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편견

꼴레오네의 수필집 #019

by 꼴레오네

내가 소속되고 생활하던 군부대에는 매 해 육사 생도라는 사람들이 몇몇 방문하곤 했다. 그들은 육군사관학교 재학생이었으며, 야전 부대를 체험하고 실제 병사들과 같은 생활을 하면서, 어떠한 안목 따위를 기르는 그런 활동이었던 것이다.


일병 때 왔던 생도들은 당시 별다른 훈련 일정이 없어서 평범한 일과만 하다가 돌아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이듬해, 내가 병장이 될 무렵, 또 다른 생도들이 찾아오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정말 운이 나쁘게도, 40km 행군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행군은 완전군장을 하고 -물론 짬에 따라 몇 가지 물품을 빼곤 하지만- 총기와 방독면 등을 휴대하고, 40km를 그냥 무식하게 걸어가는 그런 고된 훈련이다. 그리고 육사 생도들 중에서는 여자 생도도 섞여 있었다.


당시 행군은 실제로 힘들기로 손에 꼽히는 훈련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당연히 다들 하고 싶지 않은 훈련이다. 새벽같이 출발해서 해가 질 무렵에야 복귀하게 되는 긴 여정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여자 생도들도 참여할까?-라는 근본적인 의문부터 시작하여, 도중에 AMB (구급차) 타고 복귀하는 건 아닐까?- 내지는 남자들도 힘들어하는데 퍼지진 않을까?- 따위의 걱정을 빙자한 편견의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군대에 여자 간부가 있긴 했지만, 행군을 실제로 하진 않았기에, 나로서는 여태 여자가 행군에 참여하는 것을 처음 보게 된 것이다. 그 말은 이전까지 내 경험에서 '행군하는 여자'에 대한 그 어떤 데이터도 없었다는 말이 된다. 편견은 원래 보지 못했기에 생겨나는 것이다.


그리고 행군이 끝나고 주둔지에 하나 둘 복귀할 때, 생도들 무리도 속속히 복귀했고, 당연하게도 여자 생도들도 모두 무사히 행군을 마치고 들어왔다. 그 순간, 여자 생도가 "행군을 완주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내 편견이 깨지게 되었고, 되려 남자 병사보다 더 잘 걷는 모습에 대단하다는 일종의 존경심마저 들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사 생도니까 특별하겠지' 따위의 태도로 내 편견을 보호하려 했지만, 어찌 됐건 편견에 금이 가게 한 치명적인 사건임에는 변함이 없다.


시간이 흘러 전역도 졸업도 해버리고 직장인이 되고 말았다.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는 규모가 큰 회사였던지라, 유명 가수를 초청하여 축제를 열곤 했다. 직장인 나이대가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하기에 초청하는 가수들도 각 연령대에서 좋아할 만한 가수로 선정되곤 했고, 그렇기에 꼭 한 팀은 -한 물 간- 아이돌 그룹이 나오곤 했다.


그리고 그날도, 한창 군대에서 즐겨보던 걸그룹이 나왔다. 엄청 인기가 좋았던 걸그룹까진 아니지만, 차트 1위도 하고 인기곡도 여럿 있던 그룹이었다. 어릴 때부터 아이돌이란, 가수를 빙자한, 예쁘고 잘생긴 애들이 나와서 춤추고 상품화하는 집단 정도로 편협하게 생각해 왔다. 그리고 그런 편견이 나이가 들면서 옅어지긴 해도 여전히 어떤 존재로든 남아있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축제에서 그 걸그룹의 인기곡을 따라 부르는 순간까지도 나의 그 편견은 당연하게도 여전했다.


그 걸그룹은 중간에 듣고 싶은 노래가 있는지-에 대해 물어보았고, 관중 중 한 명이 노래를 신청하자, 준비된 음원이 없는데...- 라면서, 그럼에도 불러드리겠다고 했다. 그리고 MR 없이 생목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저 잘 불렀다. 괜히 가수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로 잘 불렀다. 그리고 그때 또다시 나의 편견에는 하나의 금이 갔다.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 중에 가장 노래를 잘 부르거나, 혹은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들 중에 가장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이 아이돌이라는 것을 하는 것이었다.


편견은 빅데이터이다. 그리고 일반화하기 매우 쉽다. 사실 일반화를 해도 될 정도로 숱하게 보이기 때문에 편견이란 게 생기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편견은 그 일반화에 속하지 않는 소수 개인을 보기 전까지 지속된다. 혹여나 그 소수를 실제로 목격한다 하더라도, 굳건히 믿어온 편견을 방어하려는 방어기제가 더 강할지도 모른다. 세상에 수많은 편견이 있고, 저마다 편견을 가지고 있고, 또 모두가 그 편견에 스트레스받기도 한다.


편견이 온전히 사라지는 세상을 기대하진 않는다. 사라지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편견이 태도가 되지 않는 지성인이 되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매너라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리고 편견에 금이 가고 흔들리는 순간이 있다면, 자신의 편견을 되돌아보고 다시금 수정할 노력이 조금은 필요하진 않을까.


어떤 편견이 새로운 편견으로 변하지만 않았으면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냉면을 먹게 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