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부러운 삶

꼴레오네의 수필집 #024

by 꼴레오네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주거 조건이란 어떤 것들이 있을까. 표면적으로 떠오르는 몇 가지 있는데, 이를테면 화장실이 주거 공간과 같은 실내에 있을 것, 연탄이나 나무로 보일러가 동작하지 않을 것, 벽지에 곰팡이가 있지 않을 것, 바퀴벌레가 없을 것, 햇빛이 조금은 들 것, 방한이 잘 될 것 등일 것 같다. 아마 그 마저도 몇 가지는 "최소한"에 포함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 내가 탄자니아 킬리만자로 공항에 도착해서 아루샤라는 작은 마을로 가는 한 시간 동안의 도로 위에서 목격한 풍경들은 충격 그 자체였다. 우선 더운 것으로 잘 알려진 아프리카에서 에어컨이 고장나고 창문에 금이 간 도요타 자동차를 타고 왕복 2차선 도로를 달려갔다. 에어컨이 없으니 창문을 활짝 열고 달리는데 모든 자동차가 매연을 뿜어대니 눈이 따갑고 피부가 칙칙해지는 기분이 절로 들었다. 가로등도 몇 개 없어 앞이 잘 보이지도 않는데 드라이버는 2차선 도로를 추월하고 또 추월한다. 그리고 창 밖에 보이는 현지인들의 모습은 더욱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전등이 없는 건지 어두컴컴한 상태에서 지내고 있었고, 마을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기도 했다. 마트라는 곳에 냉장고는 시원하지 않았고 도심 자체에 빛이 적으니 어둠이 찾아오면 칠흑같이 주변이 잘 보이지도 않는다. 원치 않았지만 달빛이 그렇게 밝은지도 처음 알게 되었다. 1970년대 우리나라의 모습이 그러하진 않았을까 추측 정도만 해본다. 내가 생각한 최소한의 거주조건, 그것에도 한참 미치지 못하는 조건이 그들에겐 일상이고 삶이었다.


도심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탄자니아의 수도인 다르에스 살람에서 날 태워준 택시기사의 얼굴에는 크고 작은 흉터가 그렇게 많았다. 수산시장이 궁금해서 찾아간 곳에서는 수십 미터 밖에서부터 생선 비린내가 진동하여 숨을 제대로 쉴 수조차 없었다. 위생 따위 찾아볼 수 조차 없는 환경에서 생선을 손질했으며 사람보다 파리가 더 많을 지경이었다. 여전히 도심은 매연을 뿜어대는 자동차가 즐비했고, 이곳 최고의 대학교 캠퍼스를 찾아갔을 때도 형편없는 구내식당만을 마주했을 뿐이었다.


군대에서 만났던 많은 인연들의 삶 또한 마찬가지였다. 사람은 끼리끼리 만나서 어울린다고, 내 주변에는 대부분 정상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님중 한 분이 적어도 직장이란 것을 가지고 계시고 4년제 대학을 간 친구들 뿐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줄 알아왔으며 뉴스나 미디어에 나오는 사회 소외계층의 이야기는 그저 소수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리고 대한민국 20대 남성을 무작위로 추출하는 군대라는 집단에서 내 좁은 시야는 박살 나고 말았다. 의사, 변호사, 전문연구원 등 나름 군대를 합법적으로 가지 않을 수 있는 극소수를 제외한다면, 군대라는 집단은 정말 무작위 추출에 가깝다. 공군이나 의경처럼 나름의 면접을 보면 그나마 한 번의 필터링이 된다지만, 육군은 그 어떤 필터도 없기에 어쩌면 완전 무작위 추출이라기보다 멀쩡한 사람 중 10%는 제외된다고 보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집단에서 체감상 절반은 고졸이었고, 남은 사람 중 절반은 전문대 재학생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4년제 대학에 다니는 사람 중에서도 서울 수도권 대학을 다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10% 남짓의 사람들은 이혼가정 혹은 한부모 가정이었으며, 1% 미만의 확률로 20대 초중반에 자녀가 있기도 했다. 사이비 종교를 믿거나 믿었던 사람도 보았으며, 성소수자도 처음으로 만날 수 있었다. 5% 남짓은 몸에 문신이 있었고 그중 일부는 정말 조직생활 이란 것을 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도심지 단독주택에 사는 부잣집 출신도 있었고 해외대학 출신 혹은 외국에서 살다 온 사람도 여럿 되었다. 잘생긴 사람의 비율이나, 비만율이나 모든 게 대한민국 통계와 딱 맞아떨어지는 신기한 집단이었다.


여태 나는 보다 좋은 조건만을 보고 비교하며 살아왔다. 나보다 풍족한 삶을 보며 나름의 부러움을 느끼면서 스스로 발전하도록 하는 일종의 동기부여로 삼아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보다 힘들게 사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군대에서도 그러했고 탄자니아에서는 말할 것도 없었다. 대한민국 소득 수준에서 내 삶의 질이 어떠한진 모르겠으나, 그런 삶을 마주해 보니 정말 내가 아래를 보지 못하고 살았구나, 더 나아가서 아래를 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누군가를 부러워한다. 그리고 누군가도 나를 부러워한다. 비교는 끝이 없고 자기 발전은 느리기에 그동안의 강박이 고통스럽기도 하다. 비교하는 삶은 행복하지 않다. 가진 것에 만족하고 작은 성취를 꾸준히 이루어 나가는 삶이 보다 행복한 삶일 것이다. 그렇다고 함부로 누군가에게 그저 만족하라고 안주하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노력하고 성취해서, 보다 나은 삶이 되어도, 결국 누군가를 또 부러워할 수밖에 없다.


부러워하는 삶을 살겠는가, 행복한 삶을 살아보겠는가.

내 삶은 누군가의 부러운 삶이다. 당신의 삶 또한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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