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던 곳 #003

꼴레오네의 수필집 #023

by 꼴레오네

전역 후 복학까지 4개월의 시간이 있었지만 나는 랩실에 먼저 들어가고 말았다. 한 달 정도 놀면서 다시 사회에 적응하고서 교수님을 찾아뵈었던 것이다. 새로 구한 자취방은 이제 햇빛이 드는 집으로 골랐다. 그곳에서 파이썬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프로그래밍에 더욱 재미를 붙이고 밤새도록 코딩을 하던 시기였다. 자취방에 모니터도 2대나 들여놓았고 밤이면 맥주 한 캔과 함께 게임도 하고 전공 공부도 한창 하던 시기였다. 난 그렇게 프로그래밍이 재밌을 수 없었다.


남미 여행을 계획하고 짐을 싸던 곳도 그 자취방이었다. 그리고 남미 여행에서 돌아오니 코로나라는 것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학교를 가지 않게 되었고 그럼에도 자취방에서 지내며 랩실은 계속 다녔다. 학교에는 교수님들과 몇몇 랩실 학생들 뿐이었고, 주변 상권이 모두 문을 닫아 밥 먹기도 어려웠기에 집이나 랩실에서 해 먹는 경우도 많아졌다. 당시에는 돈을 아끼려고 요리를 해서 먹었는데, 맛은 없었지만 배가 고프니 그냥 먹었던 것 같다. 그리고 정말 운이 좋게도 졸업하기도 전에 취업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 길로 나는 2년 조금 넘는 시간을 머무른 오랜 자취방을 떠나게 되었다. 여전히 그 자취방을 생각하면, 코로나 시절에 마스크를 쓰고서 아무도 없는 학교에 매일같이 가서 코딩이나 하던 기억만이 남아있다.


새로운 집은 직장이 있는 수원이었다. 가능한 직장과 가까운 곳으로 잡는 건 당연했으며 처음 수도권이란 곳에 발을 들이게 된 셈이다. 모든 짐을 싸들고서 올라왔기에 집을 여유롭게 둘러보고 발품을 팔 여유가 없었다. 허름한 오피스텔에 월세로 싸게 대충 계약을 했다. 일 년 정도 살다가 이사를 갈 작정이었다. 아무런 연고도 없고 날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도시였다. 게다가 꾸준히 살인 사건이나 전세 사기가 활발한 지역이라 알 수 없는 불안함이나 두려움도 조금은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곳에서도 여전히 깊은 외로움을 느꼈다. 나 홀로 남겨진 기분이 들지 않을 수 없었고, 내가 어떤 행동을 해도 날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기에 자유로우면서도 한편으로 날 신경 써줄 사람 한 명 조차 없다는 사실이 불안하기도 했다. 그렇게 매일같이 카페를 가서 외로움을 달램과 동시에, 하루빨리 회사에 출근하고 싶은 마음을 떨치기 어려웠다. -당시만 해도 코로나가 끝나지 않을 시기였기에 신입사원 교육을 재택으로 진행했다.- 그렇게 4년이 지난 지금은, 그때 왜 회사를 가고 싶어 했을까-라는 헛웃음이 들 정도가 되었으니, 이제 이곳에서 나와 연결된 사람도 많아지고 그런 외로움 따위는 온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월세가 주변 시세보다 너무 싼 바람에, 게다가 집주인이 월세를 올리지 않아 주신 덕분에, 이사를 가지 않고 여전히 박혀 살고 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니, 주거비를 아껴 시드머니 따위를 조금 더 모을 수 있겠거니 생각했다. 물론 시드머니를 모으기보다 여행을 가곤 했지만 말이다. 이곳에서 신입사원 딱지를 뗐고 한 권의 책을 더 출간했으며 세 번의 여행을 더 다녀왔다. 어느덧 군대에서 있던 시간보다, 대학생 시절의 자취방보다 더 오래 거주한 곳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내가 살 다음은 어디일까. 바라는 거주 공간이란 게 있다면, 그래도 8평짜리 자취방보다는 넓은 공간이었으면, 좁아도 발코니나 마당이 있었으면 어떨까 꿈을 꾸어 본다. 나만의 작은 작업공간이 있었으면 좋겠고, 그곳에 두 대의 큰 모니터와 간접조명 그리고 인센스를 피워두면 어떨까 그려본다. 드립 커피를 내려 마시면서 글을 쓸 수 있는 삶을 지속했으면 좋겠다. 어느 지역일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한국일 것 같고, 아무래도 기업이 모여있는 수도권일 확률은 높을 것 같다.


내가 살던 곳에는 내 삶의 추억이 깃들어있다.

앞으로의 추억이 담길 곳은 조금 더 편하고 산뜻한 곳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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