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레오네의 수필집 #020
아이슬란드에 가서 오로라를 한 번 보겠다고 비행기 표를 끊어놓고 한창 여행준비를 할 무렵이었다. 아이슬란드에는 정말 많은 볼거리가 있지만, 화산지대이기에 -일본과 마찬가지로- 온천 또한 유명하다. 그리고 블루라군으로 대표되는 유명한 대형 온천에 갈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준비물에는 수영복과 방수팩도 포함되었다. 게다가 아이슬란드 이후에 들리기로 한 핀란드에는 사우나가 유명하기에, 원조 사우나도 체험해 볼 요량으로 수영복은 필수였던 것이다. 그리고 같이 가기로 한 친구가 나에게 물어보았다.
"수영복 위에도 챙길 거야?"
워터파크나 계곡, 바다 따위의 물놀이를 갈 때면 항상 래시가드 혹은 기능성 티셔츠를 꼭 입고 갔다.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한국인이 그럴 텐데,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몸매를 가려주는 무언가를 항상 착용하고 있으며, 우리에겐 그런 풍경이 너무나 익숙하다. 몸매를 드러내는 사람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살집이 없고 건강한 몸매를 가진 사람들이었고, 그래서인지 몇몇 사람들은 마치 '자랑하고 싶어서' 드러낸다고 여기기도 하는 듯하다.
아프리카 빅토리아 폭포에 방문했을 때, 폭포 벼랑 끝에서 떨어질 것 같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악마의 수영장" 투어를 한 적이 있다. 당시에도 8명의 일행 중에 위에 무언가를 걸친 상태로 입수한 사람은 -유일한 아시안이었던- 나와 동행 둘 뿐이었다. 당시만 해도 마른 내 몸매가 스스로도 마음에 썩 들진 않아서 자연스럽게 입고 갔던 것인데, 생각해 보니 다른 외국인들의 몸매도 -당연하게- 썩 좋지는 않았다. 영화나 드라마 등 미디어에서 외국의 수영장이나 해변가를 보아도 윗옷을 입은 사람은 많지 않은데, 내가 그 틈에 섞여 위에 무언가를 걸치고 있자니, 어느 순간 되려 내가 몸매에 자신이 없는 사람이 된 것 같고 혼자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아니 위에는 벗고 들어가려고"
길지 않은 고민 끝에 나온 대답이었다. 이번에는 나도 위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아 보기로 한 것이다. 이는 물론 편의상의 이유도 있었는데, 위에 무언가를 입고 들어가면 물 안에서 활동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물에 나와서도 젖은 옷 때문에 추위를 더 타게 된다. 챙겨야 할 옷과 말려야 할 옷이 하나 더 늘어난 것도 번거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모두가 벗고 있는 공간에서 나 또한 벗은 상태가 되면서, 튀고 싶지 않은 이유가 더 컸던 것 같다. 그렇게 아이슬란드 블루라군에서, 그리고 핀란드의 사우나에서 나와 동행들은 모두 위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무언가를 입고 들어간 것보다 편하고 쾌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떤 자유로운 기분도 느낄 수 있었는데, 더 이상 내가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상태가 될 수 있었고, 모두가 벗고 있는 공간에서 적절히 융화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여전히 래시가드 따위를 입고 있는 사람들도 보였는데, 누가 봐도 한국인 내지는 중국인이었다. 왜 한국인은 벗어도 되는 수영장이나 바다에서 조차 몸을 가리게 된 걸까? 아무래도 외적인 모습에 민감하고 많은 신경을 쓰는 한국의 문화가 크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한국에서는 예쁘고 건강한 몸매가 아니면 부끄러운 것이고 숨겨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을 자아내곤 한다. 신체 노출에 부정적인 동아시아의 보수적인 분위기도 한몫하는 듯하다.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을 포함한 다수의 동북아권 아시안이 그러는 것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이유야 어찌 됐건,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물에 들어가니 훨씬 쾌적하고 자유로웠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외국에서 수영복을 입을 일이 있다면, 위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을 수 있는 결심 또는 용기가 생긴 것 같기도 하다.
그럼 한국에서도 입지 않을 수 있냐고 물어본다면, 사실 그건 잘 모르겠다. 결국 입거나 벗거나 하는 것 또한 하나의 문화 차이고, 어떤 게 더 낫다고 볼 수는 없다. 내가 한국에서 입고 살아왔던 것도, 외국에서 벗어볼 생각을 했던 것도, 그 문화권에 맞추고 싶었을 뿐이었고, 남들과 비슷하게 튀지 않고 싶었기 때문인 것 같다. 아마 외국인도 한국에서 살다 보면, 어느새 입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과연 우리는 래시가드를 벗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