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없는 여행지

꼴레오네의 수필집 #015

by 꼴레오네

여행 커뮤니티에서 어떤 여행자의 고충을 본 적이 있다.

친구와 여행을 왔는데, 친구가 '한국인이 너무 많다' 라며 불평불만이 많다는 것이다. 또한, 여행 SNS 계정에서는 숱하게 "한국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따위의 여행지를 소개하기도 한다. 실제로 나 또한 해외여행에서 한국인이 붐비는 곳을 좋아하진 않는다. 물론 신경 쓰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마 다수의 사람은 공감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한국인이 많은 여행지를 싫어하는 걸까?


우리가 해외여행을 가는 여러 목적 중 하나는 바로 익숙한 한국의 인프라와 문화, 분위기 등에서 벗어나 낯선 기분을 느끼고 보다 자유로워지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때 한국인이 나타나면 내가 느끼고 싶은 해외여행에서의 느낌을 온전히 전달받지 못한다. 한국인이 보이는 순간, 그들을 의식하고 (서로 그렇겠지만) 내 행동이나 태도 따위를 신경 쓰면서, 결국 한국과 다를 바 없어지게 되고 해외여행이 주는 기분을 오롯이 느낄 수 없게 된다.


또한 들려오는 한국어가 '여행 왔음'의 느낌을 방해한다. 마찬가지로 내가 말하는 한국말 또한 그들에게 들릴 수 있기에 여러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이를테면 한국어는 전 세계에서 한국에서만 사용하는 언어이기에, 외국인 앞에서 어떤 얘기를 하더라도 알아듣지 못해서 목소리를 작게 하는 등의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근처에 한국인이 있다면 마음 놓고 이야기를 하기 어려울지도 모를 일이다. 또한 여행지에서의 내 감상이 주변 낯선 이들에게 들리게 될 텐데, 예를 들자면 '생각보다 별로네'라는 흔한 실망의 표현이 옆에 있던 누군가의 멋진 순간을 해칠 수도 있다. 결국 내가 내뱉는 말에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내가 보고 느낀 경험이 남들도 모두 경험한 것이라면, 그 경험은 특수성이 옅어지면서 가치가 줄어들게 된다. 이는 호텔보다 독채 펜션이 더 높은 가치의 공간 경험을 선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모든 방의 인테리어와 디자인이 비슷한 시그니엘과 건축가가 직접 디자인한 잘 지은 펜션을 비교한다면, 같은 값이라도 경험을 나누는 사람이 적은 펜션에서의 숙박 경험이 더 큰 가치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내가 한 경험은 '나만의 특별한' 혹은 '남들과 차별화된' 경험이길 원하며,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이 적을 때 그 가치는 높아진다. 한국인이 많을수록 여행 경험의 가치가 줄어든다고 본능적으로 느끼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한국인이 없는 여행지는 가능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인이 없는 여행지는 극히 드물다. 잔지바르 길거리, 다르에스 살람 출국심사대, 베르겐 낡은 호스텔 공용주방 등 정말 세계 곳곳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 것이 한국인이다. 실제로 한국인들이 해외여행을 엄청 많이 가는 것도 사실이기에, 당신이 '가고 싶어 한' 여행지는 필연적으로 한국인들의 입소문 혹은 한국 미디어나 SNS에서 접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당신이 아는 여행지는 남들도 안다. 그리고 당신은 어려운 여행을 하고 싶지 않아서, 한국인들이 올린 리뷰와 블로그를 참고하고 나서야 여행을 결정하고 계획할 것이다. 먼저 길을 낸 한국인들 덕분에 편한 여행을 하면서, 한국인이 없기를 바라는 것은 모순이면서 욕심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녕 '나만의' 여행 경험을 위해서 한국인을 가능한 피하고 싶다면, 그나마 추천할만한 몇 가지 방법이 있다. 구글맵이나 트립어드바이저 등 글로벌 플랫폼 후기를 적극 참고하는 것은 한국인 후기를 피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또는 여행지에서 직접 현지인에게 물어보는 것도 시간을 절약하면서 보다 로컬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일 수 있다.

일례로, 나는 여행지에서 식당을 완벽하게 정하지 않고 가려고 노력한다. 해당 여행지에서의 유명한 음식이 있다면, 어떤 메뉴를 먹어야 하는지만 메모해 두고 그 이후는 현지인에게 물어보며 추천을 받거나 혹은 길 가다가 보이는 식당에 구글맵 평점만 참고하고서 불쑥 들어가기도 한다. 한국인에게 유명한 식당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맛있는 식당은 많다. 명동에서 외국인들에게 유명한 닭갈비집이 꼭 한국인에게도 최고의 닭갈비 집은 아닐 수 있음은 모두가 인정할 것이다. 또한, 한국인들에게 유명하다는 것은 오히려 한국인 입맛에 맞춰진 맛일 가능성이 크고, 그 말인 즉, 현지 본연의 맛과 조금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리마에서 아무 곳이나 들어가서 세비체를 먹기도 했고, 나이로비 기린센터 직원에게 물어 근처 카페를 방문하기도 했으며, 픽업 드라이버의 추천으로 아루샤에서 통닭구이를 먹어보기도 했다. (물론 통닭구이는 너무 로컬의 맛이라 당황스럽긴 했지만)


당신이 다른 한국인들과 유사한 경험을 공유하고 싶지 않다면, '나만의' 여행경험을 위해 요행을 바라지 말고, 조금 고생하는 여행을 할 것을 추천한다. 고생할수록 당신의 여행 경험은 특별해질 것이라 확신한다.


혹시, 이 조차도 부족하다면,

한국인을 아예 만나고 싶지 않다면,

그냥 구글맵을 열심히 뒤져서, 저기 아프리카 외딴섬이면서 나폴레옹의 유배지인

세인트 헬레나 같은 곳을 찾아서 세상에서 가장 긴 직선계단 따위를 올라가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지 않을까.

그곳엔 아마 한국인은 없을 것이라 감히 추측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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