대폰 스톱워치를 켜서 소수점 두 자리로 하는 섯다) 혹은 술게임 따위를 하면서 한 명을 선정하고, 그 사람의 카드로 맛있는 점심-이를테면 짜장면이나 피자 따위-을 시켜 먹곤 했다. 물론 당시 병사 월급이 30만 원 남짓이었기에. 굳이 본인이 돈을 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에 불만을 가진 사람도 있었지만, 그 불만을 말할 수 없던 군대의 특성상, 소대장은 마냥 병사들이 좋아한다-고 굳게 믿었고, (본인 돈이 아님에도) 본인의 권력을 활용하여 병사들에게 맛있는 외부음식을 먹이고 좋아하는 모습에 일종의 뿌듯함도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로서는 매일 먹던 군대음식 (이하 짬밥)이 아닌, 외부 음식을 먹을 수 있었던 사실 하나 만으로도 소소한 행복을 주던 이벤트였음은 틀림없었다. 그리고 돈이 남을 때면, 편의점에서 시원한 맥주 한 캔도 사주었는데, 군대에서 있었던 몇 안 되는 특별하고 소중한 경험으로 여전히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다. 동시에 아무도 없는 산 근처까지 배달을 해주던, 놀라운 대한민국의 배달 시스템에 감탄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리고 보급받은 짬밥은 마치 우리가 다 먹고 치운 것 마냥, 다시 땅을 파서 (진지공사에 나간 참이니, 짬밥을 묻을 만큼의 구덩이를 파는 일은 힘들지 조차 않았다) 묻어버리며 완전 범죄를 해왔다.


그리고 이런 소대장의 "외부음식 먹여주기"는 -삽과 곡괭이를 챙겨 부대 외부로 나간다는 공통점이 있는- 유해발굴 작업을 가서도 자행되었다. 이때는 주변에 마침 외딴 냉면집이 있었고, 시간이 넉넉지 않은 와중에 메뉴를 시켜야 했다. 그리고 가능하면 빨리 시켜서 먹기 위해 주문을 냉면으로 통일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냉면을 좋아하지 않는다. 냉면육수 특유의 시큼하고 독특한 향과 맛이, 못 먹을 정도는 아니지만, 선호하는 맛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냉면을 먹게 된다면, 굳이 만두 따위의 다른 메뉴를 시키던가, 정 안되면 비냉을 시키는 정도였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다른 메뉴를 고를 틈도, 고른다 하더라도 혼자 시킬 여력도 없던 상황인지라, 나도 물냉면을 어쩌다 시키게 되었고, 못 먹을 정도는 아니니 배 채울 겸 먹자-라는 느낌으로 같이 냉면을 시키게 되었던 것 같다.


날씨가 무더워서 인지, 혹은 몸이 힘들어서 인지, 아니면 냉면이 정말 기가 막히게 맛있던 집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먹은 냉면은 정말 최고의 맛이었고, 그날 이후로 나는 냉면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더 이상 꺼리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고깃집에 간다면 으레 냉면을 시켜 먹게 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토록 싫어하던 물냉면인데, 불가피하게 먹게 된 그날의 시도 덕분에, 먹지 않는 메뉴가 하나 사라지게 된 셈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선호하고 꺼리는 음식이 다르다는 것을, 나이를 먹어가며 느끼게 된다. 과한 편식은 집단생활을 해 나감에 있어서 스스로 피곤할 수 있지만, 저마다 싫어하는 음식이 한두 가지 정도는 있고, 그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점차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음식에 대한 편견도 -알레르기 따위가 아닌 이상- 나이가 들고 다양한 음식을 먹어가면서 점차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물론 어린 시절의 편견이 굳건히 자리 잡은 상태이고, 그래서 먹어볼 시도조차 하지 않기에, 보통은 나이가 들어서도 편식이 굳어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기회가 된다면 과감하게 편견에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한두 입 먹어보는 정도로 그 편견이 어쩌면 쉽게 깨질지도 모른다. 결국 음식에 대한 편견이 깨지면,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종류가 늘고, 다양한 상황에서 불편함이 해소되니, 편한 건 본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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