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레오네의 수필집 #021
내 인생의 기억이 처음 저장된 곳은, 지금은 희미하게 남아있는 기억이지만, 안동 태화동이라는 작은 동네 2층집이다. 아마 2층에서도 1층에서도 살았던 것 같은데, 어디가 먼저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엄마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겠지만, 여태 그렇게까지 궁금하진 않았던 것 같다.
대로변가에 큰 철문을 열고 들어가, 긴 길을 걸어가면 또 하나의 대문이 나왔다. 그리고 작은 마당이 있는 2층 집이었다. 정말 큰 철문이었는데, 지금 와서 그 길을 스쳐 지나가면서 다시 보자니, 정말 작은 철문에 불과했다. 그때는 참 어렸고 모든 게 커 보였나 보다.
작은 마당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흙을 가지고 놀 수 있는 작은 나만의 놀이터도 있었다. 장난감 포크레인 따위를 가지고 놀았던 것 같다. 무슨 상수도 공사를 해야 한다며 그 작은 마당을 낯선 아저씨들이 파해쳐놓았을 때는 속상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그곳에서 유치원이란 곳에 처음 가게 되었다. 우리 집 앞 대로변가에 유치원 버스가 나를 데리러 왔다. 나 혼자 탔던걸 보니, 날 위해 그곳을 들린 모양이다. 나는 엄마랑 떨어지기 싫었지만 유치원에 가야 했다. 유치원에 가면 항상 불안하고 엄마가 보고 싶었던 것 같다. 언제부턴가 엄마가 나에게 쪽지를 건네주었다. 엄마가 보고 싶거든 쪽지를 펼쳐서 읽어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나는 버스에 타자마자 엄마랑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서 바로 그 쪽지를 펼쳐보았다. 안타깝게도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디 멀리 여행을 갈 때면, 엄마가 온 집안이 자욱해질 정도로 에프킬러를 뿌려놨던 것 같다. 언제는 할머니댁에 갔을 때 도둑이 들었다는 전화를 받기도 했다. 집 안에 들어오진 않았다 그랬는데, 아마 훔쳐갈 마땅한 것이 없었나 보다. 엄마랑 낮에 거실에서 블록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생쥐 한 마리가 밖에서 돌아다녔다. 다행히 방충망이 있어서 집 안으로 들어오진 못했고, 엄마는 아빠에게 빨리 쥐를 쫓아달라고 전화를 했다. 그리고 나와 엄마가 방충망에 블록을 몇 번 던지니 생쥐는 달아났고, 아빠가 도착했을 때 생쥐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몬테소리 같은 수업도 받았던 것 같고, 책도 많이 읽었던 것 같다. 안방에서 형광등 옆에 빨간 보조등을 켜두고 엄마가 책을 읽어주던 기억도 있다. 스티븐 호킹의 사진이 너무 무서워서 꿈에 나올까 봐 무서워 잠을 설치기도 했던 것 같다. 그 시절 텔레비전은 삼성에서 만든 브라운관이었고, 아빠가 쓰던 방에는 삼보컴퓨터가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초등학교에 가야 할 무렵, 처음 이사란 것을 하게 되었다.
한창 집을 알아보려고 이곳저곳 아파트를 돌아다녔다. 부모님은 나를 데리고 다니기도 했는데, 슬슬 집 보러 다니는 게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느 아파트에 그 집주인과 같이 집을 둘러보고 있는데, 거기서 이 집 좋다-라고 말했던 것 같다. 그렇게 실제로 그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아파트 13층이었다. 그리 넓진 않았지만 아파트라는 환경이 새롭기도 했다. 이사하기 전, 엄마는 할머니에게 받은 고춧가루와 소금을 온 집안에 뿌렸다. 그냥 몇 번 뿌리면 될 것을, 정말 빈틈없이 곳곳에 뿌렸던 것 같다. 그래서 나도 재밌어 보여서 몇 번 뿌려보았던 것 같다.
그 시절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집에서 초등학교까지는 꽤 걸어갈만한 거리였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생일파티를 종종 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그나마 여유가 되던 집에서만 했던 것 같다. 생일 파티를 가면 맛있는 것을 잔뜩 먹고 올 수 있으니 좋았고,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생일파티에 가는 것 또한 재밌었다. 내 생일이 될 무렵에, 엄마가 나에게 생일파티 안 해도 되지-라고 물었고, 나는 안 해도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 생일날 친구들은 나에게 생일파티 안 하냐고 물어보았다. 하지 않기로 했지만, 뭔가 친구들에게 안 한다고 딱 잘라서 말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그래서 대충 모른다고, 할 거면 올래?- 정도로 떠본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그 어린 시절에 다섯 남짓 친구들이 우리 집에 불쑥 찾아왔다. 당연히 엄마는 당황했지만 차마 놀러 온 친구들을 돌려보낼 수 없었던 것인지, 그 자리에서 이것저것 만드시고 배달도 시켜서 나름 생일상 같은 상을 만들어주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으면서도 엄마에게 미안한 기억이기도 하다.
2년 남짓 살아서 그리 많은 기억이 남아있진 않은 곳이다. 그리고 같은 아파트 단지의 더 넓은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이때 드디어 집을 매매하게 되면서, 전세살이는 끝이 났던 것을 당시에는 몰랐다.
이 집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모두 졸업했다. 정말 긴 시간을 이 집과 함께 했다. 투니버스에서 하던 원피스를 보기 위해 피아노 학원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달려오곤 했다. 여전히 어린 시절이었는지, 학교가 끝나고 집에 왔을 때 엄마가 없으면 무척이나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당시만 해도 집집마다 있었던 집 전화기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곤 했다. 엄마가 전화를 받으면 상관없었는데, 전화를 받지 않으면 그 불안한 마음은 더욱 커져만 갔다. 당시 엄마 휴대폰 컬러링이 윤도현의 '사랑했나봐' 였는데, 그 컬러링이 내 울적하고 불안한 마음을 심화시켰던 것 같다. 지금에야 그 감정이 떠오르진 않지만, 그래서 한동안 그 노래를 정말 싫어했다.
중학생이 되고 내 노트북이란 것이 생기게 되었다. 그리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인강도 듣고 영화도 보고 많은 것을 처음 접했던 것 같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계정도 누구보다 빨리 만들었었고 유튜브에 영상도 올려보았다. 2010년대 초반인 것을 생각하면 정말 이른 시기였다. 그때의 경험이 지금 나를 개발자로 만들어준 것 같기도 하다.
축구를 시작했던 곳이기도 하다. 중학생 때 축구란 것을 처음 시작하였고, 스마트폰이 처음 생기고 나서 해외축구도 한창 챙겨보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아는 유일한 해외축구 클럽은 맨유였고, 자연스레 맨유 경기만 보다 보니 맨유 팬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처음 관심을 가지고 보던 시기에 맨유가 우승을 했다. 12-13 시즌이었다. 그렇게 십 년이 넘는 긴 시간동안 고통받고 있다. 축구 유니폼을 수집하던 시기였고, 축구 잡지도 종종 사서 보았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이 있던 시기에는 예상컨대 한 해 동안 100경기 넘게 축구를 보았던 것 같다. 그 시간에 공부를 했으면 어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